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신간 <붓다의 가타부타>를 펴내셨습니다. 오랫동안 중앙승가대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해 오셨는데, 불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종교인지를 쓰신 것 같습니다. 5계를 중심으로 부처님이 딱부러지게 말씀하셨다는 대목이 인상적입니다. 우리가 순간순간 망설이기도 하고 무지해서 잘못된 행동도 하는데, 먼저 책을 내신 취지를 말씀해 주실까요?

부처님이 탄생한 의미를 저는 항상 두 가지로 생각합니다. 사회적 개념과 종교적 개념. 부처님이 탄생하신 의미는 제자들만을 위한 가르침이 아니며, 그 제자들은 다만 보편적인 인류 사회에 모델로서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의 본래 목적은 삶의 질을 극대화해서 그 극대화 속에 정말 최고의 행복을 추구하는 종교라고 봅니다. 그 최고의 행복을 우리가 어디서 찾을 수 있나 하면 첫째가 불살생이고 이것은 곧 생명존중입니다. 그 다음에 불교는 4성제도, 카스트를 타파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 두 가지를 볼 때 인류사회가 최대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부처님 말씀을 말씀으로 끝내지 않고 행동으로 지속적으로 옮겨야 합니다. 승가는 바로 그러한 단체입니다. 부처님은 바로 인류가 살아가는 보편적인 하나의 모델 케이스로 승가단체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좀 더 심도 있게 내면의 세계를 파고들 수 있게 하는 것이 생로병사라는 현실적 문제를 가지고 이걸 어떻게 승화시켜서 해탈이라는 자유로움을 얻을 것인가 하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주로 그런 생각을 하며 후학들을 양성했습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5계를 잘 보면 하나의 좋은 습관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좋은 습관은 그냥 되는 게 아니라 계속적으로 반복하는 게 좋은 습관입니다. 그래서 가타부타라는 것은 가(可)는 부처님이 옳다고 말씀하신 것이고 부(否)는 이것이 옳지 않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팔만대장경의 법문의 말씀이고 그것을 좀 더 내부적으로 깊이 있게 한 것이 소위 계율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좀 더 편의롭게 해석하면 어떨까 해서 책을 내게 됐습니다.

2.전문용어들을 우리말로 이해하기 쉽도록 해설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존재는 5온이고 그 집착은 5취온이다 보통 이렇게 설명하는데 좀 어려워요. 스님께서는 우리의 몸과 마음은 습관의 덩어리다 이렇게 하니 더 쉽게 와 닿는 것 같습니다.

부처님은 보통 5온과 4성제, 8정도를 설하셨다고 교리적으로 말합니다. 그런데 5온은 색,수,상,행,식인데 뭔가 특별한 사람만 관계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사바세계에서 색(色)이란 것은 모양입니다. 우리들은 모양입니다. 그리고 모양을 받아들여서(受) 우리가 상, 생각해서(想) 그 다음에 행동으로 가면서(行) 행동하는 가운데 자기가 스스로 인식하는(識) 구조가 우리 사람의 삶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자기 생각, 즉 자기가 보고 느끼는 자체를 마치 자기 것이고 영원한 진리인 줄 알고 있는데, 부처님은 그렇지 않다, 몸의 덩어리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계라는 것은 습관입니다. 습관은 행동으로 옮겨집니다. 그래서 불교를 실천해야 한다는 말들도 다 보면 습관은 행동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좋은 습관과 나쁜 습관이 있는데, 부처님이 이건 좋은 습관이다, 이것은 그렇지 않다고 가부(可否)를 해서 ‘가타부타’ 이렇게 한번 제목을 만들어 봤습니다.

3. 계는 지켜야 하는 수동적 의미만 아니라 좋은 습관이라고 하셨습니다. 첫 번째 불살생 하면 굉장히 무겁게 느껴질 수가 있는데, 적극적으로 생명을 살리는 것이 될 수 있다는 말씀이시지요?

네, 불살생은 생명을 죽이지 않는다는 것인데 사실 우리는 아무나 죽이지 못합니다. 그런 행위 하는 사람은 특별한 사람이지요.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공포심을 준다든지 구타를 한다든지 폭행을 한다든지 이런 것도 부처님이 볼 때는 다 살생이라고 봅니다.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말이지요. 우리가 공포스러운 말을 들으면 겁이 나고 폭행도 심하면 살생이 되는 것이니까요. 불교는 흔히 비폭력이고 자비다 이런 말씀으로 이해하지만 그게 요즘엔 폭행, 폭력, 공포, 불안, 위압감, 계층간 위압감 이런 것들도 다 불살생에 관련되는 영역이라고 봅니다. 가족이나 직장에서 대화 속에서 언어적인 폭행, 폭력도 있을 수 있는데 그런 것들도 다 살생이다. 불안하게 하는 것은 살생이다 라고 해석합니다.

