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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경 전 서울시의원 "여성의원 꿈 펼칠 은평구,남북협력 경의선 복원의 중심될 것"[BBS 뉴스와 사람들] 김미경 전 서울시의원
최선호 기자 | 승인 2018.06.10 18:36

□출연 : 김미경 전 서울시의원
□진행 : 강동훈 BBS불교방송 방송본부장

[인터뷰 내용]

▷강동훈 : 오늘의 초대손님 김미경 전 서울시의원입니다. 어서오십시오.

▶김미경 : 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김미경입니다.

▷강동훈 : BBS 애청자를 위해서 인사를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김미경 : 안녕하세요? 저는 먼저 자랑스럽게 만공회 회원입니다. 이렇게 먼저 말씀드립니다. 저는 전라남도 영암에서 태어났고요. 제가 45년 동안 은평구에서 살았거든요? 그리고 수색으로 이사 온 지는, 은평구로 이사 온 것이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이사를 왔습니다. 그래서 은평구에서 구의원 두 번, 서울시의원 두 번을 했고요. 그만큼 우리 은평구민들께서 많이 사랑을 해주신 거죠. 너무나 감사드리고. 또한 제가 2014년에 서울특별시의회에서 최초로 여성도시계획관리위원장을 지냈고 또한 2012년 문재인 대통령 후보 서울시민캠프 상임대표도 했고 이번 대통령 선거 때는 가장 어려워하는 곳이죠. 보훈안보특별위원회 공동위원장을 했습니다. 서울시캠프에.

▷강동훈 : 조금 전에 말씀하셨지만 시의원을 두 차례나 역임했고, 그야말로 은평구의 대표적, 그리고 서울시의 대표적 여성 정치인이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데. 우리나라 여성 정치인의 비율은 얼마나 됩니까?

▶김미경 : 우리나라 여성정치인 비율이 지금은 조금 나아졌다고 할 수 있는데요. 2016년 20대 총선 300명의 국회의원이 계시는데요. 그 중에 51명이 당선이 됐거든요? 17%입니다. 이때가 여성이 우리나라 역대 최다이고요. 2015년에는 190개 국가 중 111위입니다. 그리고 300명 중에 49명이 당선되어서 16.3%였거든요? 현재도 아마 100위권 밖에 있습니다. 그래서 굉장히 열악하죠. 현재.

▷강동훈 : 더불어민주당의 추미애 대표가 여성 당대표가 된 것도 사실은 과거 한 10년 전에는 가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인데 당당하게 대표를 하고 계시고, 여당대표를 하고 계신데. 그 뒤를 이어서 은평구의원 또 시의원을 하고 계시는데. 광역단체장의 경우에는 여성 시장이 별로 없어요?

▶김미경 : 광역단체장 같은 경우는 아무도 없습니다. 이번에도 홍미영 후보나 많은 분들이 도전을 하셨거든요?

▷강동훈 : 인천, 부평?

▶김미경 : 맞습니다. 홍미영 후보님도 여러 가지 단계를 거쳐서 하신 그런 분이신데.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광역단체장도 분명히 이제는 나오셔서 활동을 하실 수 있게끔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강동훈 : 각 당마다 그래서 경쟁력을 여성분들에게 주기 위해서 어떤 %의 이익을 주는 그런 제도가 없나요?

▶김미경 : 경선 때 물론 여성후보들에게 가산점이 주어지기도 하는데, 그것을 극복해내기가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우리나라가 남성적인 문화가 아직 살아있고. 이런 과정 속에서 여성이 광역단체장까지 극복해내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저는 추미애 대표님 같은 경우에도 굉장히 대단하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여성분들이 많은 지도자들이 나오고 계시는 중이죠. 메르켈 총리나 많은 분들이 굉장히 다양한 역할을 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런 과정 속에서 우리도 대한민국도 앞으로 더 많은 여성들이, 또 특히나 저희는 기초인데요. 광역단체장들도 곧 나오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강동훈 : 사실상 서구유럽 같은 경우는 많은 분들이, 여성들이 총리를 많이 역임하고 계셨고, 사실은 대표적인 여성들이 많았잖아요? 자연스럽잖아요? 여성 대통령이 나온다고 해도 당연하게 나오는가보다, 라고 생각하는데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남아 이쪽 지역에는 크게 여성들이 부각되지 않는. 아마 정치적인 문화가 형성이 되어 있는 것 같아요.

