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선종의 중흥조로 추앙받고있는
태고 보우 스님 탄신 700주년을 맞아 관련 학술세미나가
개최됐습니다.

박관우 기자가 나와있습니다.

(질문 1-세미나 개요)
태고 스님은 조계종과 태고종에서 각기
중흥조로 추앙을 받고 있어요.

그만큼 한국선종사에서 태고 스님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얘긴데,
어떻게 학술대회가 열리게 된 것입니까?

(답변 1)
이번 학술세미나는
경기도 양평 사나사가 태고 보우 스님 탄신 7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한 것입니다.

어제(23일) 조계사 문화교육관에서
열렸는데
별도의 기념사업회를 1년전부터 꾸려서
준비한 것입니다.

<인터뷰>사나사 주지 화암 스님의 애기를 들어 보시죠.25초
(보우 스님의 사상을 한 단계 높여서 본받아서 수행한다면
조계종 비롯한 태고종이나 10여개 종단의 사상과 이념에도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

화암 스님의 말처럼
이번 세미나는
조계종이 중흥조로 추앙하고 있는 보우 스님의 생애와
사상을 조명함으로써
오늘날 종단의 정체성과 역사를 바로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이와관련해, 다음달 4일에는
불교방송 3층 대법당에서 태고학회 주관으로
<태고 탄신 70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기로 했습니다.


(질문 2-보우 사상의 현대적 의미)
태고스님의 불교사적 비중을 감안하면
오늘날 시대정신과 관련해서 시사하는 바가 많을 것
같습니다.

보우 스님 사상의 현대적 의미는
어디에 있는 것으로 얘기되고 있습니까?

(답변 2)
어제 학술세미나에서
동국대 교수 종호 스님은 <태고보우의 사상과 현대적 의미>에
대해서 주제발표를 했습니다.

주제 발표에서 종호 스님은
보우 사상의 현대적 의의는 무엇 보다도
종단 통합노력과 함께 사회문제에 대한 불교적 해결을
모색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인터뷰>직접 들어 보시죠.23초
(특히 원융부를 통해서 교단 통합 시도, 공민왕 등 지도계층과 깊은 교류를 하면서 불교 내적 정리, 사회 불교적 해결하려는 시도는 오늘날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는 내용이다.)

동국대 차차석 강사는
역시 주제발표에서
태고 스님이 중국 유학시절 석옥청공 스님으로부터
임제종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점을 강조하면서,
그러나 두 분의 교류는
사자상승차원에서는 논의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인터뷰>들어 보시죠.
(두 사람의 사상적 동의점은 사자상승 차원에서는 말할 수 없다. 이것의 이해 문제인데 석옥을 만나기전에 태고 보우는 깨달았고 일가를 이루었다. 종사가 됐다. 임제종 정통 법손이 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후대에 이런 점 조통설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태고 보우를 중흥조로 부각시키게 된다. 하지만 그 이전에 깨달았고 서로가 인정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리고, 동국대 황인규 강사도
주제발표에서
보우 스님은 14세기 불교종단 자정흐름을
주도한 공로가 있다면서
그러한 흐름은 조선 중기 서산대사를 거쳐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인터뷰>황인규 강사의 말입니다.
보우 스님의 9산 선문 통합, 불교계 재정비 쇄신운동은
의미가 있다. 조선초에 빛을 크게발하지 못하지만 중기에 이르러서 서산대사 등 그의 문도들에 의해서 재발견되고 그 스님을 중심으로 현재 불교계에 이른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될 수 있다.


(질문 3-유물 유적)
그동안 추정으로만 머물러 온
보우 스님의 열반지를 확인할 수 있는 유물이
발견됐다면서요.

불교사, 또는 미술사적 가치가 클 것으로 보이는데,
어떤 것입니까?

(답변 3)
어제 학술세미나에서 불교조형연구소 이기선 소장은
태고 보우 스님의 열반지를 확인할 수 있는
소설암지 사리탑명 비편 조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지난 7월 가평군 설악면에서
여름 폭우에 휩쓸려 일부 드러난 것을 박모씨가
발견한 것입니다.

현재는 박모씨가 이 비편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가로 67, 세로 69, 두깨 12센티미터 크기의
비석 일부인데,
보우 스님의 출생에서 열반까지 일대기 일부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그리고, 한국은 물론
인도와 티벳, 중국내의 보우 스님 제자로 보이는
명단도 발견이 되고 있습니다.

설립연도는 조선초로
추정되는데, 나라는 바뀌었지만 사리탑 양식은
변하지 않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인터뷰>이기선 소장의 말입니다.

(1390년대 확정됐는데 왕조 나라는 바뀌었지만 문화는 쉽게 정권과 상관없이 양식이 진행됐다. 아마 이것은 사나사 비와 비슷한 크기에다 양식도 비슷하다. 논평자 지적대로 탑형이 있고 석종형 두 개가 남아 있는데 현재는 바로 대표적인 것은 팔각 원당형, 지금 태고사에 세워져 있고 사나사는 석종형이다. 나머지 5곳에 처하면 그런 양식 문제도 중요한 자료다.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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