4. ‘무엇 하지 마라’ 하는 지지계(止持戒)와  ‘무엇 하는게 좋다’ 하는 작지계(作持戒)가 있습니다. 특히 다른 사람을 좋은 곳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작지계로 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작지계는 좋은 습관 쪽으로 가는 것, 또 지지계는 그야말로 좋지 않은 것은 하지 말라는 쪽으로 해석을 해봤습니다. 그래서 특히 남을 좀 더 좋은 쪽으로 유도하기 위해서는 지지계 보다는 작지계 쪽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을 하지 말라’는 부정적 표현법은 자칫 상대에게 통제하고 억압하려는 인상을 줘서 수용하지 않으면 도움이 안되겠지요. 그래서 ‘~을 하라’는 작지계의 형식을 취하면 나를 도와주려 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어서 호의적인 사람의 지시는 따르기가 더 쉽겠지요. 타인에게는 긍정적인 표현법으로 설득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우리 불교는 인과 아닙니까. 좋은 인을 심으면 좋은 과가 오니까요. 적극적으로 좋은 일을 하면 좋은 과보가 온다는 것 작지계가 지켜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5. 말미에 에필로그를 해놓으셨어요. 제목이 ‘정글과 극락의 한 끗 차이’라고 돼 있습니다. 승가가 하나의 모델이 됐으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오늘의 승가 현실을 진단하시면서 과연 어떻게 지향해 나갈 것인지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부처님은 승가가 인류사회에 모델이 되어야 한다는 전제 하에 승가를 구성했습니다. 그럼 오늘날 우리가 봤을 때 과연 우리 승가가 일반 대중들에게 그렇게 모델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분도 있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분도 있지만 승가의 입장에서는 그 긍정과 부정을 초월해서 그야말로 부처님이 본질에 가까운 승가를 구성했을 때 그 본질을 우리가 부단하게 끊임없이 내면의 세계에서 실천하고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부처님이 인류의 모델을, 최고 최대의 행복한 모델을 제시한 측면에서 승가가 구성됐으니까 그 쪽을 위해서 개인적 수행과 타인에 대한 생각, 이런 것들을 끊임없이 시공을 초월해 계속 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6. 사회적으로 장년과 노년은 퇴직 후 뭘 할지 모르겠다, 청년은 일자리 못 구하는 상황이라서 불안합니다. 이래저래 불교적으로 말하자면 고통이 가시지 않고 있는데 미래 젊은이들에게 당부하실 말씀을 주실까요?

어느 종교든지 선을 행하면 선의 결과가 온다는 것이 종교의 공통점이라고 볼 수 있지요. 그런데 지금 젊은 층들은 내면적 세계보다 눈앞에 나타나는 현실적 세계를 추구하고, 시간적 개념도 인터벌을 짧게 잡아서 빠른 결과물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비록 가타부타라는 부처님 말씀이 2,600년 전 만들어진 아주 오래된 가르침이라는 차원을 떠나서 바쁜 이 시대에 불교의 5계를 생각해보면 비록 현재가 좀 답답하고 급하더라도 길이 보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우리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교육이 있고 좋은 습관, 윤리도덕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차원에서 불안 또는 초조감에 머물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오지 않은 미래의 시간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현실의 시간을 직면했을 때 그 때 그 때 최선의 사고를 하면 좋은 길이 보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덧붙일 것은 불교의 습관 중에 불사음, 저는 이것이 부처님께서 2,600년 전에 요즘말로 하면 일부일처제를 제시한 겁니다. 그래서 그러한 것을 깊이 새기면 요즘 우리가 소위 말하는 단어들(“미투”)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7. 앞으로 계획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승가대 30여년 봉직해서 올해 2월 28일 정년을 하고 대학원 수업만 하고 있습니다. 계획이라 할 것은 없고 스님들은 그야말로 수행자인 만큼 산사에서 그야말로 평범하게 수행하며 살려 합니다. 창원 불지사에서 생활하며 종단의 구성원으로서 참여도 하겠지만 그보다도 이제 스스로 수행이 먼저 최우선이 돼야 합니다. 학교에 있었다 하지만 가르쳤다는 것은 결국 내 얘기만 전해줬지 내면의 세계는 안됐으니까 다시 배우는 입장에서 나머지를 생활하려 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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