▶김미경 : 동남아 중에서도 오히려 필리핀이나 이런 데도 많은 여성들이 활동을 했는데요. 특히 우리나라가 유교적인 그런 문화가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굉장히 그동안 여성들이 활동하기에는 굉장히 어렵지 않았나 싶고요. 또한 선거과정 속에서도 어려운 점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선거공영제 때문에 그나마 나아졌는데, 2002년 전에는 실상 여성들이 활동하기가 어려운 것이 경제적인 부분도 있었고 또한 문화 자체가 술도 먹어야 되고 여러 가지 그런 과정들이, 남성적인 부분들이 많이 차지해 있었기 때문에 이것이 굉장히 어려운 부분이 아니었나, 여성들이 도전하기에는 어려웠고. 또한 그 문화 자체를 이해를 못한 것이었죠. 여성들이 어디에 나가면 안 된다, 또한 소위 말하면 우리가 옛날 이야기 대로 암탉이 울면 어쩐다, 이런 이야기들이 많이 있었잖아요? 이런 과정 속에서 여성들이 정치하기가 굉장히 어려웠지 않나, 그렇게 생각이 듭니다.

▷강동훈 : 김미경 의원님 같은 경우에는 정치를 어떤 계기로 시작했고 정치한다고 해서 혹시 부모님들이 반대하거나 그런 경우는 없었어요?

▶김미경 : 아닙니다. 저는 저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가 부모님이셨는데요. 실상 제가 정치를 시작한 것은 저희 아버님께서 정치에 나가셨었어요. 후보출마를 하셨는데 실패를 하셨습니다.

▷강동훈 : 은평구에서요?

▶김미경 : 은평구에서. 저희 지역에서. 제가 처음 시작한 지역에서 아버님이 먼저 후보로 나가셨고. 그 가운데서 경선에서 아버지가 현역을 이겼는데, 그 현역이 다시 본인이 무소속으로 나갔어요. 그러는 바람에 아버님께서 떨어지셨거든요? 제가 그때 정치의 그런 여러 가지 폐단 이런 것을 봤고. 그 과정 속에서 제도권 밖에서 아무리 바꿔달라, 외치는 것은 두세 개를 바꿀 수 있다고 하면 제도권 안에 가면 다섯여섯 개는 바꾸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했고. 또한 그때 당시에는 아무래도 선거공영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야말로 소위 말하는 돈 선거의,

▷강동훈 : 과거 한 70년 대 그때 선거인 것이죠?

▶김미경 : 그렇죠. 98년 까지는 거의 그래서. 2002년 이후에 선거공영제가 생기면서 노무현 대통령께서 선거공영제를 만드시면서 그때는 조금 더 나아졌지만, 그 전에는 아무래도 금권 선거들이 좀 많이 있었기 때문에 그때 당시에 아버님을 돕다가 제가 정치라는 것을 그 다음에, 저희 아버님 다음에 제가 시작하는 계기가 됐고.

▷강동훈 : 선거에 아버님이 하실 때는 그때 나이가 어떻게 되셨습니까?

▶김미경 : 그때가 제가 서른네 살 정도? 서른네 살 정도 됐었던 것 같아요.

▷강동훈 : 소위 말하는 정치의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을 동시에다 같이 봤겠네요?

▶김미경 : 네, 그렇죠. 정치의 밝은 면이라고 하면 그때는 밝은 면을 잘 못 봤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그야말로 아버님 돕느라 그 여러 가지 단점들만 보이는 그런 구조였지, 당선이 됐어야 좋은 면을 봤을 텐데. 그때는 낙선을 하셨기 때문에 정치에 대해서 좋은 면보다는 아무래도 안 좋은 부분을 더 많이 봤죠.

▷강동훈 : 은평구, 참 좋은 산자락 밑에서 대한민국의 품을 안는 그런 풍수 형태의 은평구인데. 거기서 여성 의원으로서 재선이나 했단 말이죠? 국민들이 평가하는 김미경 의원, 어떻게 평가하고 계시나요?

