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책 제목이 <나는 나다>, 부제가 ‘수필로 읽는 금강경’인데, 단순한 수필이 아니라 정말 금강경의 대의를 적절한 표현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느 쪽의 어느 구절만 읽어봐도 딱딱 떨어지는 간결한 해설이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것 같습니다. 맨 끝에 보면 도올 김용옥 교수, 법륜스님, 덕현스님 이 세 분의 금강경 강의에 힘입었다고 밝히고 계신데, 어떤 인연으로 금강경을 공부하게 되셨는지요?

2년 전에 아찔한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다행히 중상이 아니었구요. 입원 치료하는 과정에서 어느 스님에게서 금강경을 받았어요. 금강경을 그때 처음 접했는데, 아 그때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어요. 제가 읽은 금강경은 존재와 우주의 원리,그리고 삶의 실천에 관한 것이었는데 너무나 혁명적이었어요. 그것을 구체적으로 밝혀보자는 욕심에 책까지 쓰게 되었네요.

2. 가볍게 수필 형식으로 읽고 이해할 수 있는 해설서라고는 하지만 보통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간단한 내용도 아닐 것 같습니다. 대개 불교를 처음 공부하던 오랫동안 공부하던 흔히 겪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바로 자기자신의 한계를 넘지 못하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금강경에서는 대표적으로 네 가지 상, 4상(四相)을 들고 있습니다만, 이 상이 또 상이 아니라는 말씀도 주고 계시지 않습니까? 상이 상이 아니라서 상이라 한다 하는 하나의 공식처럼 금강경은 대의를 펼치고 있는데, 어떤 말씀을 주시겠습니까?

불법은 인과법이죠. 필연을 말합니다. 근데 제 책에선 우연도 필연에 포함시키고 있죠. 가령 제 친구가 등산하다가 돌이 굴러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해 봅시다. 바위가 떨어져서 다리가 부러졌으니 원인과 결과, 인과법이죠. 근데 돌이 그 순간 그곳에서 친구의 다리를 부러뜨리기 위해 떨어졌다 할 수는 없겠죠? 존재들의 필연이 모여 사건이 발생하지만, 사고는 아무도 의도하지 않은 우연한 것이에요. 이게 연기법이에요. 연기법이란, 나는 하늘 바람 번개 흙 나무 토끼 등등 우주의 모든 인연들과 이어져 있기에 숨쉬고 살아간다는 것이잖아요? 그것들이 없으면 나도 없어요. 바꾸어 말하면 나는 우주의 모든 존재가 겹겹이 둘러싸여 있고, 그것들이 의도하지 않아도 언제든지 나를 치고 들어 올 수 있는 구조 안에 있어요. 누구나 길을 걷다가 번개에 맞을 수 있어요. 이게  연기법의 필연이며 우연이에요. 친구가 다쳤다는 상에 사로잡히면-재수가 없었다느니, 조상 묘자리 탓도 하고, 이름이 나쁘다느니 별별 이유를 붙이며 불운에 치를 떱니다. 상에 잡혀 있는 살이에요. 그러나 다쳤다는 상에서 빠져나오면-나는 인연법으로 얽혀 있기 때문에, 다른 인연이 의도치 않게 나를 침범한다는 것을 받아들입니다. 그것은 밥 먹는 것과 같은 자연스런 일상이에요. 그것을 아는 지혜있는 자는 다친 것은 다친 것이 아닙니다. 상은 상이 아니죠.-인연법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자유인이에요.-해탈이죠. 다침은 어떻게 일상으로 돌아갈 것인가를 묻는 화두일 뿐이에요. 다친 것은 없어요. 모든 게 다 일상이에요. 불법은 일체개고라 하잖아요? 모든 것은 괴로움이다. 그 답이 12연기에 있어요. 12연기 첫째가-무명이죠. 무명이라는 말,의미상으론 무지 어리석음 어둠을 나타내는데, 어둠이라 하면 빛의 상대적 의미가 되지만, 무명은-빛이 없는 명이에요. 즉 무명은 밝음, 명과 이어져 있어요. 이게 언어의 정형성과 상대성을 초월한 불립문자입니다. 무지는 지혜와 상반되는 둘이 아니라, 생각 하나 돌이키면 곧장 지혜에요. 둘이 아니며 하나도 아니죠. 존재를 나타내는 법이라는 말도, 내가 의식해서 드러내므로 존재가 있게 된다 하는 불립문자죠. 부처의 언어는 이렇게 심오합니다. 암튼, 무명이 왜 고통이냐?-존재는 연기적으로 조건 지어져서 드러나는데, 근데 내가 실체가 있는 양 잡고 있으면 나고 죽는 것이 있게 되고 고통이 따릅니다. 무명은 나를 실체화한 어리석음이죠. 다음이-욕망이 부른 고통이죠. 12연기에서 애취유에요. 갈애, 욕망은 밑빠진 독이어서, 욕망자체가 고통이에요. 한계를 실감하게 하는. 셋째, 연기적 존재로서 고통이에요. 연기적 존재는 확률적 존재에요. 우린 다른 존재가 나를 침해하는 위험에 항상 노출 되어 있잖아요? 친구가 다친 것이 우연이라면, 내가 멀쩡한 것도 우연한 사건이에요. 나는 안정을 확신할 수 없는, 예측 불가한, 불확실한 존재,-이것이 확률적으로 존재하는 것이죠. 나는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불가측이 불안과 공포를 부릅니다. 고통이 왜 진리인지 알만하죠?.

