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를 처음 만난 것은 2011년 12월 초 였습니다. 여의도의 허름한 밥집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홍 대표는 집권여당 한나라당 대표 최고위원, 저는 막 정치부로 발령받은 ‘초짜’ 국회 담당기자였습니다. 차장급 기자 5명이 그룹지어 불려나온 ‘격의없는 오찬’의 꽤나 조촐한 메뉴가 인상적이었던 그 자리에 홍 대표와 정면으로 마주 앉았습니다. 실존하는 눈 앞의 ‘모래시계 검사’는 거침없이 이야기를 쏟아냈습니다. 가급적 입을 닫고 관찰에 집중한 저는 홍 대표가 무대에 선 연극배우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소 작위적인 발성과 목소리 톤, 칼로 무 자르듯 단정짓는 화법...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좁은 방 구석에 앉아 나누는 대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마치 대중연설 하듯 하고 있구나’ 그가 털어놓은 메시지는 흥미로웠지만 비장함이 지나친 태도는 불편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가 기억해둔 홍 대표 발언 한 부분을 뉴스로 뽑아냈습니다. <홍준표 “당 대표 되려면 40~50억, 나는 8천만원 썼다"> 이 제목의 기사에 동료 기자가 혀를 차며 코멘트를 했습니다. “8천만원으로 당 대표 경선을 치러서 당선됐다는 농담 같은 말을 정말 기사거리라고 생각했냐?” 당시 고승덕 의원 전당대회 돈 봉투 폭로와 당의 선관위 디도스 공격 사태로 휘청거렸던 홍 대표는 그날의 오찬 며칠 뒤 대표직에서 물러났습니다.

   현대 한국사의 여러 선거에서 대구는 ‘육지 속의 섬’이었습니다. 특유의 내륙성 폐쇄적 시민 기질은 종종 합리적 승부를 거부했습니다. 뻔히 보이는 눈앞의 실리도 보란 듯 걷어 차버리곤 했습니다. 참여정부 초기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유일한 대구 친구 이강철이 ‘예산 폭탄’을 공언했지만 한귀퉁이 보궐선거 의석도 내주지 않을 만큼 대구는 어리석을 정도로 자존심의 벽을 쌓아올렸습니다. 그렇게 높아진 담장은 최근 10년간 ‘박정희를 향한 향수’, ‘박근혜를 위한 의리’ 등이 덧씌워져 한층 단단해졌습니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김부겸, 홍의락 등 더불민주당에 2석을 내준 건 ‘진박 감별사’니 ‘작대기만 꼽아도 새누리당’이란 식으로 대구 민심을 왜곡한 친박에 내리친 준엄한 죽비 소리였습니다. 이렇듯 명분과 의리를 고집스럽게 중시해온 대구 정서를 요즘 홍준표 대표를 비롯한 몇몇 위정자들이 잘못 읽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홍 대표는 6월 지방선거에서 대구경북만 지킨다면 보수를 재건할 수 있을 것 처럼 행보하고 있습니다. ‘꽃길’ 논란에도 기어코 대구 북구을 당협위원장에 ‘셀프 입성’한 것을 대구 사랑이 넘쳐서 그렇다고 봐줘야 할까요? 탄핵 사태의 책임을 나눠 져야할 박근혜 정권 마지막 각료들이 벌써 대구를 무대로 부활의 몸부림을 치는 것도 대구 유권자를 한심한 ‘꼴통’으로 왜곡하는데 일조합니다. 박 전 대통령 재판을 지켜보며 근신해야 마땅할 강은희 전 여성가족부 장관은 대구시교육감을 하겠다며 표밭을 누비고 있고, 김재수 전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자유한국당 대구시장 경선 주자로 나섰습니다. 나설 때와 물러설 때조차 구분 못하는 인물이 대구가 자존심 하나로 지켜온 보수의 가치를 덥석 접수하겠다는 것은 지나친 오만이자 착각이 아닐까요?

   경선 비용 8천만원만 쓰고 당 대표가 됐다고 자랑했던 홍준표 대표는 6년만인 작년 7월 제2차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서 또한번 보수정당의 수장이 됐습니다. 그리고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패할 경우 치러질 전당대회에 다시 출마할 조짐을 보입니다. 최근 만난 홍 대표의 한 측근 인사는 “지금까지는 비자발적인 구원투수 역할을 한 셈이기 때문에 지방선거 책임론과 무관하며, 당 대표직 재도전도 가능한 것 아니냐”란 말을 했습니다. 지방선거 이후 홍 대표는 맡아둔 당협위원장 자리를 근거로 대구에서 새출발을 모색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구만 잘 다독이면 개인적 정치 생명을 연장하는 것은 물론 보수 결집의 기회를 엿보면서 정권 창출까지 해봄직 하다고 여기는건지 모르겠습니다. 2011년 12월에 만났던 홍준표 대표가 꿨던 많은 꿈들은 불과 며칠 뒤 유승민,원희룡,남경필의 최고위원 집단 사퇴로 허망하게 사라져버렸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홍 대표가 다시 꾸고 있을 ‘보수 재건’의 꿈 만큼은 반드시 이루길 개인적으로 바랍니다. 하지만 그것이 GRDP 전국 꼴찌도시 대구의 자존심과 회생의 기회까지 밟고 올라선 결실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도 함께 희망합니다./ 이현구 정치외교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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