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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트마 간디의 도덕.정치사상' 다시 펴낸 허우성 경희대 철학과 교수 인터뷰
김봉래 기자 | 승인 2018.05.02 12:06

1. 마하트마 간디라고 하면 인도의 국부로 받들어지는 정치가이며 철학자로서 비폭력 평화주의를 그야말로 이론과 실천이 겸비된 세계적인 평화주의자로 유명한데요, 이번에 간디 선집(전3권)을 재번역 출간하셨습니다. 1999년 인도정부가 완간한 간디 전집은 총 98권 5만여쪽에 이르는 방대한 양이고, 이를 선별해 3권으로 역은 이는 라가반 이에르(1930-1995)입니다. 이번에 재출간된 간디 선집은 간디가 직접 집필한 글을 모은 국내에서 가장 방대한 책으로 평가되고 있는데, 13년만에 재번역 출간의 계기는 어떤 것이었나요?

간디전집은 정말로 방대합니다. 제가 이번에 번역해서 세권으로 냈습니다만, 이는 간디전집의 30분의 1일이에요. 다 번역한다면 1천 쪽 짜리 100권 정도가 될 것입니다. 간디는 주로 구자라트어를 많이 사용했는데 1950년대 인도 정부가 간디전집을 만들 때 영어로 번역했지요. 전부 90권입니다. 그것을 편집자 라가반 이예르가 간디사상의 핵심이라고 하는 것을 추출해서 소제목을 달아서 3권으로 만들었습니다. 지난번에 출판사 입장 등을 고려해 6권으로 하고 보니까 편집상의 오류로 보이는 것이 있어 두고두고 마음에 걸렸는데, 재번역 수준으로 새로 하고 좋은 출판사를 만나 책을 내게 됐습니다. 처음부터 재번역 수준으로 해야 되니까 꽤 힘이 들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 위안하기를 ‘아 나는 지금 경전을 번역하고 있다’고.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사실 간디가 다루는 사안은 영원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우리가 매일 당면하는 그런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갈등, 혐오, 증오와 분노, 폭력의 문제 등. 라가반 이예르의 영어본을 온전히 번역한 것이지만 추가한 것 하나가 2권 제일 마지막에 부록으로 붙인 글입니다. 저는 이 글을 CD롬에서 봤어요. 인도정부가 1950년대 낼 때는 책 90권이고, 1999년 CD롬에 다 담아 100권으로 만들었어요. 그걸 죽 읽다 보니까 라가반 이예르의 편집에는 빠져 있지만 우리의 근대사에 굉장히 중요한 자료가 하나 있었어요. 그게 뭐냐 하면 1909년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고 난 뒤에 그 소식을 간디가 런던에서 들었어요. 그에 대한 코멘트를 A4용지 한 장 정도 남겨 놓은 게 있어요. ‘용감한 일본 병사’라는 제목인데, 그 글을 보게 되면 일본이 서양문명을 받아들이고 내부를 통일하고 난 다음에 이웃나라 조선을 침략했다. 거기에 큰 역할을 한 사람이 이토 히로부미이다. 세력이란 게 늘 문제가 있다. 그가 조선을 압박했으니 한국인 누가 좋아하겠냐. 안중근 이름은 안 나와요. 한국의 젊은이가 담대하게 쏘아 죽였다. 그러나 아까 말씀했던 진리 파지의 입장에서 보면 이토 히로부미는 용기가 있는 사람이지만 그 용기를 잘못 활용해서 잘못이고, 그렇다고 해서 죽이는 것도 잘못이다. 그래서 양쪽을 비판하는 글인데, 우리로서는 하여간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글입니다.

2. 책 제목이 <마하트마 간디의 도덕·정치사상>입니다. 간디는 도덕윤리와 정치현실, 현실과 이상을 온 삶으로 살아가면서 융합, 통섭, 실천행을 했던 분인데, 요즘으로 보면 너무 이상주의적인 듯한 비판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영성이 높은 분인데 어떤 마인드에서 현실과 자신의 철학을 연결하고 있는지요?

간디는 굉장히 실천적인 사람이에요. 비폭력이란 개념은 영어의 non-violence, 산스크리트로는 아힘사(ahimsa)인데, 아힘사란 말은 아주 예전에 중국인들이 불살생으로 변역했어요. 불교의 첫 계율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간디는 아힘사를 non-violence로 번역하면서 개인적인 수준의 도덕을 정치적인 차원까지 끌어 올린 것이지요. 이 대목이 간디의 인도 사상을 혁명화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은 의도적인 통섭의 결과를 아니고, 한 개인은 특정 구조, 특정 정치 구조 속에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억눌릴 수도 있고 행복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구원하는 데는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아니라 구조적인, 제도적인 차원에서도 구원해야겠다는 것을 간디는 피부로 느꼈습니다. 그 느낌 때문에 아힘사라는 개인차원의 윤리, 도덕을 정치적인 차원까지 끌어올렸습니다. 이런 대목이 나중에 한국에는 함석헌 선생님, 지금의 달라이라마, 그 전에는 미국 같은 경우 마르틴 루터 킹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줬습니다.

