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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에 미얀마] 저자 조용경 (사)글로벌인재경영원 이사장 인터뷰
김봉래 기자 | 승인 2018.06.11 09:05

1. 대기업에서 일하고 이제는 퇴직해 제2의 인생을 열고 계신데, <뜻밖에 미얀마> 책을 내셨습니다. 곳곳의 문화유적지를 두루 탕방하시고 소감도 서술해 놓아 아주 귀한 미얀마 여행안내서가 될 것 같습니다. 책을 내게 된 인연은 어떻게 되는지요?

제가 2012년에 포스코에서 퇴직을 하고 쉬고 있는데 어떤 중소기업인이 자기들이 미얀마에 진출하고 싶은데 해외경험이 많으시니까 좀 도와달라고 간곡하게 부탁을 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고민을 하다가 미얀마를 가봤는데, 돌아다니다 보니까 처음에는 뭐 가난하고 척박한 나라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불교문화나 불교유적이 정말 엄청나구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고, 또 겉으로는 가난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 사람들이 우리보다 훨씬 행복하게 살고 있다. 행복지수가 높고 사람들이 친절하고 늘 미소가 떠나지 않고요 워낙 넓은 땅에 경관이 정말 아름답고 그래서 제가 취미로 사진을 찍기 때문에 하여튼 보이는 것은 사람이든 뭐든 두루 찍었습니다. 한 20년째 사진을 찍었습니다. 하다보니까 사진이 많이 쌓여서 나 혼자 보기에는 아깝다 해서 공유하는 방법을 찾다가 SNS에 ‘사랑해요 미얀마’라는 제목으로 사진과 글을 연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2017년까지 한 80회 정도 연재를 했는데, 그러다보니까 여기저기서 미얀마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도 오고 급기야는 작년 봄에 출판사에서 이걸 잘 가공해서 책으로 만들자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2. 미얀마는 ‘시간이 멈춘 곳’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다시 떠오르는 아시아의 별’이라는 소리도 듣고 있습니다. 이사장님께서는 점점 미얀마에 반해서 지난해까지 17번 방문하셨다고 하는데, 왜 미얀마인가요? 독자들이 꼭 알아줬으면 하는 미얀마는 어떤 매력을 갖고 있습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버마가 바로 미얀마입니다. 90년대에 들어와서 2차 군부 쿠데타를 하고서 국가 이름을 미얀마로 바꾸고 수도도 남쪽(양곤)에서 중부 밀림지대(네피도)로 옮기는 이런 무리한 짓을 했는데요, 이 나라가 참 기구한 운명을 겪었습니다. 19세기 후반에 영국 식민지가 돼서 48년 독립할 때까지 일본 식민지가 됐다가 다시 영국 식민지가 됐다가 지금처럼 독립을 하는, 그런데 우리보다 훨씬 오래 식민지 생활을 했지요. 60년이 넘었으니까. 또 두 나라의 식민지를 거쳤고. 그러다가 잠시 민주시대가 이뤄졌다가 1962년에 쿠데타가 일어나서 그 이후에 굉장히 척박한 나라가 됐습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를 도와줄 정도로 아시아에서는 일본, 필리핀 다음으로 굉장히 부강한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그 50년 동안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지금은 북한과 거의 비슷한 가난한 나라로 떨어졌지요. 그런데 이상했던게 어떻게 해서 사람들이 이렇게 행복해 보이고 늘 미소를 짓고 다니고 친절할 수 있느냐, 이런 부분에서 점점점점 빠져들어 가다가 지금은 마치 내가 전생에 여기 살았을 것 같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습니다.

3. 미얀마를 흔히 황금의 나라, 불탑의 나라라고 할 정도로 황금 불탑이 많고 국민 대다수인 90%가 불교신자이고 불교가 국교로 지정돼 존중받고 있습니다. 오랜 역사 속에서 형성된 미얀마는 불교를 빼놓고는 설명이 잘 안되는 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미얀마를 속속들이 보셨을텐데 어떠신지요.