▶김미경 : 제가 처음 구의원 할 때는 주민들이 저한테 발바리 구의원이라고 했어요. 그때는 발바리라는 의미 자체가 굉장히 안 좋은 이미지였죠. 그때 언론지상에서 안 좋은 사람이 언론에 계속 나왔을 때인데. 그때 발바리라는 의미가 저에게는 굉장히 지역을 많이 다니고, 많이 소통하고.

▷강동훈 : 부지런하다? 바지런하다?

▶김미경 : 네, 그러한 사람이라고, 또 그러한 정치하는 사람이라고, 동네 정치를 하지만. 그런 사람이라고 해서 주민들이 붙여준 별명이 발바리 구의원이었고. 또 저는 되도록이면 주민들과 소통을 하려고 굉장히 노력을 했던 것 같습니다. 소통하려고 꾸준하게 노력했고. 또한 진심으로 그 말씀을 들어드리려고 노력했고. 이런 부분들이 지금까지 저를 지탱해온 힘이 아니었나 생각하고, 지금도 이 주민들이 믿어주시고, 또 그 과정 속에서 제가 아직도 아무래도 시의원, 구의원으로 가면 갈수록 일이 다르잖아요? 아무래도 하는 일들이 많이 다른데. 주민들 입장에서는 제가 구의원의 일까지도 모든 것을 다 해야 하는 그런 생각이 젖어서 그런지 항상 그런 것에, 밑에 하수관이 뭐가 잘못됐는데, 아니면 이것 옆에 쓰레기가 많은데, 그런 것을 다 전화주세요. 이것 바꿔달라. 그러니까 모든 것을 그때의, 김미경의 기초부터 있었을 때부터 그런 친분관계, 그런 것으로 인해서 저에게 힘을 주시고. 또 물론 그것이 시, 구의원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도 그 분들은 그렇게 저를 소통하고 함께하는 그런 부분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강동훈 : 상임위활동은 주로 어떤 분야에서 많이 하셨나요?

▶김미경 : 저는 상임위활동을 구의원일 때는 행정, 복지하고 도시 쪽하고 같이 했지만 두개 다 같이 했었죠.

▷강동훈 : 도시도 같이 하셨고요?

▶김미경 : 구의원 시절에 그랬는데. 그것은 딱히 구분되지는 않았어요. 기초에서는. 그런데 서울시의회에서는 아무래도 많이 나눠지죠. 부분적으로 의원들이 많기 때문에 부분적으로 나뉘어지는데. 제가 문화 4년하고 도시관리 4년을 했습니다. 그런데 문화와 도시를 입히는 그런 일들을 할 것인데요. 제가 서울시에 저는 전체 도시 위에 문화를 입히는 그러한 일들을 제가 계획을 하고 있었고, 그때도 계속해서 그런 역할들을 했던 것 같습니다.

▷강동훈 : 그런 것은 특징적인 전문성이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여성의원 최초로 서울시 도시관리계획위원장 자리까지 하셨단 말이에요? 이것이 쉽지 않은 자리이고 사실은 전문성과 여러 가지 부지런함, 그리고 공무원과의 소통도 잘 되어야 이것이 가능한 자리 아니겠습니까? 어떻게 그런 자리에 오르셨고 재직 시절에 어떤 사업을 많이 펼치셨는지요?

▶김미경 : 저는 도시관리위원장을 했던 근본적인 이유 중 하나가 저희 은평이 기반시설이 굉장히 부족합니다. 실상 은평이라는 곳이 49만 인구인데요. 50만이 넘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예식장이 하나도 없어요. 

▷강동훈 : 그래요? 마포구가 한 30만, 39만, 40만인데 여기에 예식장이 굉장히 많은데?

▶김미경 : 그렇죠. 저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식장이 하나 없고, 변변한 호텔이 하나도 없고. 그렇다고 대학도 기독대 하나가 있는데요. 지역사회 네트워크를 하는 큰 대학도 없고. 그러다 보니 그야말로 베드타운이죠. 그래서 그런 가운데서 생활을 하다 보니 이런 기반시설이 부족한 그런 부분들을 어떻게 해야 될까. 또 저희 지역은 은평구라는 곳이 마포하고 맞물려 있는데요. 철도하나 사이인데. 옛날에 수색이라는 동네는 기관사 분들,

▷강동훈 : 화물 관련 기관사.

