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타이밍’이란 말이 있습니다. 세상사에 때를 맞추는게 그만큼 중요하다는 겁니다. 밥도 뜸을 들여야 제맛이 나듯 너무 빠르거나 너무 늦으면 낭패로 이어집니다. 야구의 투수 교체 타이밍이 흔한 예입니다. 위기의 순간 마운드의 투수를 바꿀지, 그대로 둘지에 경기의 승패가 뒤바뀝니다. 감독의 성급함 또는 집착은 그릇된 타이밍 선택을 불러옵니다. 그 짧은 고민의 순간 인간의 진면목도 드러납니다. 타이밍에는 ‘경험’이, ‘내공’이 녹아있습니다.

  세상사의 ‘타이밍 선택’은 일반적으로 ‘판단력’에 좌우된다고 봅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마음 씀씀이’가 구실을 합니다. 성급함과 미련함보다 ‘불순한 마음’이 타이밍의 오류에 깃들어 있을 때가 많습니다. 최근 인구에 널리 회자되고 있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위장 평화쇼’ 발언이 그 경우입니다. 홍 대표는 북핵 폐기를 구체적으로 보장받지 못한 4.27 남북정상회담을 정치 대가 답게 다섯글자로 명료하게 정리했습니다. 오죽했으면 나경원 의원이 “국민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표현”이라고까지 했을까요? 야당 대표로서 충분히 할 말입니다. 이 정도도 소화하지 못하는 체제라면 민주주의 국가가 아닙니다. 문제는 타이밍이었습니다. ‘10초 월북’과 ‘도보다리 회담’의 감동에 눈물짓고 환호하는 순간 만큼은 피했어야 했습니다. 잘 각색된 ‘드라마’건, 탁현민 행정관이 연출한 ‘쇼’건 누구라도(심지어 트럼프 대통령이라도) 가슴 벅차했을 그 즈음은 누릴만큼 누릴 수 있게 참았어야 했는데, 개봉 영화의 결말을 흘리는 '스포일러(spoiler)'처럼 ‘위장 평화쇼’란 표현이 국민을 짜증나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구체화된 비핵화 약속이 없다”는 논리의 매우 합당한 주장을 절묘한(?) 타이밍에 던지면서 홍 대표는 여론의 부메랑을 받았습니다. 번번이 집단 감성에 젖는 우리 국민들에게는 차가운 이성에 매몰찬 순간이 있다는 걸 홍 대표는 잠시 잊었을테죠. 물론 잔치집에 재를 뿌리고 싶은 마음이 그보다 앞섰을 수도 있습니다.

  최근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미스 타이밍’의 또다른 사례는 MBC PD수첩 방송입니다. 조계종 총무원장 설정스님과 교육원장 현응스님의 비위 의혹을 부처님오신날을 앞둔 봉축 기간에 ‘큰 스님께 묻습니다’란 제목의 50분 짜리 프로로 만들어 내보냈습니다. 방송을 편성한 시점부터 의혹의 진실 여부와 관계없이 논란 거리입니다. 다분히 불순함도 느껴집니다. PD수첩이 다룬 설정스님 관련 의혹들은 이미 지난해 총무원장 선거 과정에서 제기됐던 내용입니다. 뚜렷한 사실 관계나 명백한 근거를 찾지도 못했습니다. 현응스님 관련 의혹도 한 쪽의 일방적 주장을 담았습니다. 관련 의혹을 인터뷰한 주요 인물은 현 종단측과 정치적 또는 법적 싸움을 벌이고 있는 상대편입니다. 그럼에도 MBC가 부처님오신 뜻을 찬탄하는 불자들이 세상의 어둠을 오색 연등으로 밝히기 시작한 5월 첫 주에 불교계 전체 이미지를 심각히 훼손할 수 있는 방송을 고집한 것은 숨은 의도를 의심할 수 밖에 없게 합니다. 방송 시점을 바꾼다면 편성의 순수성 논란을 피해갈 수도 있을텐데 MBC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혼탁한 불교계 실상을 국민 알권리 차원에서 드러내고 자성의 계기로 만들었는지, 막무가내식 폭로로 종단의 기반을 수시로 흔들어온 불교계 일부 세력의 주장만 고스란히 대변했는지는 방송의 타이밍만으로도 충분히 판단할 수 있습니다. 정성을 다해 장엄물을 만들거나 법당 한 모퉁이 연등 보시로 환희심을 낸 불자들의 봉축 기간은 5월 2일 터져나온 ‘순수함’ 잃은 폭로 방송으로 이미 엉망이 돼버렸습니다.

  이들 ‘미스 타이밍’ 사례는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좌파 집권 세력에게, MBC 최승호 사장이 불교계 주류 세력에게 갖고 있는 뿌리깊은 불신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양식있는 보통 사람이라면 감행하기 힘든 ‘잔치집 재 뿌리는 일’을 과감히 실행에 옮긴 건 체득화된 진영 논리 때문일 터입니다. 하지만 국민들의 반응은 MBC가 'PD수첩 광우병 보도 사건'을 일으킨 2008년 때와는 많이 달라 보입니다. 적폐청산 외치면서 같은 방식의 보복 인사를 되풀이하는 공영방송 사장의 모습에, 질문하는 기자에게 번번이 “공부 좀 다시 하고 물으라”고 면박을 주는 제 1야당 대표를 지켜보는 현명한 우리 국민들은 그들의 삶과 주장에 그다지 공감하지 못합니다. 자유한국당과 MBC가 진정 국민의 지지를 얻고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 싶다면 지금은 내면부터 찬찬히 돌아볼 타이밍입니다./이현구 정치외교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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