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서양철학 칸트를 전공하시고 또 불교의 유식학을 전공하시고 그동안 수많은 학술서적들을 냈는데, 이번에 내신 <마음은 이미 마음을 알고 있다> 하는 책은 철학에세이입니다. 어떻게 이 책을 내게 되셨는지요?

제가 지난 겨울방학 때 다른 책 하나를 완성해야 해서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좀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이 나이 되도록 남의 생각만 정리하고 있어야 되나 이런 생각도 들고 또 철학을 전공한 사람들만 읽고 이해할 수 난해한 책들 계속 써야 되나 이런 반성도 들고 해서 남의 생각이 아니라 일단 내 생각을 한번 간단하게 명료하게 정리해보자 뭐 이런 취지였습니다.

2.‘마음은 이미 마음을 알고 있다’ 라는 제목 설명을 해주셨으면 해요. 이 책 어딘가에도 설명이 들어 있던데요. 아주 쉽고 짤막하게요.

마음이 마음을 아느냐 모르느냐 하는 문제는 우리가 예를들어 책상이나 종이나 지구, 별을 아느냐 모르느냐 이 문제와는 좀 다른 문제라고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책상, 종이, 지구, 별 이런 것들은 아는 대상이지만 마음은 아는 자인 거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일상적으로 늘 객관화해서 알 수 있는 것, 객관대상만 인식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데 그러면 아는 자로서의 마음은 알 수 없는 것이 되는 거죠. 그래서 물론 자아도 대상화해서 알려고도 하지만 그러니까 의학이나 심리학이나 뇌과학이나 이런 것은 인간을 대상화해서 인식하려고 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식으로 대상화해서 인식된 것은 대상화된 거지 대상화하는 주관 자체, 아는 자로서의 자아는 결국 모르는 채로 남겨지게 되니까. 마음이 마음 자체를 알 수 있냐 없냐 이것은 철학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문제잖아요. 그런데 저는 ‘마음이 마음을 안다’ 라는 그 말은 우리에게 대상화하는 인식 이외에 대상만 우리가 아는 게 아니라 그것을 아는 ‘아는 자’로서의 마음 자체에 대한 자기 앎이 있다. 그런데 그러려면 대상화하는 그런 표층적인 의식을 넘어서서 주객 미분적인 그런 심층마음에 앎이 있다 이걸 말하고 싶었던 거죠.

3.그래서 선사들께서 생각 이전에, 한 생각 일어나기 이전의 본인을 살펴봐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 같고 그것과 통하는 것으로 이해를 하겠습니다. 그래서 이 책의 부제가 바로 ‘공적영지(空寂靈知)’거든요. 교수님께서 보시는 공적영지는 어떤 건가요?

심층 마음의 자기 앎, 이게 공적영지. 그러니까 공적영지란 개념이 일반인들에게는 약간 낯선 단어지요. 그런데 이 단어를 보면 마음이라는 것이 우주 안에 나타나는 특별한 대상이 아니고 비어있는 마음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아무것도 없는 것을 허공이라고 하죠. 구체적인 대상이 없어졌을 때가 허공이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를 적막이라고 하잖아요. 허공의 공하고 적막의 적 하면 공적이 되는 거죠. 그러니까 보이는 것이 없고 들리는 것이 없는 그런 빈 마음인 그 공적의 마음이  자기자신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신령하게 안다 그래서 공적영지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요.

4.책 p83에 보면 “현대인은 마음을 표층의 대상의식과 동일시하여, 대상의식이 마음활동의 전부라고 여긴다. 따라서 심층마음의 각성인 본각, 공적영지를 자기 마음의 빛으로 알아차리지 못하며, 결국 ‘아는 자’로서의 자신을 알지 못한다. 자신을 알지 못하는 무지를 무명 또는 불각이라고 한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아는 자’를 알기 위해서는 표층의식을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고 그런 점에서 수행이 요구된다고 보면 될까요?

