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젊은 나이에 물류사업에 뛰어든 스물 일곱 청년 사업가가 있었다. 

아니, 말이 좋아 사업가지, 가진 거라곤 낡은 트럭 한 대 뿐. 본인이 직접 운전해 물건을 옮겨야 하는 처지였다.

어느 날, 이 청년은 도로 위에 멈춰 있는 승용차 한 대와, 당황한 표정으로 서 있는 외국인 여성을 목격했다.

선박 기관사 출신으로, 엔진 수리 기술이 있었던 청년은 곧바로 트럭을 세우고 이 여인의 승용차를 고쳐줬다. 

멈춰섰던 차가 스스로 움직일 수 있게 되기까지는 무려 1시간 반이나 걸렸다.

이 여인은 고마워하며 돈 봉투를 내밀었지만, 청년은 한사코 사양했다. 대신, 여인이 여러 차례 요청해서, 자신의 연락처는 알려줬다.

며칠이 지나 여인으로부터 연락이 와서 찾아가보니, 미군 사령관이 자신을 맞이했다. 그 여인의 남편이었다.

"뭔가 보답을 하고 싶은데 금일봉을 마다하니, 어떻게 보답하면 되겠는가"라는 질문에 청년은 "부대에서 나오는 폐차를 제가 처리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답했다.

버려지는 미군트럭을 수리해, 자신의 사업 밑천으로 삼았던 이 청년은 한진그룹의 창업주 조중훈 회장이다.

개인용달사업자에 머물 수도 있었던 '한진상사'가 거대기업으로 도약하는 첫 발판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만약, 조 회장이 도로 위에 멈춰서 쩔쩔매던 외국인 여성을 보고 웃어 넘겼다면, 지금의 한진그룹은 없었을 지도 모른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조중훈 정신'이 지금의 한진그룹을 키운 셈이다.


#2.

경부고속도로 전구간이 완전 개통된 건 1970년 7월 7일.

이 무렵, 몇몇 운수사들은 고속도로를 이용한 노선버스 운수사업에 뛰어들었는데, 한진그룹도 그 중 하나였다.

하지만 모두에게 고속도로는 처음이었기 때문이었을까? 당시 고속도로에서는 교통사고가 잦은 편이었다.

한진고속도 결국 대형 사상사고를 일으키고 만다.

8월 22일, 서울을 떠나 대구로 향하던 버스가 추풍령휴게소 인근에서 전복된 것이다. 사망자 25명, 부상자 22명.

한진 측은 사망자 1인당 보상금 60만원, 장례비 10만원을 지급하기로 유족 측과 합의한 상태였다.

그런데 돌발상황이 생겼다. 분명 보상금 합의를 마쳤는데, 유족들이 당시 서울역 앞에 있던 한진고속 터미널에서 농성을 시작한 것이다.

"조중훈 회장이 '1인당 200만원은 주는 게 맞는데...'라고 혼잣말을 했다"는 게 유족들의 주장이었다.

깜짝 놀란 간부들이 조 회장에게 달려가 사실 여부를 물었다.

"응, 맞아. 유가족들이 내게 인사를 하러 왔더라고. 그 자리에서 내가 그런 말을 했어. 그러니 다른 말 말고 희생자 한 분 당 200만원 씩 드리도록 해!"

당시, 교통사고 사망자 유족에겐 10만원의 보상금과 30만원 안팎의 위자료를 지급하는 정도가 보통이었기에 200만원이란 금액은 파격적이었다.

이렇게 큰 사고를 냈지만, 한진고속 터미널은 대구행 버스를 타려는 승객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어느 버스든 사고 위험이 있는 건 마찬가지 아닌가. 이왕이면 배상금 많이 주는 한진고속버스를 타자"는 이유였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조중훈 정신'이 아니었다면, 대규모 사상사고가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긴 어려웠을 것이다.


#3.

최근 몇 년 간, 한진그룹은 부정적인 이유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조현아 전 부사장의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은 'nut rage'라는 이름으로 인터넷에 소개되며, 전세계적 조롱거리가 되고 말았다.

조현민 전 전무의 이른바 '물벼락 갑질'은 한진그룹 오너 일가의 추태가 폭로되는 기폭제가 돼 버렸다.

"대한항공이라는 사명(社名)에서 '대한'을 빼야 한다"는 여론의 손가락질 마저 나오고 있다. 

대한항공. 물류를 움직여 국가에 보답한다는 '수송보국(輸送報國)' 정신의 상징 아니었던가.

'오너 경영인 일가' 때문에 회사 이미지가 추락하고 있다는 것... 이런 유형의 위기는 창업 이래 처음이다.

이럴 때일수록 한진그룹·대한항공은 조중훈 회장의 창업정신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 귀한 줄 아는 '조중훈 정신'... 2·3세 경영인이 가슴에 새기지 않는다면, 어떻게 이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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