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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 : 뉴욕 원각사 주지 지광 스님

*앵커 : 양창욱 부장

*프로그램 : BBS 뉴스파노라마 [오늘 저녁, 우리 스님]

양 : 매일 저녁 한 분의 스님을 만나봅니다. 오늘 저녁, 우리 스님. 오늘은 뉴욕 원각사 주지 지광 스님 전화연결 돼있습니다. 스님 나와 계시죠?

지 : 네, 안녕하십니까?

양 : 네, 스님께서도 이번에 조계종 푸에르토리코 방문 일정에 참가하셨다면서요? 같이 가셨다면서요?

지 : 네 같이 갔었습니다. 제가 아름다운동행에서 모금한 성금을 원각사에서 받아서, 계좌를 따로 개설해서 그 수표에 직접 사인해 그 날 참석하신 분들에게 성금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러 갔었습니다.

양 : 그렇군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셨던 것 같습니다. 하하. 스님께서는 미국에서 30년 정도 사신 걸로 들었습니다. 미국령인 푸에르토리코랑 미국 문화는 그래도 차이가 있지요?

지 : 그렇죠. 가보니까 언어는 스페인어를 쓰고 있고요. 돈이나 그런 것들은 미국과 똑같이 달러를 쓰고 있고, 음식 같은 걸 먹어보니까 미국 음식도 있지만 푸에르토리코 음식을, 남미 음식들을 주로 먹습니다. 그러니까 음식 문화와 주거 문화가 미국하고 현저히 차이가 났습니다. 주거 방식도 미국은 나무로 많이 짓는데, 그쪽은 콘크리트 건물이 많더라고요. 개인 주택 같은 경우도. 그리고 사람들이 좀 더 따뜻하고 친절한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양 : 그렇군요 스님. 그런데 제가 또 언뜻 궁금해지는 게, 스님 어떤 인연으로 미국에 가시게 된 겁니까? 처음에.

지 : 저는... 저희 은사 스님께서 미국에 가서 공부를 젊은 시절에 해 보라고 권하셨고, 또 저도 문득 은사 스님 말씀을 듣고 미국에 가서 공부를 해보는 것도 젊은 시절에 괜찮지 않을까 해가지고 미국으로 건너왔습니다.

양 : 네, 그래서 지금 뉴욕 원각사를 12년 전에 불사를 하게 되셨는데, 뉴욕 원각사가 어떤 사찰인지 자세히 소개를 좀 해주세요

지 : 뉴욕 원각사는 미 동부에서 최초로 세워진 한국 사찰입니다. 44년 정도 됐습니다. 1974년도에 숭산 행원스님께서 몇몇 불자들과 모임을 시작으로 해서 세워진 절이고요.

양 : 그러니까 스님께서 주지를 맡으신 것이 12년 되셨단 말씀이시죠?

지 : 네, 12년 됐지만 절이 처음 생긴 건 1974년입니다. 숭산 행원 스님께서 세우시고 법안 스님께서, 동국대 부총장도 지내시고 70년대에, 그리고 조계종 총무원 부장도 지내셨던 법안 큰스님께서 숭산 스님이 세우신 절을 이어받아 처음엔 맨해튼에서 세우셨죠. 집을 사서 조그만 창고를 개조해서 법당을 만들어서 운영을 하시다가, 1985년도에 큰 꿈을 안고 불교대학을 세우신다고, 30만 평이나 되는 땅을 사서 현재 이쪽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옮겨 오신 뒤로 뉴욕대학에서 박사학위도 마치시고 했는데, 법안 스님께서 병이 나셨어요. 20년 정도 병상에 누워 계셨는데, 병환으로 인해 법안 스님이 편찮으시니까 절의 사세가 많이 기울었습니다. 그래서 2004년도에 정우 스님과 제가 인연이 되어서, 저는 물론 정우 스님과 인연이 되기 전부터 원각사라는 절을 왔다 갔다 했습니다만, 그런데 스님이 아프신 그 때 제가 2004년도에 인사를 한번 드리러 갔다가 절이 너무 퇴각된 모습을 보았고, 법안 스님께서도 기도라도 와서 해달라는 요청을 하셨습니다. 당시에는 학생 신분으로 공부를 하고 있었던 중이었는데 왔다 갔다 하면서 기도도 해드리고 법회도 해드리고 초파일 행사도 해드리면서 점점 인연이 많이 되면서, 그러던 상황에 정우 스님하고도 인연이 되고, 그래서 소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2005년 4월 16일날 부주지 소임을 맡았고, 2009년도에 정식으로 주지 소임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2011년부터 불사 계획을 정우스님을 비롯해 불사추진위원장, 신도회장 등 여러 불자님들하고 정식으로 불사 계획을 세우고, 마스터 플랜을 잡고 해서 지금까지 그래도 원만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양 : 네, 그렇게 지금 대작불사가 진행 중이고... 그런데 스님, 미국에서는 불교가 티베트 불교가 많이 활성화돼 있다고 들었습니다.

