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이 뜨지 않는경우 여기를 클릭하여주세요.

*출연 : 논산 관촉사 주지 혜광 스님

*앵커 : 양창욱 부장

*프로그램 : BBS 뉴스파노라마 [오늘 저녁, 우리 스님]

양 : 매일 저녁 한 분의 스님을 만나 뵙니다. 오늘 저녁, 우리 스님. 오늘은 논산 관촉사 주지 혜광 스님을 만나뵙니다. 스님 나와 계시죠.

혜 : 예.

양: 스님, 논산 관촉사, 어떤 사찰인지 먼저 소개해주십시오.

혜 : 네, 논산 관촉사는 고려 태조 왕건의 셋째 아들, 광종 19년에 건립된 은진미륵으로 유명한 사찰인데, 그 당시 혜명 대사께서 조각 장인들 백 여명을 모아서 조각하고, 삼백여 명이 넘는 인력으로 37년 동안 조각해서 은진미륵 부처님을 조성해 오늘 날까지 천 이백 년 됐습니다.

양 : 그렇군요. 방금 말씀하신 은진미륵은 국보죠?

혜 : 네, 이번에 은진미륵이 국보 323호로 지정됐습니다.

양 : 그런데 왜 은진미륵은 '못 생긴 부처님'으로 알려져 있죠?

혜 : 우리가 부처님의 미소를 생각하는데, 은진미륵 부처님은 미소가 조금 부족하지만, 그 거대한 돌 구상으로서의 얼굴, 그렇게 크지 않았더라면, 오히려 더 모나지 않았을까, 그래서 세계 미술계에서는 그 당시에 어떻게 해서 얼굴 모습을 저렇게 크게 했을까, 연구를 많이 합니다. 그래서 그 조화가, 몸체와 얼굴 모습의 조화가 너무 잘 맞다, 이렇게 세계 미술계에서도 칭송이 자자합니다. 그런데 미소가 부족한 것은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못난이 보살, 그렇게 말들이 나오죠.

양 : 아, 또 그런 의미가 담겨 있군요. 그런데 우리 관촉사에는 은진미륵 말고도 성보문화재가 많을 것 같습니다. 천 이백년이나 됐으니.

혜 : 네, 은진미륵 부처님이 국보 323호가 됐고, 그 다음이 석등, 부처님 전에 불을 밝히는 석등이 화엄사 다음으로 석등이 제일 크죠. 그런 문화재가 있고, 또 이제 유일하게 부처님 전에 예를 갖출 수 있는 배려석이라고 해서 절을 할 수 있는, 그런 배려석이 유일하게 관촉사에만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문화재이고, 또 유일하게 사찰에 들어오는 문이 다른 곳은 다 웅장한데 그 당시 우리 관촉사에 들어오는 일주문은 석문으로, 아주 작고 낮습니다. 그래서 1m 65cm정도 밖에 안 돼요. 그래서 석문이 작은 곳이 여기 밖에 없고, 높이가 낮은 곳도 여기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 때 당시 왜 그렇게 석문을 작게 조성했을까 하는 의문도 있지만, 우리 스님네들이 (말씀하시기를) 아마 여기가 경북 안동, 논산 이 쪽이 유교가 제일 흥했지요. 흥하다보니 유생들이 부처님을 봐도 고개 숙일 줄 모르고 그러니, 그래서 석문을 은진미륵 부처님과 나란히 일치되게 만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고개를 안숙이면 은진미륵 부처님을 못 보도록 하게끔 그렇게 만들지 않았나 하는 그런 재밌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양 : 그렇군요, 오늘 참 여러 가지로 처음 듣는 얘기도 많고, 많이 배우게 됩니다. 스님, 그런데 스님께서는 사회 속으로 직접 나오셔서 여러 가지 희생 나눔을 실천하는 스님으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장애인복지관 운영위원장, 장학회 등등... 이런 사업들을 많이 하시는데, 스님 돈이 많이 드실 것 같아요? 이런 것 저런 것 다 하시려면...

혜 : 우리 불교가 당연히 사회와 같이 해야되고. 그래서 언론계나 이런 쪽하고도, 제가 언론불자회도 만들고, 이제 시간이 다 돼 가는데, 마침 불자 언론인들이 관촉사를 방문한다 해서, 제가 언론불자회를 만들다보니 그 분들이 오늘 이쪽으로 온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어쨌든 불교는 사회와 같이, 국민과 함께 가야하지 않나 그렇게 생각해서 그런 활동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양 : 네, 재정적으로는 감당이 되시는 것 같아 참 다행입니다. 스님, 지금 생방송 뉴스 시간이라 여기서 말씀 줄이겠습니다. 다음에 좀 더 많은 시간을 확보하고 또 모시겠습니다.

혜 : 알겠습니다.

양 :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스님.

혜 : 다 같이 행복합시다.

양 : 네. 고맙습니다. 논산 관촉사 주지 혜광 스님과 얘기를 나눠봤습니다.

 

저작권자 © BBS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