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방콕의 한 사찰에서 닷새를 보냈다. 우리나라에서 북극한파가 몰아칠 때 태국은 여름이라 반팔에 반바지 차림으로 모기와 싸웠다. 평창 동계올림픽이 개막했을 때는 침대만 있는 단출한 방에서 말레이시아에서 온 중국계 청년과 함께 있었다. 숙소건물은 공사 중이었고, 방에 에어컨이 없는 것 까지는 괜찮았는데, 선풍기의 소음이 너무 심해 이국에서 잠 못 드는 밤이 이어졌다. 낮에는 아시아를 중심으로 전 세계 20개국에서 온 40여 명의 외국인들과 함께 낯선 ‘땅’ 낯선 ‘사찰’에서 함께 밥을 먹고, 명상을 하고, ‘환경’을 주제로 토론을 벌였다.

여러 인연과 배려 속에 여성주도 세계평화연합 (GPIW)에서 일하는 마리안 마르스트랜드의 이메일 주소만을 가지고 수차례 메일을 주고받은 끝에, 필자는 지난 6일부터 11일까지 태국 방콕에서 열린 아시아 태평양 청년 환경운동가 모임에 참가하게 되었다. 주제는 ‘기후변화’, 부제는 ‘명상’이다. 물론 필자는 청년도 아니고, 환경운동가도 아니다. 명상을 좋아하지만 열성적으로 하지는 않는다. 막상 행사에 가보니 모임의 참가자라 하기에도, 취재를 온 기자라 할 수도 없는 상태였다.

개인적으로 태국은 4번째 방문이다. 미국 UC 버클리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동국대 교수를 지낸 진월 스님을 따라 남방불교의 부처님오신날인 UN 베샥 데이를 취재한 것이 태국 불교와의 첫 번째 인연이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도 훨씬 지난 시절, 태국 왕실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성대하게 치러지는 UN 베삭데이 행사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UN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에서 태국과 스리랑카 등 남방불교권의 영향력은 강한 편이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근대에 일찌감치 서구열강의 지배를 받은 이들 불교국가들이 자국의 엘리트들을 영국과 미국 등의 명문대학으로 유학을 보냈던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다.

태국에서 열린 이번 아시아 청년 환경운동가 모임은 여성주도 세계불교연합 (Global Peace Initiative of Women)이 주최했다. GPIW의 본부는 뉴욕에 있고, 창립 자체도 2000년 뉴욕 UN 본부에서의 세계 종교지도자 회담이 계기가 됐다. 당시 회담에 참가한 불교와 힌두교 등 각 나라의 여성종교지도자들은 이 때의 만남을 계기로 2002년 GPIW를 창립했다. 여성종교지도자 모임으로 시작됐기에 종교는 서로 다르지만, 신앙과 명상을 분리해서 보는 서구인들의 특성상 회원 중에 상당수는 열렬한 명상 마니아이며, 친 불교적이었다. 

행사기간 GPIW 설립자인 디나 메리암을 인터뷰 했는데, 힌두교주의자 이지만 불교신자로 보아도 무방하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기독교인이라고 밝힌 GPIW의 한 회원은 자신의 스승은 틱낫한 스님이라고 말할 정도로 불교에, 아니 명상에 매료돼 있었다. 세계평화와 환경보호라는 주제에 있어서 불교만큼 방대한 사상적 깊이를 가진 종교도 없을 것이다. 특히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불교는 주류 종교이기에, 아시아 청년 환경운동가들의 모임은 아시아 UN 본부가 있는 태국에서 열렸고, 명상은 이들 모임의 주요 프로그램이 됐다.

이번 행사 참가자들의 이력을 꼼꼼히 살펴보았는데, 인도와 중국 출신들이 꽤 많았고, 캄보디아, 부탄 등에서는 스님들이 참가했다. 국적과 인종이 다양하고, 스님과 대학생 등 하는 일도 제각각 이었지만, 대부분 서구 유학생 출신에 UN 등 국제 NGO 모임에서의 활동 경험이 있었다. 국내 대표로 참가한 기후변화청년단체 (Green Environment Youth Korea)의 조혜원 학생 또한 캐나다에서 교환학생으로 1년을 보낸 뒤, 국내와 UN에서의 환경운동에 참가한 인연으로 이곳에 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에 대한 불교국가 스님들의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부탄의 스님은 부탄국영방송의 영어 이니셜이 우리나라의 불교방송과 같은 BBS라며 반겼다. 우리나라에 와 보았다는 캄보디아 스님은 이미 불교방송을 알고 있었다. GPIW의 설립자인 디나 메리암과 태국에 오기 전 영문으로 수차례 이메일을 주고받았던 마리안 마르스트랜드도 호의적 이었다. 친분이 두터운 불교여성개발원장을 지낸 김인숙 국민대학교 명예교수의 이야기와 함께, 서울에서 열렸던 G20 행사 당시 방문했던 우리나라 사찰과 그곳에서 먹은 사찰음식 이야기를 한참 했다. 대행 스님도 알고 있었으며 당시에 방문했던 한마음선원도 퍽 인상 깊었다고 털어 놓았다. 룸메이트인 말레이시아 청년은 나와 같은 모델의 삼성전자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었으며, 부탄의 한 대학생은 3~4개의 우리나라 말을 능숙하게 했다. 부탄에서 한국드라마를 즐겨본다고 했다. 진월스님과 함께 10여 년 전 태국에 처음 왔을 때보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우리나라는 국제사회에 더욱 많이 알려졌고, 인적교류도 진일보 했다. 

그러나 지난 10여 년의 시간 동안 우리나라만큼 우리불교가 더욱 국제적이 되었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확답을 하기에는 머뭇거려 진다. 물론 UN을 기반으로 서구중심의 다양한 국제모임과 행사가 불교와 연관 돼 있다 하더라도 우리불교계가 꼭 참여할 필요는 없다. 세계 G2로 성장한 중국은 세계불교포럼 등을 열며 국제 불교계의 또 다른 축으로 등장하면서, 이제 국제 불교는 남방불교는 태국과 스리랑카를 중심으로, 북방불교는 중국, 티베트 불교는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국제행사를 주도해 나가고 있다.

하지만 세계 외교의 중심이 UN본부가 있는 미국 뉴욕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고, 우리불교계가 그렇게 염원하는 우리불교 세계화의 종착지는 결국 미국과 유럽 등 서구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을 것 같다.

행사가 열렸던 태국 방콕의 Sathira-Dhammasthan Buddhist Center의 설립자는 비구니 스님이었다. 영어를 하지는 못했지만 GPIW의 공동의장이고 설립자인 디나 메리엄과 돈독한 우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영어에 능통한 재가자가 수시로 번역을 해 주었는데, 행사 기간 동안 이러한 모습을 보니 언어가 국제교류의 선제조건은 아닌 것 같았다.

특히 전 세계에서 온 젊은이들이 저마다 돌아가면서 자기 나라말로 챈팅 (Chanting)을 하고 벨소리에 맞춰 명상을 하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GPIW 설립자 디나 메리암과의 인터뷰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미국이 서구사회에서 명상을 제일 처음 받아들인 만큼, 앞으로 아프리카 등에 명상을 전파하고 싶다는 말이었다.

명상은 언어가 아니지만 인류가 함께 소통하는 새로운 언어가 될 수 있다. 인류는 소리 없이 명상을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평화와 공존, 유대감을 느낄 수 있다. 태국의 한 사찰에서 닷새 동안 세계인들과 명상을 하면서 느낀 개인적인 의견이다. 우리불교계의 세계화와 국제교류 확대의 열쇠도 결국 '명상'이 될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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