우선 시간이 멈춘 나라라는 개념이 가보면 저도 50년대에서 60년대까지 시골에서 여름이면 굉장히 팬티에 고무신 하나 신고 이렇게 살았는데요, 제 고향은 문경입니다. 그런데 가서 일단 양곤의 범위를 벗어나서 처음 만나는 풍경이 바로 제 어린 시절 고향에서 나의 모습을 떠올리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런 면에서 아 옛날에 이 나라가 우리를 도와줬는데 왜 이렇게 됐을까, 그래서 시간이 멈춘 나라. 그러나 최근에 이제 아직 불완전하지만 민주정부가 들어서고 그러면서 무궁무진한 자원을 이용해서 여러 가지 사회를 개혁하고 경제를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서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인구가 많고 땅이 넓고 자원이 풍부하기 때문에 아시아 경제에서 떠오르는 별이 되거다 라는 것이 일반적인 예측이지요. 그런데 그런 과정에서 하나의 무게를 더해주는 것이 바로 불교입니다. 전 국민의 90%정도가 불교신자구요 거의 사람들이 태어나서 살고 죽기까지의 모든 과정 자체가 하나의 불교의식 같은 그런 느낌을 저는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불교가 생활의 구심체이기 때문에 아마 어떤 나라보다도 단합이 잘 되구요. 그래서 그런 관점에서 보면 미얀마의 앞길을 상당히 밝을 수 있다 그런 생각이 드네요.

4. 미얀마는 1인당 GNP 1,000달러 정도의 넉넉지 않은 환경인데 그들이 왜 대형 불상을 많이 만드는지 궁금합니다. 재정을 보다 사회개발 쪽에 투입하면 어떨까 생각이 들 수도 있는데, 저희 같은 근대화 중심의 시각으로는 잘 이해가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어떠신지요?

(미얀마의) 젊은 사람들은 사고나 문화가 조금 달라진 것 같아요. 그러나 그 바탕에는 여전히 불교문화가 자리잡고 있는데, 불교가 그 사회의 중심이 될 수 밖에 없는게 사찰이 국민들로부터 굉장히 신뢰를 받고 스님들이 엄청나게 존경을 받습니다. 물론 그렇게 요구도 하지만 절에 가면 누구가 다 맨발을 벗고 들어가고 또 스님의 옷이나 몸에 손도 대지 않고 스님이 지나가시는 길 앞으로 가로질러 가서도 안되고 심지어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 이제 이런 정도로 돼 있는데, 그것이 불교가 오랜 전통을 통해서 어떤 불교 본연의 모습, 선과 수행, 그리고 기부와 보시, 이런 것을 철저히 준행을 하고 또 스님은 거의가 무소유를 확실하게 실천하는 이런 부분 때문에 힘을 갖고 있고, 그래서 그런 어떤 전통에 의해서 젊은 세대들도 불교에 대한 존경심이 바탕에 있다,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문제가 우리처럼 흔들리거나 가치관이 전도되거나 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5. 미얀마는 우리나라와 유사한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같은 몽고족 계통이라고 하고, 또 오랜 식민지를 거쳐 1948년에 독립해 정부를 수립했습니다. 그리고 오랜 군부독재를 겪다가 우리의 1987년 6월 항쟁처럼 1988년 ‘8888항쟁’을 거쳤습니다. 이제 군정이 기세가 꺾이고 민주적인 체제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들에는 특히 불교계 스님들의 역할이 컸다고 알고 있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는지 궁금합니다. 미얀마의 정치와 불교의 관계에서요.

