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모룡 한국해양대학교 교수

● 출연 : 구모룡 한국해양대학교 교수
● 진행 : 박찬민 BBS 기자

(앵커멘트)다음은 주간섹션 순서입니다. '우리가 모르는 우리 지역' 이야기 시간입니다. 올해부터 새롭게 마련한 시간인데요. 지역을 더 알아보자는 취지로 한국해양대학교 구모룡 교수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수고해 주실텐데요. 전화연결하겠습니다.구모룡 교수님 안녕하세요?

구모룡 한국해양대학교 교수

질문1) 지난주에 ‘근대 식민도시의 유산과 기억을 부산학의 관점에서 어떻게 볼까’의 문제를 다뤘습니다. 식민도시로 성장했지만 교역과 교류의 도시가 부산이라는 해석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지난주에 이어서 이와 관련한 이야기를 계속했으면 합니다.

-20세기 전반은 제국이 지배하는 폭력적인 질서 속에 부산이 놓여 있었습니다. 중국과 러시아와 일본이 각축하는 가운데 영국과 미국 등이 일본의 뒤를 봐주었지요. 오늘의 관점에서 이러한 질서를 부산의 시각에서 다시 보는 일이 요청됩니다.

우리 가 능동적으로 새로운 네트워크를 형성하면서 로컬과 아시아 그리고 세계를 잇는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럴 때 부산의 위상이 보다 커지지 않겠습니까?

질문2) 그렇습니다. 서울과 부산이라는 국가적 시야보다 더 생산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일제시대 부산이 네트워크 도시라는 성격이 더 잘 드러난 것은 아닌가 합니다. 물론 식민지 상황이어서 그렇겠습니다만...

-좋은 지적입니다. 부산은 동아시아 지역 혹은 세계 체제 속에서 매우 중요한 지정학적 장소(topos)였습니다. 일본과 철도 연락선으로 연결되어 대륙까지 이어지는 한편, 나가사키나 시모노세키 등에서 출발하는 정기선과 화물선이 19세기말부터 상하이와 블라디보스톡을 왕래하였습니다.

20세기 전반 일본이 아시아의 바다를 장악한 가운데 진행된 일입니다만, 이러한 교통망 속에서 부산이 해역 혹은 동아시아 지중해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주요 거점 지역이 되었습니다. 이 점은 현재의 관점에서 깊이 숙고할 대목이고 미래의 부산을 위한 창의적 기획 속에서 재고되어야 할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질문3)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부산의 정체성 가운데 하나를 “교역과 교류”로 설정할 수 있겠습니다. 부산학은 역사 속에서 이와 같이 형성되는 정체성을 찾는 일을 목표로 삼는 학문이겠지요. 그렇다면 교역과 교류 다음으로 어떤 측면을 들 수 있겠습니까?

-말씀하신 대로 교역과 교류는 경제적이면서 문화적인 현상입니다. 부산은 상호문화적인 공간(transcultural areas)이지요. 쉽게 말해서 사람과 상품이 들고 나면서 문화가 전파되거나 충돌하면서 수용되는 장소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산과 이월이 이루어지는 공간입니다. 외국인들의 여행기들을 읽어보면 이러한 과정이 매우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습니다.

또한 우리 작가들의 소설에도 잘 재현되어 있지요. 가령 염상섭의 「만세전」과 같은 소설이 대표적입니다. 신소설에도 보면 서울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부산에 숨어들었다 러시아로 도망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염상섭의 「만세전」은 유학생인 주인공이 도쿄에서 부산을 경유하여 서울로 왔다 돌아가는 이야기 가운데 부산이 매우 구체적인 양상으로 서술되고 있습니다. 여하튼 이러한 사례들은 허다한데 식민초기에 일본인 유입이 많지만 식민 후기에는 조선인이 일본으로 건너가는 수가 증가하는 지표가 있습니다. 이산과 이월의 공간이 부산입니다.

질문4) 이산과 이월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나고 충돌하겠습니다. 이러한 과정이 매우 흥미롭게 들립니다. 부산을 문화적으로 볼 때 어떠한 특성이 있을까요?

-좋은 지적입니다. 거슬러 왜관과 식민도시의 공간 구성에서 이 문제를 살필 수 있겠습니다. 왜관 시절에도 공무역 외에 밀무역이 성행하였고 일본 음식인 스키야키가 구포에서도 팔렸다고 합니다. 혼혈아도 있었고요. 식민도시는 처음 이중도시 형태를 띱니다.

일본인 거주지와 조선인 거주지가 구분되는 형태인데 점점 이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혼종성을 더하여 혼종도시가 되지요. 일본인 거주지인 부평동에 조선인도 살았고 지금의 중앙동이나 수정동 지역에 많은 일본인들이 들어와 조선인과 함께 살게 됩니다. 따라서 부산은 혼종문화가 발달한 도시가 됩니다. 이 점도 오늘날의 시각에서 재인식할 대목입니다. 바로 이산(diaspora)과 혼종(hybrid)이라는 두 가지 문화적 측면입니다.

질문5) 그러니까 교역과 교류에 “이산과 혼종”을 더할 수 있겠습니다. 이들은 모두 우리 부산을 이해하는 데 매우 유익한 개념들이라 생각이 듭니다. 해방과 더불어 이러한 측면은 어떠한 양상으로 발전합니까?

-해방과 더불어 많은 일본인들이 돌아가는 공간이 부산이지요. 일본 측에서 이를 “인양”(引揚)이라고 합니다. 일본으로 나가 있던 조선인들이 “귀환”하는 장소도 부산입니다. 나고 들면서 부산은 큰 인구학적 변동을 겪습니다. 귀환한 조선인은 대다수 경상도 사람들인데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부산에 눌러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일본으로 간 일본인 인양자들이 본국에서 차별받았다는 사실도 주목거리입니다. 그만큼 식민의 기억은 단순하지 않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여하튼 부산은 해방과 더불어 내국이민의 도시가 됩니다. 이러한 특이성은 한국전쟁과 더불어 더욱 확대되지요.

질문6) 듣고 보니 해항도시(seaport city)이기 때문에 부산의 특성이 여타의 도시와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해방 전후의 부산이라는 도시는 어떤 위상을 지니고 있었습니까?

- 오늘날 우리가 부산을 제2도시라고 합니다만 일제 때도 부산의 위상은 대단히 컸습니다. 식민 후기의 부산은 거의 병참기지에 가까웠습니다. 부두를 중심에 놓고 군사 공항을 김해와 수영에 두면서 많은 군부대를 배치하였지요. 일본의 관점에서 대동아 전쟁이자 미국의 관점에서 태평양 전쟁인 “아시아-태평양 전쟁”의 기지로 부산을 활용하였습니다.

부산은 사람과 물자의 교역과 교류, 이산과 혼종의 공간으로 발전하였지만 특히 한국전쟁과 더불어 더욱 빛나는 지정학적 장소가 되었습니다. 지금의 유엔평화공원이 상징하듯이 미국을 위시한 유엔군이 부산항을 거점으로 교두보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일제의 병참기지는 다시 미국의 병참기지로 전환됩니다. 비행장과 군부대 그리고 항만 등은 오늘의 부산으로 변모하는 과정에 반드시 이해하고 넘어가야 할 대상들입니다.

(앵커멘트)듣고 보니 부산의 변화과정이 매우 다기합니다. 이러한 과정들이 우리 부산을 역동적이게 하는 요소가 아닌가 합니다. 다음 주에도 이러한 문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어가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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