1. 지난 2002년 불교계 신문에 연재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역사 속의 한국불교>라는 책을 냈다가 수정,보완해 이번에 <이이화의 이야기 한국불교사>를 내셨는데, 어떤 부분이 수정보완된 것인가요?

이름은 개정판이지만 실제로 새로 쓰다시피 했습니다. 불교신문에 1년간 연재했던 것보다 분량도 4분 1정도 보탰지만 전반적인 검토를 통해 내용을 좀 바꿨어요. 중요한 건 이건 논문식 학술서적은 아니에요. 전공자를 위한 책이 있고 대중을 위한 책이 있는데 이 책은 어디까지나 대중을 위한 불교사라고 보면 됩니다.

2. 특별히 어떤 부분을 가필을 많이 하셨나요?

제가 한국 역사를 10년간 22권짜리로 쓴 적이 있어요. 거기에 불교 얘기가 자연히 많이 들어갔지요. 불교가 전래된 시기가 바로 기록문화가 발달했을 때라 고조선에 대해서는 기록이 거의 없지만 삼국부터 기록이 많고 또 불교 얘기가 들어갈 수 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이번에 보완할 때에 그동안 빠진 부분 중의 하나가 불교가 가지고 있는 비리도 좀 넣었요. 승려나 사찰이 막강한 재산을 가지고 지배세력으로 군림을 하고 지주로서 도조를 그렇게 많이 받고 했지요. 그걸 절이나 짓고 금불사나 하는데 쓰고. 이건 제 얘기가 아니고 신라말 구산선문 운동이 일어날 때도 이런 걸 반성했어요. 그래서 운력이라는 게 구산선문에서 시작된 겁니다. 승려들이 스스로 일을 하고 검소하게 생활하고, 또 민중들이 죽어가는데 비단으로 옷이나 입고 금으로 사경이나 하고 좋은 것 아니라고 하는 반성이 있었지요. 고려시대에도 있었고. 그래서 이런 점에 대해서 사실적으로 좀 집어 넣었어요.

3. 그러니까 현실 불교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균형있게 다뤘다는 말씀이신데, 거기에는 어떤 역사 철학이 깔려 있나요?

저희 아버님이 기본적으로 얘기하면 유불선 합일사상을 가지셨고 그런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불교도 보면 내부에서 선종과 교종이 끊임없이 갈등을 벌인 것 같지만 중요한 스님들은 다 선교일치를 주장하고 크게 말하면 유불선 합일을 말씀하셨어요. 저도 그런 점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화쟁 사상이 왜 의미가 있느냐. 이런 것이 굉장히 중요한 거에요. 고려 전기 의천 대각국사가 당시에 갈등이 많이 일어날 때 그 나름의 통합운동을 했다는 것, 이런 것들을 불교전통으로서 오늘날에도 우리가 교훈을 가져야 된다고 생각해요. 조선시대 당쟁도 그런 점에서 유의해서 볼 필요가 있어요. 당쟁을 통합시키는 파가 있었어요. 당쟁이 불교에서 교파 분쟁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큰 맥락에서 보면 같은 흐름이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어요.

4. 한국불교가 그동안 민족사에 큰 역할을 해 왔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그렇지 않다며 아쉬워하고 계신데요, 간단히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호국불교는 호왕불교와 호국불교 이렇게 나눠볼 수 있어요. 가령 신라 같은 경우 왕실이라는 것은 ‘왕즉불’ 즉 왕이 곧 부처라고 해서 부처처럼 나를 받들어라 하는 관념을 가졌는데 이런 호왕불교는 대단히 잘못된 거에요. 무조건 나라를 위해 희생하라, 나는 이런 거에 반대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김구가 나라가 나에게 어떻게 해주었든 나는 나라를 위해 산다 하는데 저는 이거 반대합니다. 호국불교의 중요한 것은 가령 임진왜란처럼 일본이 침략해 와서 우리 백성들을 못살게 굴 때 이것은 국가의 문제가 아니고 인간의 문제에요. 무도한 세력에 대해서 우리가 저항하고 또 사명대사가 일본과 교섭해서 포로들 직접 데려오고 하는 것은 진정한 자비를 구현하고 중생을 제도하는 뜻 깊은 불교운동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신라 원광법사가 만든 세속5계에 살생유택이라는 것은 전쟁 때는 상대를 죽이는게 승리의 길인데, 이건 전쟁터에서도 함부로 죽이지 말아라 하는 건데, 이건 신라불교가 왕과의 관계에 있어서 상당히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봅니다.

불교의 세속화 문제는 반성이 필요하다고 봐요. 고려시대 스님들이 대단히 재산 모으기에 뛰어들었어요. 가령 술을 파는 독점 주점을 열기도 해요. 그 많은 땅을 가지고 있으면서 금강산 유점사에서 호남지방까지 도지를 받으러 다녔어요. 그 나쁠 때 그만큼 사원전이 확대돼 있었다는 거에요. 권력과 결탁해 이권을 차지하려고 애를 쓴다는 것이지요. 또 하나는 왜 그렇게 물욕이 많은지. 절도 짓고 부처님도 조성하고 불사도 해야 하지만 정말로 중생제도를 위한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했다는 겁니다.

개혁 움직임도 있었지요. 원명 교체기에 공민왕이 정말로 고민을 했어요. 그래서 스님들을 받들어 국사와 왕사를 모셨는데 그렇게 신돈을 모셨습니다. 불명은 변조라고 불리는데, 이 분이 정말 불교를 개혁하려고 했지만 실패했어요. 귀족들은 귀족들 나름대로 또 불교의 기득권 세력들은 그들대로 신돈을 미워해요. 양면에서 적을 만든 거에요. 아무리 개혁을 옳은 개혁을 하려고 해도 현실적으로 그렇게 반대 세력이 있습니다. 신돈의 개혁이 실패는 했지만 그래도 그것은 역사의 유산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에는 신돈을 상당히 높이 여러 각도에서 접근해 봤습니다.

5.불교도와 국민, 사회지도자 등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을 주시기 바랍니다.

불교는 현실을 떠나 산속에 사는 게 아닙니다. 시대가 달라졌어요. 정말 이제는 도시불교니 산중불교니 따지지 말고, 또 수도니 대중화니 이런 것 너무 구분하지 말고 정말로 이 시대에 한국에서 불교의 역할이 뭔가. 저는 두 가지를 제시하고 싶어요. 무엇보다 이제는 인권의 시대입니다. 인권의 바탕위에서 나눔의 보시의 정신, 이것이 앞으로 불교의 역할이 크다.  또 하나는 우리가 분단국가에요. 이제는 민주시대니까 정말 민주의 가치, 민주 실현, 질서를 잡고 가는데 있어서 그 쪽에 우리도 관심을 가져야 될 뿐만 아니라 이 바탕 위에서 통일운동에도 나가야 됩니다. 그래서 이걸 우리가 뒷받침해줘서 정말 남북 대화를 해서 통일을 이룩해야 하는데, 여기에도 불교의 역할이 있다고 봅니다.

6. 앞으로 계획을 말씀해 주실까요.
제 나이가 80이 넘었어요. 물러날 때는 깨끗이 가야됩니다. 그래서 은퇴를 하는데 그냥 은퇴를 하는게 아니라 책을 쓰는데 노력하려고 합니다. 하나 준비하고 있는 것이 고승열전인데 모두 17명, 원효에서 시작해서 만해 한용운으로 끝납니다. 그걸 집중으로 쓰고 있고요, 또 동학농민운동사가 근대에 아주 큰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그런 책을 쓰는데 만년을 보내려 합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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