3. 책의 구체적인 내용에서 몇 가지 여쭤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중도에 대한 말씀인데요, “중도를 양단의 수용이 아닌 상극을 배척하며 내쳤기에 선불교가 사회(공업)으로 뛰어들지 못하고 마음(별업)으로 주저앉는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더불어서 소극적 중도와 적극적 중도도 말씀하고 계신데, 연관지어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선불교는 고행과 쾌락에 치우지지 않는 길, 도식적인 수행의 관점에서 중도를 바라봅니다. 선악 양변 극단 상대성을 떠난 세계를 참선 수행으로 도달할 수 있다 여기죠. 분별과 집착을 버린 무소득의 경지를 실체화하고 절대화해서 그것을 마음에서 찾고 있어요. 그래서 직지인심 견성성불이라 해요. 마음을 꿰뚫어 청청한 본성을 알아챔으로 깨달음이라 하죠. 참나니 한마음이니 주인공이니 하는 것들이에요. 결국 선에서 깨달음의 체험이란 관념으로 떨어질 위험이 있어요. 왜냐, 중도는 있고 없음, 유무를 초월하는 존재의 실상을 나타냅니다. 나는 실체가 없으니 유가 아니고 행위로 자기 존재성을 만들어 가므로 현재 실존해요. 무도 아니죠. 유무를 초월하니 오고 감이 없다. 불생불멸이다 하죠. 중도는 인연 연기로 조건지어 생명을 일으키는 우주의 창조 법칙이고, 나의 존재성을 설명하는 우주 원리에요. 어떤 특별한 실체적 세계나 상태가 아니에요. 결국 무아의 본질은 자기를 창조해서 자기를 초월하는 중도적 실천에 있어요. 중도는 창조적 행위로 나를 드러냄으로써 달성되는 것. 결국 업으로 돌아갑니다. 업으로 업장을 극복한다.-이것이 적극적 중도입니다. 창조는 욕망의 실현이에요. 이것을 대승에서 원력, 서원이라 하죠. 인연법과 무아를 깨달아서 지혜 자비가 녹아드는 행위가 중도적 실천입니다. 마음을 깨달아 부처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나를 부처로 만드는 행동으로 부처를 달성하는 겁니다. 산속에서 에헴하는 게 불교가 아니라 치열하게 삶을 파고 들어야 합니다. 더불어를 완성하는 연결망을 짜면서. 인드라망이라 하죠.
 