3. 인도가 영국 식민지로부터 해방되는 과정, 그리고 그 이후 민주적인 정부를 수립하는 과정에 간디와 제국주의 세력, 또 같은 인도에서도 간디와 암베드까르나 네루 같은 다른 정치인들과 의견 차이가 있었고 그런 것들을 해결하는데서 간디 특유의 사상을 엿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책에서도 그런 부분이 잘 나타나 있지요?

암베드까르와의 갈등이 우선 생각납니다. 불가촉천민 문제를 두고 그 해결방안에 대해서 암베드까르와 간디의 생각이 달랐지요. 암베드까르는 힌두교 내에서는 카스트 제도, 불가촉천민의 문제를 도저히 해결할 수 없다. 그러니까 힌두교를 떠나야겠다고 했다고 했다. 하지만 간디는 아니다, 불가촉천민은 힌두교의 큰 수치니까 힌두교에 남아 있으면서 이걸 해결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점에서 암베드까르하고 생각이 달랐지요. 그러나 놀라운 것은 네루 정권이 성립하고 초대 법무장관을 암베드까르가 하는데 간디가 추천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다음 네루와는 현대문명에 대해서 달랐습니다. 오늘날 현대문명 속에 있는 한국인으로서 간디를 제일 이해하기 힘든 것 중 하나가 서양문명에 대한 간디의 혹독한 비판입니다. 서양문명은 정말 도덕적으로 문제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인간의 탐욕을 부추기고 기본적으로 물질주의이고, 영성은 없다고 현대문명과 산업주의를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네루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산업주의를 받아들여야 됩니다, 그런 식이이요. 이 두 사람이 다 독립이라는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 점이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실 간디의 생애에서 제일 어려웠던 문제는 힌두-무슬림 갈등이었습니다. 간디는 인도라는 나라에는 늘 힌두교도 있었고 무슬림도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한 나라로서 독립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렇게 믿었어요. 그러나 아시다시피 힌두교와 무슬림들 사이의 갈등의 뿌리가 너무 깊어서 결국은 파키스탄, 인도로 분리 독립을 했잖아요? 그래서 사실 독립의 날 간디는 하나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절망 속에서 죽었는지 모릅니다. 현실 속의 실패에도 불국하고 비폭력은 살아있어서 그것이 나중에 미국으로 가서는 마르틴 루터 킹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실제로 마르틴 루터 킹 선배되는 흑인 중에 써먼(Howard Thurman)이라는 사람이 1935년인가, 이 선집 어디엔가 있어요, 간디를 방문해요. 정말로 감동적인 장면이에요. 아쉬람에서 만나 주고받고 대화가 기록돼 있어요. 그것이 나중에 써먼, 그 다음에 이 다른 미국인 신학대학 교수가 간디를 찾아가게 됩니다. 결국 마르틴 루터 킹은 이런 사람들의 영향을 받고 간디를 일게 됩니다. 마르틴 루터 킹 방에 보면 간디 사진이 있어요. 간디 비폭력 운동을 배운 것이죠. 함석헌 선생님도 마찬가지고

4. 이 책이 독자들에게 어떻게 다가갔으면 좋을지 번역자로서 한 말씀을 주시기 바랍니다.

이 책을 펴 보시면 소제목이 많아요. 마음에 드는 소제목이 있으면 찾아 읽으십시오. 아시다시피 간디는 학자가 아니니까 혼자서 긴 논문이나 책을 쓰는 스타일이 아니고, 이 선집도 독립적인 하나의 책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아무 페이지나 열어보시면 여러분 마음에 다가가는 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걸 이제 읽고 곰곰이 생각하시고 일상생활에 적용하시면 도움이 될 것 아닌가 싶습니다.

5. 네 허우성 교수님께서는 경희대 비폭력연구소 소장을 맡아 현대사회의 제반 문제를 평화적으로 풀어갈 것인가에 연구를 집중하고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21세기 우리 사회, 더 나아가 지구의 문제를 풀어가는데 있어 간디의 방식이 곧 정답이라고 하긴 어렵겠지만 그래도 젊은 시절부터 간디를 만나서 연구해온 입장에서 보면 간디에게서 배울 점도 많을 것 같은데 실제로 어떻습니까?