그렇지요. 아는 자로서의 마음, 공적영지를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표층의 분별적 의식, 대상적 의식을 좀 내려놓아야 한다 라는 것을 제가 강조하고 싶었는데요, 이런 뜻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아요. 우리가 서울에 살면서 밤에 별 못 보잖아요. 별을 보려면 지리산 산속이나 깊이 들어가야 되죠. 그런데 그게 서울 하늘에 밤에 별이 없어서는 아닌 거죠. 별이 빛나고 있는데 그 별을 가로막는 도시의 불빛인 거죠. 우리가 만든 전기불, 전기불이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을 구체적으로 잘 보게는 해주지만 그 댓가가 뭐냐하면 더 멀리 있는 것, 그리고 항상 거기 있는 것, 그리고 진짜 정말 아름답고 멋진 것, 그리고 그 안에서 다른 것들이 있으니까 그런 것들의 근거가 되는 것을 우리가 놓치게 되는 거죠. 그런 것처럼 표층의식의 분별적 의식, 대상적 의식이 우리의 심층 마음의 활동, 그게 더 깊이 있고 언제나 거기 있다 라는 거죠. 그런데 그걸 표층의식이 뭐 복잡한 생각들, 망념들, 욕망들 이런 것들이 가리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내려놓아야 비로소 그런 것들이 보인다.

5.책이 1부 상구보리, 2부 하화중생으로 절묘하게 구성돼 있어 공부하기도 좋고 철학적으로 사유, 명상을 하기에도 아주 좋은 주제 같습니다. 내용 중에서 특히 상즉(相卽)과 상입(相入)에 대해서 아주 독특한 해설을 보여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상즉과 상입에 대해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상즉이나 상입이나 둘 다 일상적인 실체론적인 사고를 비판하기 위한 거죠. 일상적인 실체론적 사고는 선이 있으면 악이 있고 이게 별개의 것이다. 음양 이런 것, 선함과 악함, 밝음과 어둠, 이런 것은 다 대립시켜 놓는데 반해 상즉의 개념은 하나가 있는 것이 그 자체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 아닌 것을 통해서 그것으로 있다. 아닌 것과의 대비 속에서. 이걸 “즉해서 있다” 라는 거잖아요. 양은 음을 즉해서 있고 음은 양을 즉해서 있고 에셔의 그림에서도 천사는 악마를 즉해서 있다. 그 경계선이 딱 하나 잖아요. 천사가 없으면 악마도 없어지게 되는 거고. 그러니까 서로가 불가결한 존재다 라는 것이 상즉인데, 저는 상즉만으로 끝나서는 안되고, 이 상즉은 상호의존성을 얘기하는 거지만 그것뿐만이 아니라 상즉일 수 있는 근거는 사실은 표면적으로는 대립하는 것이지만 다른 것으로 나타나잖아요 상즉에서는. 상입은 이 다른 것이 사실은 그것 안에 들어있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음 안에 양이 들어 있고 양 안에 음이 들어 있고 천사가 악마와 다른 천사인 것 뿐 아니라 천사 안에 악마가 들어 있고 악마 안에 천사가 들어 있고, 그러니까 천태종에서 말하는 성구설(性具說), 모든 게 다 들어 있다. 일미진중함시방이라는 거가 가능하게 되는 거죠. 그런 의미로 생각하면 상즉은 표층의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말하는 거고 상입은 그런 표층적인 다양함이 다 다른 것으로 머무는 게 아니라 심층에서보면 다 하나다. 책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비유적으로 보면 표층에서는 꽃들이 땅위에서는 다 다르게 나타나지만 (땅 밑에) 그 뿌리는 다 하나다. 뿌리의 생명이 죽으면 다같이 죽게 되는 거죠. 공생공멸하는 관계. 바다 위의 섬들은 다 각각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외롭게 하나씩 떠 있는 섬이지만 바다에서는 다 하나다 뭐 이런 것을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6.앞으로 계획을 간단히 소개해 주시가 바랍니다.

지금까지 해오는 대로 강의하고 강의했던 노트로 책 내고 뭐 이렇게. 지금까지 대승기신론 강해, 선종영가집 강해를 냈던 것처럼 능엄경 강해, 원각경 강해, 성유식론 강해 이런 것들을 내고 싶습니다. 그리고 쉬운 책들 더 써보고 싶어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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