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제35대 총무원장 설정 스님.

조계종의 35대 총무원장으로 당선된 설정 스님이 294일 만에 총무원 청사를 떠났다. 종단 사상 최초의 '총무원장 불신임', 이른바 탄핵을 당한 총무원장이라는 오명을 안고 물러난 셈이다.

설정 스님은 총무원에서의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작심한 듯 이른바 종단의 기득권층을 향한 쓴 소리를 거침없이 쏟아냈다. '금권 선거'와 '탐욕', '재정 투명' 등 종교 집단에서는 금기하고 있는 단어들이 자진 사퇴를 결심한 당일 기자회견에서 나온 것이다. 질문과 답변이 없었던 '22분 기자회견' 내용은 지금의 조계종은 '환골탈태(換骨奪胎)'해야 한다는 한마디 말로 요약된다.

숨겨둔 처와 자식 등의 범계 의혹으로 온갖 사퇴 압박에 시달리던 설정 스님은 현실의 무거웠던 짐을 내려놓고서 조계사 대웅전 부처님을 참배했다. 설정 스님은 총무원장으로서의 마지막을 함께했던 불자들을 향해 엷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손을 흔들기도 했다. 설정 스님의 표정에는 언뜻 회한으로 가득차 보이기도 했지만 이제는 온갖 압박에서 벗어났다고 여긴 듯 홀가분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배웅 나온 총무원의 일부 여직원들은 탄핵 당한 설정 스님을 바라보며 눈물을 쏟아냈다.

종단 사상 최초의 불신임 총무원장으로 낙인 찍힌 설정 스님을 취재하려는 언론사들의 열기도 늦더위 만큼이다 뜨거웠다. 이 과정에서 총무원의 한 차장은 종편 방송사 직원과 얼굴을 맞대고 실랑이를 벌이는 소동이 빚어지기도 했다. 아마도 떠나시는 분에게 최소한의 '예의'라도 지켜달라는 요구에서 시작된 일인 듯한데, 방송사 직원을 밀치며 다투던 이 차장의 모습은 떠나는 주군을 끝까지 섬겨야 한다는 강한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해 보였다.

설정 스님이 떠나는 현장에서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흘렸던 눈물과 분노. 설정 스님을 지키지 못하고 보내야 하는 직원들의 미안한 마음이라고 읽고 싶다. 더불어 이점도 분명히 강조하고 싶다. 불신임이라는 치욕적인 퇴장을 겪어야 했던 설정 스님에게 보낸 응원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때늦은 것은 아니었는지. 다음 총무원장이 누가 됐든 이런 일이 다신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설정 스님이 기자회견에서 말한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여론 몰이에 의해서 제가 훼손될 때 물론 나를 염려하고 걱정해주는 사람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진실로 나를 보호해주고 지켜줘야 할 나를 이 자리에 있게 해준 그 당사자들은 그렇게 열정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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