▶김미경 : 네, 기관사들 관사로 인해서 수색이라는 마을이 형성이 됐어요. 그래서 관사라고 하면 일제시대 때 굉장히 잘 살던 곳이었죠. 잘 살던 그런 마을이고 그때 형성이 됐던 곳인데. 100년 전에. 그랬던 마을인데 지금 어떻게 보면 저희가 어렸을 때의 마포는 그야말로 넝마주이 아저씨들이 계셨고 쓰레기 버려지고 또 홍당무 밭이었고 땅콩 밭이었어요.

▷강동훈 : 과거의 마포구?

▶김미경 : 그렇죠. 과거의 마포에는. 그러다 보니 굉장히 상대적인 박탈감이 있죠. 지금의 마포는 굉장히 상전벽해가 되잖아요? 그래서 수색에 은평주민들, 수색주민들 입장에서는 이 상대적인 박탈감이 굉장히 심한 것이죠. 옛날에는 굉장히 이쪽에, 수색이라는 동네, 은평이라는 동네가 굉장히 잘 살았는데 지금은 완전히 그야말로 180도 바뀐 것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상대적인 박탈감 속에 구민들의 숙원사업이, 수색역세권 개발이 숙원사업이었고 또 그것을 상암과 연결하는 사업, 이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을 했고. 그 과정 속에서 제가 수색역세권 개발을 해야 되겠다, 이런 생각이 들어서 서울시의회에 도시계획관리위원회 위원으로 들어가게 됐습니다. 실상 처음에는 제가 처음 8대 시의원에 됐을 때는 문화체육관광위원회를 갔어요. 문화체육관광위원회를 간 것 중에 하나는 제가 의정생활을 하면서, 구의원을 하면서 처음에 명함을 교부하면서 선거운동을 하러 다닐 때 PC방에 우리 아이들이 교복을 입고 자욱한 담배연기 속에서 있는 모습을 봤어요. 지금은 달라졌지만. 15~6년 전의 PC방은 거기에 뿌연 담배연기가 그렇게 같이 있었고 아이들이 교복을 입고 그 안에서 있는 모습을 보고 제가 이 아이들을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참 고민스러웠어요. 정치를 한다고 시작했는데 그런 아이들을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는 가운데서 아이들이 갈 곳을 마련해줘야 되겠다. 그렇게 해서 시작한 것이, 제가 문화체육관광위원회를 갔는데 이 문화체육관광회를 가다 보니 실상 우리 아이들한테 해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어요. 문화라는 컨셉이 자체가 아이들의 문화인 것이지 실상 아이들의 공간은 거의 보건복지, 복지 쪽에서 다루더라고요?

▷강동훈 : 여성과 보건복지, 문광의 체육 분야.

▶김미경 : 그런 쪽에서 다루어지고 있어서 이것이 조금 제가 괴리감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문화는 어차피 우리가 앞으로 미래의 먹거리인 것이고 또한 앞으로도 그것은 더 해야 될 것으로 생각을 갖고. 그때 당시에 제가 도시계획관리위원에 들어갔던 이유 중에 말씀드린 것처럼 이것이 은평의 여러 가지 미래 비전, 그런 것들을 생각을 했고. 그래서 도시관리위원회에 갔고. 또한 지금 남북문제가 굉장히 잘 풀리고 있잖아요? 이 과정 속에서 저는 15년 동안 제가 그 수색역세권 개발에 매달리고 있는데요. 거기에 가장 그야말로 준비가 됐다고 생각이 들어서 조금 더 힘을 내면 수색역세권 개발이 아무래도 경의선 출발점이잖아요? 시작점이기 때문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 같습니다. 또한 여기에 제가 서울시에서 과를 만들었어요. 이것은 수색역세권 개발을 위해서 서울시 서북권사업과를 만들어서 이것이 역할을 할 수 있게끔, 개발의 역할을 할 수 있게끔 마중물을,

▷강동훈 : 시청의 기구에다 하나 만들어가지고 직접 할 수 있게끔?

▶김미경 : 그렇죠. 서울시에 아예 기구를 만들었습니다. 과를 아예 만들었어요. 서북권사업과라고 해서. 

