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85년 김정빈 작가의 불교색 짙은 소설 ‘단’을 영화화하면서 영화계에 데뷔한 김행수 감독은 영화판에서 지독하게 운이 없는 감독으로 통한다. 영화 ‘바보들의 행진’ ‘병태와 영자’ 등으로 70년대 한국 영화의 아이콘으로 불린 고 하길종 감독과의 인연으로 영화 감독의 꿈을 키웠지만 스승이 너무 이른 나이에 요절한데다 초반에 영화 몇편이 흥행에 실패하면서 깊은 침체의 늪에 빠져들었다. 오랫동안 시나리오를 들고 제작자를 찾아 다녀도 선뜻 투자하겠다고 나선 이가 없어 영화 제작이 무산된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김 감독은 한국영화감독협회 부이사장을 맡는 등 충무로 영화판에서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첫 영화가 흥행하지 못하면 계속 영화가 엎어진다(?)는 충무로의 속설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지만 김 감독은 실망하지 않는다고 했다. 

김 감독은 30년 이상 영화 외길을 걸어왔지만 사실 불교와도 뗄레야 뗄 수 없는 인연을 맺고 있다. 영화판을 떠나지 않으면서도 오래전부터 지리산 자락에 흙벽을 직접 쌓아올려 움막을 짓고 마치 구도자와 같은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이 때문에 불교와 영화는 늘 김 감독의 마음 속에 화두처럼 자리를 잡고 있다. 그동안 불교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적지 않았지만 소재만 빌린 불교 영화가 아니라 진짜 불교를 제대로 파고드는 영화를 만들겠다는게 평생의 꿈이라고 김 감독은 말한다.

그동안 불교를 소재로 다룬 한국 영화는 1980년대 이후 꾸준히 대중들에게 선을 보여왔다. 수도승의 고뇌와 방황을 통해 진정한 깨달음이 무엇인가를 그린 임권택 감독의 1981년작 ‘만다라’는 안성기,전무송 주연의 영화로 삶의 본질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인간의 세속적 불안과 욕망에서 벗어나 불도에 귀의하는 한 여성의 삶을 그린 1989년작 한국영화 ‘아제 아제 바라아제’ 역시 임권택 감독 작품으로 여배우 강수연에게 모스크바 국제영화제 여주 주연상을 안겨 화제가 됐다. 악연으로 이어지는 업보의 악순환 속에서 끝없이 방황하는 인간의 본질을 그려내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그 뒤로 불교 영화들은 작품성은 어느 정도 인정받았지만 대중들에게 큰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말 개봉한 영화 ‘신과 함께’는 불교적 세계관을 다룬 영화로서 천 4백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등 흥행몰이에 성공해 불교 문화 콘텐츠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불교 영화는 재미없고 지루하다는 편견도 일정 부분 깨뜨렸다는 평가도 받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사후세계와 윤회,49재 등 불교의 가르침을 바탕에 깔고 있으면서도 중생을 구제하는 지장보살의 존재가 빠져 있는 등 반쪽짜리의 불교 세계관과 가치관을 담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불교와 영화라는 화두에 천착해온 김행수 감독이 오랜 침묵을 깨고 제대로 된 불교 영화를 만들겠다면서 기지개를 켜고 나섰다. 영화 제작을 위해 먼저 구법(求法) 장편 소설을 세상 앞에 공개했다. 김 감독이 펴낸 소설 공유(空有)는 산중 도인으로 불리는 묵계 스님의 일생과 수행 여정을 통해 인간은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묻고 있다. 소설의 제목 ‘공유’는 불교의 가르침인 ‘진공묘유’(眞空妙有)에서 따온 말로 텅비어 있지만 사실은 의미있는 것들로 가득차 있는 세상사의 이치를 일깨워주고 있다.

김 감독은 지난 7일 배우 전무송 씨 등 동료 선후배 영화 감독과 배우,영화.방송계 관계자들을 초청해 소설 '공유' 출판 기념회를 갖고 정통 불교 영화 제작에 대한 포부를 밝혔다. 무늬만 불교인 영화가 아니라 진짜 불교 이야기를 다룬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김행수 감독, 비록 힘든 도전이지만 불교의 참된 가치를 널리 알리고 대중의 공감도 얻을 수 있는 불교 영화를 만들어주기를 조심스럽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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