4. “불법은 마음법을 뛰어넘는 행위법”p226)이라는 말씀도 하고 계신데요, 어떤 뜻인가요?

유식에 경도된 선불교에 대한 반성을 주문하는 겁니다. 유식은 오직 마음을 말합니다. 마음 밖의 대상으로 실재하는 것을 부정하고 오로지 마음의 작용만 있다는 거에요.업의 종자식으로  8식, 아뢰야식의 발견은 아주 뛰어나지만, 결국 불성을  궁극적인  실체로 설정했다는 점에서 소승으로 주저앉아버립니다. 유식이란-변계소집성,의타기성,원성실성으로 나타내는데, 요가 선정으로 업 종자가 허깨비인 것을 깨쳐보면, 아뢰야식은 불성으로 돌아가고, 번뇌 물결이 잠잠해지면 맑은 물이 남듯 마음에서 청청하고 완전한, 여여한 세계를 본다는 것이에요.-그것을 성불이라 하죠. 그러나 행위법이란-업을 말하죠. 업장을 맑히는 것은 선업으로 씻어낼 수 밖에 없어요. 흙탕물을 가시어 내자면 맑을 물을 계속 따라 부어야 합니다. 결국 열반은 행위법이에요. 금강경에서 보시를 비롯한 6바라밀의 실천을 계속 주문하잖아요.
 
5. p301에 보면 “신이나 영혼은 아집이 낳은 생각이고 관념으로 잡고 있는 ‘나’다.”라고 말씀하고 계신데, 좀 더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무아를 모르고, 나를 영원히 붙잡고자 하는 어리석음이 신 영혼을 창조합니다. 자기애의 병증이 창조한 것이 신이며 영혼이에요. 보고자 하는 자기 모습. 영생을 희망하며 설계한 나의 모습으로, 나의 연장입니다. 성전에서 부르짖는 유일신은 존재하지 않아요. 신은 자신이 만나고자 하는 간절함으로 세운 우상으로, 각자가 마음에서 모양 지어 만든 자기 얼굴이다 이거죠.
 
6. 장자에 대한 비판도 나옵니다. p391을 보면 “꿈만 있다. 저 언덕을 겉돈다. 아상에 게워놓은 환영이다.”라고 까지 거세게 비판하고 있는데, 흔히 노장철학과 불교의 연결에서 선불교가 나왔다고 하기도 하고 유불선 삼교를 융합한 가르침들도 많은데, 뭔가 전혀 다른 소식을 전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제 책 25분에서도 그렇게 말하죠. 그러나 노장의 비판이라기보다 해석의 문제에 대해 화두를 던지고 싶었어요. 누군가 던져놓은 말은 나의 해석이라는, 생각의 여과 장치를 거치면서 내 것이 됩니다. 노장을 잘못 받아들이면 지금 여기의 살이에서 유리되어 다른 존재를 설계해서, 다른 세계를 성취할 수 있다는 그릇된 믿음을 심어 줄 위험이 있어요. 신선과 무릉도원을 부르짖는 도교가 그것이죠. 노장과 무관하지 않아요. 선불교도 신선처럼 신비화한 측면이 있고요.

7. 금강경 하면 떠오르는게 사구게입니다. pp466~467을 보면 “사구게라도 열심히 전해야 하는 이유는 집단의 각성 정도가 사회지성이기 때문이다. 사회지성이 높을수록 표현의 폭은 크고 감각의 거리는 적다.”는 말씀을 하고 계신데요,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금강경은 4구게라도 전할 것을 누차 강조합니다. 천국은 저 세상에 있는 것이 아나라,땅을 딛고 있는 여기에서 우리들이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이죠. 무아 연기적 존재에 대한 각성이 있을 때, 우리는 우주의 본성대로 내 혼자가 아닌, 다 같이 더불어를 완성할 수 있어요. 그러니 4구게라도 열심히 전해야 하고요. 또한 천국은 각자의 개성, 다름이 존중되고 표현되는 곳이에요. 당연 높은 사회 지성은 각자 이해능력을 높여주고 수용적인 태도를 갖게 합니다. 감각의 거리가 좁아지죠.

