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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윤의 세상살이] 어릴적 전쟁 공포증
전경윤 기자 | 승인 2018.04.30 02:19

1983년 2월의 어느 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중학교 2학년 진학을 앞두고 있던 필자는 집에서 TV 시청을 하다 화들짝 놀랐다. 갑자기 정규 방송이 중단되더니 다급한 목소리의 경보 방송이 시작됐다. “여기는 민방위본부입니다. 지금 서울, 인천, 경기지역에 공습 경계 경보를 발령합니다. 국민 여러분 이것은 실제 상황입니다.” 실제 상황이라는 말은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로 다가왔다. 필자의 머릿 속에는 온갖 생각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전쟁과 피란, 라면 사재기, 휴교 등의 단어들과 함께 북한 공산군의 총에 맞아 죽는 상상까지 떠올리면서 몸서리를 쳤다. 평소 막연하게만 여겼던 전쟁에 대한 공포감이 내 몸 구석 구석을 날카롭게 파고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다행히 충격과 공포로 가득찼던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긴급 경보 방송이 나간 이유가 북한군의 침공 때문이 아니라 북한 공군 대위의 귀순때문으로 밝혀지자 국민들은 그제서야 놀란 가슴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당시 이웅평 북한 공군대위는 북한의 주력 전투기인 미그-19를 몰고 자유를 찾아 남쪽으로 내려왔다. 북한 전투기가 남으로 내려오는 모습이 레이더에 잡히면서 우리 전투기가 긴급히 출격했고 민방위 경보체제가 발동됐던 것이다. 그때만해도 전쟁은 언제든지 우리의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필자가 중학생 시절 자주 꾸던 꿈도 전쟁과 관련된 것들이 많았다. 꿈에서 필자는 서울 종로 거리에서 많은 인파들 속에서 걷고 있다가 갑자기 북한군에 포위됐고 무차별 총격 속에 주위의 시민들이 하나 둘 쓰러지는 상황을 맞기도 했다. 그때 꿈을 꾸면서 소리를 질러대 옆에 있던 형과 동생들도 덩달아 놀랐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지난 1987년 북한이 서울을 물바다로 만들기 위해 금강산 댐을 건설하고 있다는 당시 정부의 발표도 큰 충격과 공포로 다가왔다. 정부는 북한의 물 공격을 막기 위해서는 우리도 댐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고 필자를 포함해 많은 국민들은 평화의 댐 만들기 모금운동에 적극 동참했다.

하지만 국민들의 안보 의식은 세월이 흐르면서 많은 변화를 겪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무덤덤한 반응을 보이고 한반도의 전쟁 가능성에 대해서도 크게 걱정하지 않는 이들이 대다수인 상황이 됐다. 지나친 안보 불감증을 걱정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실제 상황을 가정한 민방공 대피 훈련이 실시돼도 강건너 불구경하는 듯한 시민들의 모습을 흔하게 찾아 볼 수 있다. 과거의 지나친 안보 의식도, 요즘의 지나친 불감증도 모두 옳게 여겨지지는 않아 보인다.

이웅평 대위가 귀순한지 35년이 지나 남과 북의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났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을 발표했다. 두 정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하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했다면서 공동 선언문에 서명했다. 한반도의 평화 정착을 위해 올해안에 종전을 선언하겠다고도 했다. 지난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은 잠시 중단된 것이 아니라 완전히 끝났다는 선언을 하겠다는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가 정착되는게 아니냐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물론 일부 야당 등에서는 이번 정상회담 성과를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비핵화 조치에 대한 구체적인 이행 로드맵이 나오지 않으면 이번 합의가 말의 성찬이 될 수 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처럼 여러 해석들이 나오고 있지만 일단은 차분히 지켜봤으면 좋겠다. 아직 북미 정상회담 등 가야할 길이 남아 있다. 한반도의 봄이 확실하게 찾아온다면 과거 전쟁 위협으로 공포에 떨었던 일, 무감각했던 일 모두가 성장통으로 여겨질테니까...

 

 

 

전경윤 기자  kychon@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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