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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에르토리코는 한국전쟁 당시 미국과 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병력을 파병한 카리브해의 작은 섬나라인데요.

BBS 뉴스는 6·25 68주년을 맞아, 푸에르토리코 현지에서 한국전 참전용사들을 만나 참혹했던 당시의 상황을 직접 들어보고 이들의 숭고한 희생 정신을 조명해봤습니다.

푸에르토리코에서 정영석 기자입니다.

한국전 푸에르토리코 참전용사 마리오 라미레스.

 

제주도의 5배 크기인 미국령 푸에르토리코.

항구도시 산후안에 위치한 '카사(CASA) 클럽'은 한국전 참전용사들이 종종 모이는 곳입니다.

열아홉 살 나이에 한국 땅을 밟은 라미레스 씨에게 한국 전쟁의 기억은 구순을 앞둔 지금까지도 또렷하게 남아있습니다.

라미레스 씨는 당시 전장의 포화보다 살을 에는 듯한 한국의 혹한 날씨가 가장 두려웠다고 말합니다.

[마리오 라미레스(87세)/푸에르토리코 참전용사]

"겨울에 군화가 너무 얇아서 그 안에 양말을 두 켤레 신었습니다 그리고 산에 올라갔을 때는 형체도 알아 볼 수 없이 사망한 사람들을 보고 무서웠습니다."

백발이 된 용사는 머나먼 이국 땅에서 용맹을 떨친 당시의 모습을 잠시 떠올립니다.

목숨을 걸고 싸웠던 자신과 전우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찹니다.

하지만, 먼저 떠났거나 아직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전우들을 기억하면 한없이 미안하기만 합니다.

[마리오 라미레스(87세)/푸에르토리코 참전용사]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총성이 들리는 것 같고 무섭고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눈물이 납니다."

푸에르토리코는 한국전쟁 발발 직후 6만 천여 명의 병력을 파병해 도움을 준 나라입니다.

당시 전사한 푸에르토리코 군인은 700명, 부상자는 2천 명이 넘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러 아직까지 생존해있는 참전용사는 2천여 명에 불과합니다.

파란 눈의 노병, 라미레스 씨는 더 늦기 전에 한국에게 꼭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마리오 라미레스(87세)/푸에르토리코 참전용사]

"지금도 저는 젊은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 해도 한국을 위해 싸울 것입니다."

푸에르토리코에서 BBS NEWS 정영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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