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이 뜨지 않는경우 여기를 클릭하여주세요.

 

조선 후기 불교미술의 발전을 이끈 당대 최고의 고승, 벽암 각성 스님의 업적을 재조명하는 자리가 마련됐습니다.

한국미술사연구소가 한국불교미술사학회와 함께 ‘벽암 각성과 불교미술문화재’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었는데요. 어떤 내용들이 나왔는지 조윤정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조선 후기, 최고 승직이라 불린 도총섭의 자리에 오르면서 불교 미술과 문화재 조성 등에 힘쓴 벽암 각성 스님.

벽암 각성 스님의 일생과 발자취를 짚어보는 학술대회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렸습니다.

당시의 사찰과 불상, 불화 조성 등을 이끌었던 대표적인 스님이지만, 아직까지 체계적인 연구가 이뤄진 적이 없어 이번 학술대회가 갖는 의미는 더욱 각별했습니다. 

[인서트1 : 덕문스님 / 지리산 화엄사 주지]

[“벽암 각성 스님에 대한 연구와 가치 조명이 미흡했던 것은 현실입니다. 그러던 차에 이렇게 벽암 각성 스님의 업적을 조명하는 학술대회가 열리게 되어서 스님의 마지막 회향처이고 스님의 숨결의 흔적들이 살아 숨 쉬는 화엄사에서 소임을 맡고 있는 저로서는 감회가 남다르게 다가옵니다.”]

전문가들은 벽암 각성 스님을 조선시대 불교 미술사의 가장 중요한 인물로 주저없이 꼽았습니다.

[인서트2 : 문명대 / 한국미술사연구소 소장]

["실제로 사찰의 건립, 불상의 조성, 불화의 완성, 불구의 제작과 불경의 간행 등에 직, 간접적으로 관여 또는 관장하거나 증명에 왕성하게 활동한 분은 벽암 각성 대선사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이 사람을 따라올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스님은 불교 미술품을 직접 제작하지는 않았지만, 수많은 조각장과 목수들을 이끌고 불사를 주관하고 지도했습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 승군으로도 참여한 벽암 각성 스님은, 전란으로 초토화된 사찰을 새로 짓거나 수리하는 데도 적극 나섰습니다. 

각성 스님의 손길이 닿은 대표적인 사찰은 완주 송광사와 합천 해인사, 보은 법주사, 구례 화엄사 등으로 오늘날 각 지역을 대표하는 명찰로 자리잡았습니다.

각성 스님이 보여준 탁월한 리더십도 눈에 띕니다.

남한산성 축성을 예상보다 일찍 마칠 수 있었던 것도 스님의 지도력 덕분이었다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인서트3 : 고영섭 /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교수]

[“벽암 각성은 조정에서 승려들에게 남한산성을 쌓게 했을 때 불교의 팔도도총섭을 맡아서 남한산성 축성의 역사를 감독해서 3년 만에 축성을 완성했는데요. 이렇게 예정보다 일찍 축성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잘 조련된 승병들,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한 벽암의 노력에 의해 이뤄진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제자 양성에도 힘을 쏟았던 스님은 자신의 세 가지 기본 철학을 강조하며 제자들이 올바른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이끌었습니다.

[인서트4 : 고영섭 /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교수]

[“생각을 망령되게 하지 마라, 얼굴을 부끄럽지 않게 하라, 허리를 구부리지 않게 하라. 이런 세 가지 조항을 강조했다는데..”]

전란의 상황에서도 불교 미술과 문화재를 지키는데 힘썼던 벽암 각성 스님의 생애는 3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불교계는 물론, 우리 사회에도 큰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스탠딩]

조선 후기, 침체된 불교 문화를 되살리기 위해 앞장 선 벽암 각성스님.

가려져 있던 스님의 업적을 기린 이번 학술대회는, 조선시대 불교 문화재 연구에 길잡이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BBS 뉴스 조윤정입니다.

 

영상취재 = 장준호

저작권자 © BBS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