▷강동훈 : 실질적으로 요즘 들어 가보면 그쪽 수색역 근처가 KTX가 인천공항으로 가고 또 앞에 디지털미디어시티, 그 다음에 대학생들의 보금자리 등 여러 가지 부분들이 상당히 활성화되는 부분들이 눈에 보이더라고요? 은평구에 그런 여러 가지 도심개선사업도 했지만 또 교통분야에 보면 산새마을버스? 이런 것도 말씀을 들어보니까 했다고 하는데. 이것은 뭡니까?

▶김미경 : 저희 은평구에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굉장히 열악하죠. 그리고 좀 전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도시계획 차원에서 개발을 해야 될 것도 있지만 개발을 하지 못하는 곳들이 있습니다. 실상 사업성이 부족하죠. 언덕들이 많고 이렇기 때문에 개발을 하게 되면 사업성이 안 나와서 원주민들이 입주를 할 수도 없고 또 사업성이 안 나온다면 이것이 개발의 여력이 안 되는 것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저희가 하는 것이 도시재생프로그램이었어요. 그것도 제가 도시관리위원장일 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처음에 시작을 했지만 도시관리위원회로 가서 산새마을이라는 것을 했는데. 이 마을버스는 어떤 사업이었냐면 어느 날은 제가 그것도 선거운동기간이었어요. 선거운동기간 동안 산새마을이라는 곳이 굉장히 신사동에 언덕배기였거든요?

▷강동훈 : 소위 말하는 고바위?

▶김미경 : 고바위죠. 언덕을 올라가는 어르신을 봤는데, 어떤 어르신이었냐면 약을 파시는 분들이 홍보로 해서 거기서 잠깐 설명을 듣고 그러면 휴지 같은 것을 주시잖아요? 그래서 그 휴지를 받아가지고 어르신이 올라가시는데 한 발자국 올라가다가 쉬시고 세 발자국 올라가다가 쉬시고 이런 모습을 본 거에요. 그래서 저것을 어떻게 해 드리는 것이 좋을까, 저 분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해서 그러면 저 분들을 위해서 마을버스를 넣어드리는 것이 맞겠다, 생각을 했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밑에다가 좋은 시설을 해놓으면 뭐합니까? 이 분들이 꼭대기에서 한 번도 내려오지를 못하잖아요? 활용을 못하게 되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이 분들을 위해서 마을버스를 넣어드려야겠다, 생각하고 마을버스를 넣으려고 준비를 하다 보니 여기에 마을버스를 넣으려면 상가 주변의 차들을 옮겨야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산새마을이라는 곳에 주차장을 만들어드리고 그 곳에 마을버스가 들어갈 수 있게끔 역할을 했습니다. 

▷강동훈 : 은평구에 산새마을이라는 마을이 있단 말이죠?

▶김미경 : 네, 산새마을은 지금 도시재생의 롤모델이 되고 있어요. 그것이 박원순 시장뿐만 아니라 국가의 사업으로도 국토교통부에서도 최고로 치는 것이 산새마을이라는 곳이고. 그리고 이 도시재생의 롤모델이 되는 곳입니다.

▷강동훈 : 아까 말씀하셨던 소위 말하는 은평구 발바리 김미경 의원이 현장을 주로 다니면서 만든 작품이네요?

▶김미경 : 그렇죠. 저는 그것을 굉장히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강동훈 : 현장을 다니시지 않았다면 그런 것을 못 봤을 것이고. 그러니까 그렇게 구민을 위해서 뛰었고 또 구민들이 좋아하는 구의원이셨는데. 이번에 은평구청 경선 과정에서 어려움을 많이, 우여곡절을 겪었다고 들었어요?

▶김미경 : 네, 이번에 처음에는 저도 상상을 못했죠. 제가 작년 6월에 이번에 구청장을 나가겠다고 결심을 하고 하는 가운데서 쭉 선거운동을 했었고. 그 가운데 갑자기 저한테 설명도 없이 경선탈락이라는 것이 있었고, 경선배제가 되는 거에요. 그래서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또한 제가 들리는 이야기로는 제가 후보경쟁력, 적합도 조사라는 것이 있는데요. 적합도 조사에서는 제가 만점을 받을 정도였고 다른 후보들은 굉장히 두 배로 차이가 날 정도였는데 그런 상황에서 이런 후보를 그야말로 경선배제를 해버린 거에요. 그러다 보니 구민들께서도 좀 화가 나셨고 이것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강동훈 : 당내 경선 이야기죠?