일본의 철학자 니시다 기타로 철학과 관련돼서 일본인들과 지난 30년간 자주 만나요. 니시다 기타로. 이와나미 출판사에서 출판할 거에요. 여전히 간디에게서 배울 게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정년과 무관하게 연구소 소장직은 계속 수행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강의를 안 하게 될 테니까 정말로 감정 연구, 특히 집단적인 감정을 연구하고 싶어요. 분노, 혐오, 경멸, 특히 달라이라마가 얘기했던 부정적인 감정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새로 번역하다보니 간디도 인간 감정에 대한 언급이 많았음을 알았습니다. 그것들을 색인에서 다시 잡았습니다. 간디 역시 인간의 감정에 대해서 예의주시했던 분이다, 그러니까 가장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이런 거에요. 화가 나면 어떻게 합니까? 하고 누가 간디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럼 이렇게 대답해요. 우리가 같은 바다에서 나온 물방울이나 파도와 같은데, 누가 누구에게 분노해야 한단 말인가, 분노를 하고 난 다음 어떻게 할 거냐 하고 묻는다면 이미 늦었다, 분노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식 이에요. 저는 사실 집단 감정에 관심이 많습니다. 집단적으로 표출되는 분노. 직간접적으로 표현되는 혐오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모든 시위에는 대체로 여러 가지 감정을 동반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흥분, 열정 등 어쩌면 신체에 더 가까운 감정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부족한지 과잉인지 따져보고, 과잉이라면 그 역사적 연원이 무엇인지, 또 정치적인 함축이 무엇인지를 연구해보려고 합니다. 우리 정치적 공동체가 건강하게 살아가자면 감정에 해당하는 파토스와 로고스가 늘 균형을 잡아야 되는데, 아무래도 감정과잉이 많은 것 같아요. 물론 그래서 혁명의 기운은 늘 있어요. 그러나 다른 면에서 보면 언스테이블(unstable) 한 거에요. 그러나 하여간에 감정의 과잉이든 감소든 그거 연구해서 우리 공동체의 균형을 잡을 수 있는 방도를 연구하고 싶습니다. 좋은 결과가 나오도록 도와주십시오. 모르겠습니다. 제가 일본 사람을 관찰하게 되면 우리보다 훨씬 쿨해요. NHK 후쿠시마 지방에 쓰나미, 원자력발전 사고 났을 때 NHK 방송 앵커가 보도하는 태도, 정말 쿨해요. 그 다음에 우리 KBS는 그보다는 좀 흥분하고 있고, SBS는 그보다 더 흥분하고, 종편은 더하고. 북한 방송이 아마 최고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쿨해야 정치적으로 집단적으로 올바르게 판단할 가능성이 더 높아요, 항상 그런 건 아니겠지만.

6. 젊은 시절부터 불교를 접하고 연구에 매진해 왔습니다. 간디 방식과 불교의 방식, 세상의 발전을 위해 불교가 어떤 면에서 기여를 할 수 있을지 가능성을 어떻게 보시나요?

제가 간디를 계속 공부해 오니까 같은 철학과 교수님 가운데 한분이 아니 불교전공자이면서 왜 간디를 연구합니까 물어요. 그에 대한 제 대답이 이런 겁니다. 부처님이 만일 한반도에 오신다면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말을 하셨을까, 이런 질문을 던졌을 때 초기경전을 아무리 봐야 대답이 안 보인다. 왜냐하면 2500여 년 전 역사적, 정치적 상황이 오늘날 한반도 역사적, 정치적 상황이 너무 다르니까. 그런데 그 대답을 줄 수 있는 분이 누굴까 할 때 간디가 떠오릅니다. 이건 사실 상상력 발동이에요. 그래서 부처님이 2500년 뒤 한반도에 오셨을 때 어떻게 하셨을까 하고 질문을 했을 때 제가 들여다보는 게 간디입니다. 물론 제 상상이 틀릴 수 있습니다. 물론 간디는 부처님과도 다른 게 영원불멸의 아트만과 브라만을 믿어요. 불교는 적어도 부처님은 그게 있다고 주장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한국의 불교도들 가운데 예를 들면 마성스님 같은 분은 그게 다르다고 생각해요. 그런 다름을 인정한다고 해도 윤리도덕 차원에서는, 예를 들면 비폭력, 무소유, 청정행 이런 것들은 간디도 그대로 수용해요. 그래서 사실 부처님이 한반도에 오셔서 어떻게 하셨을까 하는 질문에 대해 그 대답을 들을 수 있는 분이 간디 아닐까. 달라이 라마도 간디를 정말 존경하시더군요. 하여간 차이점은 작은 것 같고 공통되는 부분은 많은 것 같습니다.

7. 앞으로 계획을 간단히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아시는 대로 우리 사회는 격변기에 있습니다. 정치적 이념에 따라서 날카로운 대립도 있습니다. 이념의 대립에는 감정도 깊이 개입돼 있습니다. 한쪽이 다른 한쪽을 경멸하고 혐오하고 분노하고 있습니다. 사실 민주주의 하는 과정에서 이념의 대립은 불가피합니다. 이념의 대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분노, 경멸, 혐오 이걸 어떻게 누그러트릴 수 있을까. 그래서 적폐청산이라고 그러잖아요? 적폐청산의 과정과 결과에 있어서 사회적 애정(social affection)을 확산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않으면 세월이 흘러 또 다른 의미의 적폐를 청산 당할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적폐청산의 과정과 결과에 있어서 사회적 애정을 확산시키지 않으면 적폐의 총량은 같을 것입니다. 적폐총량불변의 법칙이라고 할까요, 적폐청산의 과정과 결과에 있어서 사회적 애정을 확대해 나가지 않으면 적폐 총량은 그대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아주 빨리 변하고 있는데 거의 혁명의 수준입니다. 그 과정에서 정치적 이념이 다른 진영들 사이에 사회적 애정을 어떻게 확산시킬 수 있을까, 그걸 연구하려고 합니다.(끝) 

김봉래 기자  kbrbu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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