그게 식민지 경험하고도 관계가 있을 것 같은데요, 그 분들은 소승불교라고 하지 않고 상좌부 불교라고 합니다. 개인의 선과 수행을 통해서 해탈로 나아가는 것을 중시하기 때문에 사회와의 관계는 상대적으로 소홀해지기 쉬운게 사실이지요. 그런데 이제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영국이 식민통치의 방법으로 인도, 방글라데시 출신의 회교도들을 대거 데려다가 통치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같은 이웃에서 민족적인 대립도 있지만 이슬람교도들이 상대적으로 불교도들을 탄압을 많이 했고 그래서 버마식, 미얀마식 불교민족주의라는 게 태동을 했어 요. 그래서 이제 이슬람에 저항하는 형태로 독립운동을 불교가 구심점이 되어 해온 것입니다. 어떤 불의와 탄압에 저항할 구심점이 없어서 침묵하고 있었지만 아웅산 수치라는 구심점이 생기면서 사회변화의 원동력이 됐습니다.

6. 민주화에 따른 사회변화가 점점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지만 아직도 괴리 같은 것이 있습니다. 소수민족인 로힝야족 탄압 같은 것도 한 예가 아닌가 생각하는 분들 계실 것 같습니다. 왜 자비의 종교인 불교가 이슬람을 탄압하느냐 하고 의문을 가질 만도 한데요 이 점은 어떻게 봐야 할지요?

일단 현상적으로는 굉장히 안타깝고 빨리 그쳐져야 할 일인데, 바깥에서 이렇게 저렇게 그냥 피상적으로 재단하기에는 너무 복잡한 문제들이 얽혀 있습니다. 첫째 하나가 과거에 영국을 대리해서 우리를 지배하고 탄압했다고 하는 우리와 일본의 관계보다 훨씬 더 심각한 민족감정이 일차적으로 개재돼 있구요, 거기에 이슬람과 불교 간에 종교분쟁의 성격이 덧칠돼 있습니다. 그런데 그건 제가 볼 때 사안의 본질은 아닌 것 같구요, 오히려 심각한 문제가 정권은 군부세력이 일단 아웅산 수치한테 투표에 의해 넘겨줬지만 아웅산 수치의 최대 지지세력인 불교도와 수치 정권을 흔들어 이간질시키려는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고 저는 단정을 합니다. 그래서 만약에 지금처럼 국제사회나 인권단체들이 아웅산 수치를 비판하고 흔들어서 아웅산 수치 정권이 어려워지면 이 다음에는 군부가 다시 무혈입성을 하는 그런 문문제가 되기 때문에 좀 시간을 주고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주는 것이 필요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7.어떻게 미얀마를 이렇게 잘 알게 되셨나요? 주위의 어떤 도움이 있었나요?

일을 통해서 여행을 통해서 알게 된 많은 우리나라를 이해하는 젊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고요. 현지에서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가 생겼을 때나 모르는 문제가 있으면 도와주는 언론인도 있고 그래서 그런 분들의 도움도 받았고, 또 기본적으로 제가 기왕 미얀마를 소개하고 강의를 하고 한다면 내가 부끄럽지 않게 공부를 좀 해서 해야되지 않겠느냐, 그래서 미얀마어가 어렵기 때문에 영어나 일본어로 된 자료들을 사전에 많이 모아서 개인적으로 공부도 좀 했습니다.

8.네 정말 미얀마 '홍보대사'가 되신 것 같습니다. 앞으로 계획을 간단히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2008년부터 저 나름의 버킷 리스트라는 것을 만들어 실천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는 젊은이들의 무료 주례 백번 하기, 무료 강의 백번 하기, 손자들하고 몽골에 초원에서 별보기, 뭐 이런 등등이 있지만 요새 한 4년 전부터 우리나라의 산사순례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백군데를 가보자 해서 지금까지 한 70군데를 다녔고요 그걸 SNS에 죽 사진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가능한 한 백개를 순례한 다음에 한 30~40개를 뽑아서 한국의 아름다운 사찰들을 후속편으로 만들어 볼까 하는 생각도 있습니다. (끝)

김봉래 기자  kbrbu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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