▶김미경 : 그렇죠. 당내 경선 이야기죠. 당내 경선하기도 전에 아예 공심위라는 곳에서 처음부터 아예 배제를 해버린 거예요. 만약에 배제대상으로 해서 하위 20%라는 개념으로 해놨는데, 하위 20%라는 것은 제가 서울시, 좀 전에 제가 여러 가지 일들을 말씀드렸듯이 제가 열정적으로 일한 사람 중에 하나였는데 그런 후보를 하위 20%라는 개념으로 만들어놓으니 이것을 다 인정을 안 하신 것이죠. 만약에 하위 20%였으면 –10점만 해서 그것을 감점만 하면 되는데 그것도 아니고 하위 20%를 만들어놓고 아예 그것을 경선배제로 해버리다 보니 이것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인정을 안 했죠. 그런 가운데서 시당에서 끝나고 제가 중앙당에다가 다시 재심을 요청해서 다시 네 명이 처음에 시당에서 발표를 했고, 경선배제로 인해서. 그 다음에 네 명에서 다시 중앙당에서 두 명을 더 추가해서 여섯 명이 경선을 했습니다. 여섯 명이 경선을 해서 그곳에서 제가 20% 차이, 다른 타 후보들보다 20%정도 차이 나게끔 이겼고, 또 1, 2등 후보 중에서도 다시 20%가 차이 나는 그런 결과물로 해서 이번에 최종후보가 됐습니다.

▷강동훈 : 무엇보다도 구민들이 하루만에 8천 명이 사인을 해주면서 했다는 것이 그것이 놀라운 것 같아요.

▶김미경 : 하루는 아니고 이틀 정도 였는데요. 이틀 동안 이렇게 사인을 해주시고 정말 김미경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힘을 주셨던 것 같아요. 물론 당도 있었지만 저는 이번에 과정에서 은평구민들께서 저를 지켜주시고 함께 해주셨고. 또 많은 지인들께서 김미경이라는 사람은 그렇게 일하지 않았다. 또한 저희 동료 의원들께서 설명을 해주셨어요. 동료의원들이 서명해주시면서 어떻게 김미경을? 그러면서 본인들이 직접 사인해주시고 그렇게 해서 이번에 제가 최종후보까지 됐습니다.

▷강동훈 : 이제 출사표를 던졌고 잘 되기를 빌면서, 은평구 하면 여러 가지 숙원사업도 많을 텐데. 뉴타운 사업도 계속 진행 중이고. 아까 말씀하신 수색역 경의선 출발지 개발 필요도 말씀하셨는데. 이런 것을 하려면 아무래도 구민들의 동의, 또 서울시의 지원, 중앙부처의 도움 이런 것이 필요할 텐데. 삼각편대를 잘 형성할 수 있나요?

▶김미경 : 물론이죠. 저 같은 경우에는 은평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에 은평의 현안 문제에 관해서 가장 지금 어느 후보보다도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이 들고요. 또한 그런 가운데서도 지금 서울시장과 제가 8년을 같이 생활을 했죠. 8년 동안 같이 생활을 했고 그렇기 때문에 서울시의 공무원들의 네트워크뿐만 아니라 각종 현안 문제를 풀어가는 데 네트워크가 되어 있고. 그런 가운데서도 또 대통령과도 네트워킹이 되는 그런 구조인 것이죠. 대통령 첫 경선 때부터 제가 함께 했었고 대통령께서 지금 하시는 남북문제 풀어가는 과정이라든가 이런 과정에서도 은평은 굉장히 중요한 요충지거든요?

▷강동훈 : 사실상 남북 철도의 출발점도 될 수 있고요?