지 : 그렇죠.

양 :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지 : 제가 깊이 알지는 못해도, 언뜻 알기로는 미국 사람들이 100년 전부터 티베트 스님들을 미국에 모셔다가 공부를 시켰고요. 그 공부한 스님들은 이제 언어 장벽이 없었기 때문에 미국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는, (이런 인프라가) 오래 전부터 구축돼 축적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에는 티베트 사람들의 종교적 열정과 수행, 엄격한 가르침 이런 것들이 미국 사람들에게는 많이 어필을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달라이 라마 승하의 역할 같은 것도 대단히 중요하고, 많은 스승들이 미국에 와서 지속적이고 꾸준히 미국 사람들의 근기에 맞는 가르침들을 계속 펴오지 않았나... 그리고 각 대학의 교수들이 일찍부터 티베트 불교를 공부해서 많은 대학에서 티베트 불교를 가르치고 있고, 교수들이 말하자면, 티베트 불교의 포교사 역할을 하고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특히, 많은 사찰들이 티베트 방식으로 지어져서 활동을 하고 가르치고 있고, 이런 것들이 계속 축적돼 오랜 세월이 지나다 보니까 미국은 대체적으로 불교하면, 티베트 불교로 각인돼 있는 것 같습니다.

양 : 네, 그럼 그런 환경에서 우리 불교를 포교 차원에서, 어떻게 활성화시켜나가면 될까요?

지 : 일단, 하드웨어가 중요하겠지요. 하드웨어는 제대로 사격을 갖춘 도량이 필요하고요, 거기에 따르는 명상 프로그램이나 불교강좌 프로그램, 또 한국 불교에 맞는 문화적 접근, 이런 것들을 좀 지속적으로,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만들어나가야 되고. 또 큰 스승들의 가르침을 영어로 이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발간을 해나가야 합니다. 예를 들어 팃낙한 스님도 미국에서 많은 영향을 끼쳤던 스님 가운데 한 명인데, 아마존에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시면 인터넷 E-북이 약 120권 정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 분 스님의 저서가. 달라이 라마 스님의 저서는 말할 것도 없고요. 몇 백 권의 저서가 오랜 세월 지속적으로 가르침들이 나와 줬기 때문에 그런 토대 구축이 되는 가르침을 펼 수 있었는데, 우리 한국 불교 역시 그런 가르침들을 지속적으로 펴야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제 미국 현지의 사람들과 영어권 불자들에게 포교하기 위해서는 법회를 할 수 있는 법요집 같은 것들을 영어로 발간해서 쉽게 이 사람들이 불교에 접근할 수 있도록, 일단 언어 장벽이 가장 큰 문제인데, 그걸 뛰어넘을 수 있도록 인재구성도 중요하고 그런 프로그램, 도량, 이런 것들이 갖춰져야 되겠죠. 그래서 원각사는 일단, 대작불사를 통해서 하드웨어 역할을 할 수 있는 도량은 구축하고 있습니다. 회주이신 정우 스님과 불자님들, 제가 함께 프로그램 아이디어를 내서 준비를 하고 있고요. 그런 것들을 아마 종단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이런 영어로 된 여러 가지 아이템은, 함께,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여러 연구원들이나 또는 포교에 힘쓰시는 분들이 함께 공동작업을 해나가야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양 : 알겠습니다, 스님. 아휴 스님, 언제 꼭 한번 뵙고 싶습니다. 오늘 말씀 여기서 줄이겠습니다. 말씀 고맙습니다. 뉴욕이지만 너무 잘 들리네요. 고맙습니다.

지 : 네

양 : 네, 뉴욕 원각사 주지 지광 스님과 말씀 나눠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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