8. “나는 나다" 라고 하시면서도 p469에서는 “나는 내가 아니다. 내 몸,감정,생각,의지,판별이 나다” 라고 말씀하고 계세요. 그리고 p470에서는 “ ‘나는 내가 아니다’를 달리보면 ‘나는 나다’이다” 라고 하고 계시거든요.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나는 내가 아니므로 결국 나는 나일 수 밖에 없어요. 금강경의 변증법적 어법이죠. 나는 나 밖의 모든 존재. 흙 음식 햇빛 공기 나무 사슴 등등  우주의 모든  집합이에요. 내 안에 나는 없어요. 그래서 내가 살아지는 거에요. 그러므로 자신이 스스로를 결정해야 합니다. 나는 내가 아니기 때문에 나를 결정하고 만드는 것은 나일 수 밖에 없죠. 나의 실존을 어떻게 구하느냐 하는 것은 스스로 묻고 답을 찾아야 합니다. 나는 내가 아니지만, 존재의 정답은 자신이 쥐고 있다는 면에서 나는 나다 이렇게 말할 수 있죠.

9. p475에서는 개체이며 연결된 전체라고 하면서 무위법은 구성원이 지혜를 모으는 제도로 완성된다고 하고 계십니다. 어떤 의미입니까?

무위법을 다른 말로하면 불토, 천국이에요. 연기법의 얽힘으로 보면 존재는 전체이며 또 부분이죠. 전체적 존재를 달성하자면 사회적 인간으로서 연기 조직을 잘 짜 낙오자의 이탈을 막고, 서로 손잡고 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 그것이 사회 제도로 정착한다면 더없이 좋겠죠?북유럽의 복지 시스템같은. 존재의 원리에 대한 각성이 있다면 천국은 멀지 않겠죠. 부처님은 그 화두를 던져 놓고 있어요. 천국은 우리들 손에 달려있다 하는.

10. 불교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분들도 많고 또 불교 신자들도 더욱 정진을 해 나가야 할텐데, 어떻게 공부를 해나가면 좋을지 조언을 주신다면요?

실천적으로 '나다' 운동을 제안합니다. 경계가 닥치면 그래, 저분은 내 어머니다. 그래 당신은 나였지. 이렇게 '나다'하면 화를 누르고 지혜와 자비가 나오지 않겠나 싶습니다. 이 말을 전하는 제가 부끄럽군요. 교학적인 면에서 금강경 하나라도 깊게 공부했으면 될 것 같습니다. 깨달음이란 인연 연기를 절실하게 느끼는 것입니다.

11. 탈종교 시대다, 불교 인구가 줄어든다 걱정을 하기도 하는데, 앞으로 우리 불교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한 말씀 주시기 바랍니다.

종교란, 잘 이해되지 못한 것을 잘 이해된 것으로 알고 믿는 것이다 하잖아요? 과학적인 검증을 거부하지 못하며 탈종교화가 가속되고 있죠. 서구에선 이젠 교회에 가는 사람을 보기 드물 정도에요. 그런데 불교는 가장 과학에 근접해 있다 하는데, 불교인이 줄어드는 것은 불법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겠죠. 종교의 본질, 부처님 가르침대로 돌아가야 합니다. 존재와 관계. 나의 구원과 관계의 구원을 어떻게 실천적으로 구현하느냐? 불교의 사회적 역할과 재능을 이끌어내야 합니다.

12. 앞으로 계획 간단히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책을 출판해서 진리를 전하고 싶고요. 봉사 단체를 지원하고 싶습니다.

네, 이번 책의 수익금 1%가 어린이를 위한 나눔의 기금으로 쓰인다고 하던데요, 좋은 결과 있으시길 바랍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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