▶김미경 : 네, 남북 철도의 출발점이 수색에서 경의선이 출발하는 것이고. 또한 은평에 통일로라고 있습니다. 통일로는 거기가 옛날에 지명이 양천리라고 합니다. 양천리라는 것은 북한으로의 천리, 을지로의 천리 그래서 양천리인 것이죠. 그런 의미가 있는 곳이기 때문에 그것이 통일로이거든요? 그래서 양 쪽에, 철도로는 수색으로 시작하고 도로로는 이 통일로가 있고 그런 가운데서 이 은평이 앞으로 도약할 수 있는 큰 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요. 또한 여기에 은평에 내년 5월이면 800병상의 병원이 들어섭니다. 성모병원이. 그렇다 보면 이것이 앞으로 북한의 여러 가지 의료시설 지원이라든가 이런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이 들어서. 은평구는 많은 것들이 준비되어 있고. 또한 그 가운데 일자리들도 많이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 저는 큰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강동훈 : BBS 뉴스와 사람들 서울시 전 의원이시죠. 김미경 전 의원 모시고 방송 진행하고 있는데. 조금 전에 도심권 개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 중에 한 부분을 정책하는 분이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인데, 아마 우리 청취자 여러분들은 안 보이시니까 모르시겠지만 김현미 장관과도 닮은꼴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마 은평구가 그런 역할을 하는 데 김현미 장관, 그리고 김미경 의원의 융합이 같이 된다면 아마 은평구의 발전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아까 만공회 회원이라 하셨죠?

▶김미경 : 네, 만공회 회원입니다.

▷강동훈 : 은평구에 유명한 사찰이 있고 또 황금사찰이 있어요. 유명한 사찰이라 하면 진관사, 태극기로 유명한 진관사인데. 자주 가보십니까?

▶김미경 : 물론이죠. 저희는 진관사가 있고 태극기는 일장기 위에 그려진 태극기입니다. 그래서 그 태극기가 발견되기도 했고 거기가 옛날에 세종대왕께서 한글 연구하던 비밀연구기지이기도 했고, 또 조선 500년 동안 이곳이 현충원 역할을 했던 곳입니다. 

▷강동훈 : 호국 영령들을 위한 

▶김미경 : 국행수륙제를 굉장히 유명하게 하고 계시죠. 예산이라든가 이런 부분을 제가 열심히 해서 반영될 수 있게끔 했던 사람이기도 합니다.

▷강동훈 : 주한 외교사절들도 가서 차도 하고 사찰음식도 하고 그 역할을 의원님이 다 하셨군요?

▶김미경 : 네, 그러니까 지금 진관사 같은 경우에는 외국 외교 쪽에서 사절들이 오시면 제일 먼저 가고 싶은 곳이 진관사라고 하고 있고, 또 그 여러 가지 제가 불사하는 데 역할을 많이 했습니다. 또 그것이 있고, 저희 은평에는 아까 말씀하신 황금사찰이라는 수국사가 있죠. 수국사에 스님이 오셔서 템플스테이 공간이라든가 이런 것을 만들기 위해서 굉장히 노력을 하시고, 굉장히 적극적으로 지역과 결합하는 그런 일들을 많이 하고 있고. 또 음악회라든가 많은 것들을 준비하고 계시고. 또 BBS에서 같이 하는 음악회도 제가 참석을 했었는데요.

▷강동훈 : 그러니까 제가 작년에 뵀네요? BBS가 하는 차 문화 축제에, 여러 가지 음악과 함께하는 산사 음악회.

▶김미경 : 거기서 뵀고. 또한 보물이 있는 삼천사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삼각편대의, 그야말로 사찰이 우리 북한산 자락에 같이 함께하고 있죠.

▷강동훈 : 그러니까 BBS 불교방송 애청자 여러분들이, 만공회 회원들이 한 5만 5천 명이 넘어가고 있는데. 우리가 10만 명을 목표로 하고 있거든요? 그 중에 한 분이시고. 우리가 귀중한 보물을 오늘 이 자리에 모셔서 방송을 듣고 계십니다. 진관사나 수국사, 진관사는 오래된 고찰이고. 천년 고찰이고. 수국사는 새롭게 도심포교 역할을 하면서도 지역민과 함께하는 그런 것인데. 앞으로 그런 일을, 많이 구정을 펼치시는 데 전통문화와 불교, 또는 일반문화와 전통문화 이것을 어떻게 문화형성을 하실 것인지?

