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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당시 무장공비 토벌을 위해 해인사를 폭격하라는 상부의 명령을 어기고,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을 지켜낸 ‘故 김영환장군 호국추모재’가 법보종찰 합천 해인사에서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는 유가족 등 천여명이 참석해 민족의 문화유산을 수호한 고인(故人)의 정신을 기렸습니다

대구bbs 정한현 기자가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요기(僚機)들은 명령이 있을 때까지 나를 따르기만 하라.”

전란이 한창이던 1951년 8월 26일

무스탕 전투기 엔진 소리가 산사의 적막을 깨우고, 산마루를 따라 해인사 위를 선회하던 찰나의 순간, 리시버를 통해 울린 故 김영환 장군의 일성입니다.

 김영환장군은 사천 제1전투비행단 제 10전투비행전대장으로 지리산 국군토벌대에 쫒겨 가야산 해인사에 숨어든 무장공비 소탕을 위해 해인사를 폭격하라는 명령을 받고 출격했지만 명령을 거부합니다.

지휘관으로서 모든 책임을 질 각오로 해인사와 팔만대장경 수호를 선택한 것입니다

인서트/이왕근 공군참모총장(최현국 공군교육사령관 대독)/공비소탕도 중요하지만 우리민족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을 지켜내는 것도 군인의 소명..이라고 생각하신 장군께서는 작전을 수행하던중 해인사를 절대 공격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불교를 넘어 인류의 문화유산이 된 팔만대장경을 지켜낸 장군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법보종찰 해인사는 호국보훈의 달인 6월에 즈음해 ‘故 김영환 장군 호국추모재'를 열고 있습니다.

인서트/향적스님/해인사 주지/ 한국불교의 법보인 해인사의 고려 팔만대장경을 수호하기 위해 오신 화엄성중이며 호법신장입니다. 그러므로 해인사는 그 공적과 은혜를 미래세가 다하도록영원히 잊을 수 없습니다.

김영환 장군의 목숨을 건 용단에는 팔만대장경의 가치를 일러준 불심깊은 어머니의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인서트/향적스님/해인사 주지/ 평소 어머니로부터 해인사에 봉안된 팔만대장경의 중요성에 대해 많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김영환 장군의 .어머니는 보살계를 받고, 보은화라는 법명을 받은 불심이 지극한 어머니였다고합니다.

김영환 장군의 후손인 김정기씨는 민족의 문화적 수준을 드높인 아버지를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인서트/김정기/故 김영환 장군 유족(子)/ 비록 35살의 짧은 삶을 사셨지만 지난 세월 돌이켜보면 정말 저희 아버님께서는 승리의 삶을 사셨다고 생각이됩니다. 그래서 존경하고, 또 존경합니다. 그리고 자랑스럽습니다.

이날 해인사 대적광전에서 열린 추모재에는 해인총림 방장 원각스님과 주지 향적스님, 6.25 전란 당시 김영환 장군을 도왔던 이강화 예비역 장군. 공군 관계자들과 유가족 등 천여명이 참석해 고인(故人)의 정신을 기렸습니다.

지난 2010년, 정부는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을 수호한 공적을 기려 김 장군을 금관문화훈장에 추서했습니다.

참혹한 전쟁의 참화에서 고 김영환 장군이 보여준 용기는 민족의 문화유산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비비에스 뉴스 정한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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