▶김미경 :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문화는 불교문화와 같이 했다고 생각해서 저는 그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불교를 떠나서 우리 문화는 생각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불교와 문화는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서울시에서도 저는 이 불교에 대한 사찰 지원이라든가 할 때는 이것을 종교개념으로 생각하지 마라, 이것은 문화개념으로 생각해야 되는 것이지 이것을 종교개념으로 생각하면 절대 되지 않는다. 그것이 지금 국행수륙제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거든요? 우리나라의 500년 동안에 현충원 역할을 했던 곳인데, 나라의 안녕을 빌고 국가의 호국영령들의 안녕을 빌고 그런 곳이었고. 이런데 그것을 종교개념으로 생각해버린다면 문화를 입힐 수 없는 그런 것이잖아요? 그래서 저는 그렇게 생각을 했고. 제가 진관사에 신경을 썼던 이유 중 하나가 무엇이었냐면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나라 문화는 불교문화하고 같이 했기 때문에 외국 정상들이 우리나라에 오셨을 때 숙소라든가 이런 것들이 본인들 나라에 가면 더 좋은 호텔들 굉장히 많잖아요? 그런데 우리나라를 온전히 알릴 수 있는 것은 다른 사찰도 마찬가지겠지만 진관사라면 진관사에 가서 한옥에서 음식이 거기가 국행수륙제를 했기 때문에 음식이 굉장히 발전되어 있고 거기에 조계종의 계호스님 같은 경우에 사찰음식의 대가이십니다. 사찰음식의 대가이시고 그런 분이 계시고, 음식이 발달되어 있고. 그 다음에 한옥에서 직접 자보고 또 한글도 써보고 한복도 입어보고 여러 가지 그런 것을 한 번 그 분들이 느끼고 가다 보면 우리나라의 문화를 온전하게 알고 가는 것이잖아요? 체험하고 가시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과정 속에 그야말로 국위선양이 된다고 생각하고. 그 분이 당신의 나라에 갔을 때 대한민국에 가니까 이런 문화가 있더라. 이야기가 될 수 있고. 그래서 저는 이런 문화를 우리가 많이 알릴 수 있게끔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강동훈 : 주한 외교사절들, 그 분들의 템플스테이나 진관사의 사찰음식 축전에 갔다 오신 분들이 대한민국에 영빈관이 있다면 여기가 아닌가, 진관사를 추천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아마 교통의 남북통일의 역할을 하는, 실크로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출발점인 경의선도 있지만 문화의 출발지, 진관사가 같이 있다고 볼 수 있겠네요?

▶김미경 : 진관사 앞에는 한옥마을이 같이 있습니다. 한옥마을이 같이 있어서 이 한옥과 어울려서 앞으로 정말 우리 대한민국의 먹거리, 우리 은평구의 먹거리가 될 수 있는 곳이 진관사이기도 합니다.

▷강동훈 :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해서 진정한 600년의 현충사의 역할을 했던 진관사의 이야기를 끝으로 김미경 의원과의 대담을 마쳐야 할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애청자 분들께 인사말씀 부탁드립니다.

▶김미경 : 오늘 반갑습니다. 제가 이렇게 어떻게 보면 정신적인 지주 분들이시죠. 제가 마음이 울적하거나 힘들 때는 진관사에 가면 법해스님이 계세요. 총무스님이. 저하고 연배차이가 별로 안 나시는데.

▷강동훈 : 이 방송 잘 듣고 계십니다.

▶김미경 : 아 그러세요? 제가 밤늦은 시간이라도 제가 힘들고 그럴 때는 그 분께 전화 드려서 저 가도 됩니까? 하고 가서 말씀 나누고 차 한잔 하고 누우면 머리가 굉장히 맑아지고 깨끗해집니다. 그래서 많이 제가 도움이 되고 있고요. 또 제일 좋아하는 말이 하심이라는 말입니다. 하심이라는 말이 그렇듯이 항상 마음을 내려놓으면 채워진다고 말씀을 하셔서 제가 항상 그런 마음으로, 그런 자세로 일하려고 하고, 앞으로도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또 우리나라의 문화, 불교문화가 더 잘 되기를 바라고 부처님의 가피가 함께하시기를 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강동훈 : 지금까지 김미경 전 서울시의원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김미경 : 감사합니다.

□프로그램 : BBS 뉴스와 사람들 / 매주 일요일 18:00~18:40
□FM주파수 : 서울경기 101.9MHz / 인천 88.1MHz / 부산 89.9MHz / 대구  94.5MHz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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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CP : 이현구 정치외교부장 / 담당 : 최선호 기자 

 

최선호 기자  shchoi269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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