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S 허성우의 뉴스와 사람들] 황보영 새터민 출신 아이스하키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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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출연 : 황보영 감독 (탈북 출신 전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ㅁ진행 : 허성우 국가디자인연구소 소장

[인터뷰 내용]

허성우 : 안녕하십니까, 청취자 여러분, 전 북한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 출신 황보영 감독이 이 자리에 와계십니다. 어서 오십시오.

황보영 : 안녕하세요?

허성우 : 반갑습니다. 불교방송 청취자 여러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제가 황보영 감독님에 대해서 조금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황보영 감독님은 새터민 출신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전 국가대표 선수였습니다. 이 분은 1979년 함경도 청진 출생으로서 열두 살 때 함경북도 김책제철체육단 빙상 호케이의 선수로 발탁됐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빙상 호케이라는 것은 아이스하키를 북한말로 빙상 호케이라고 한답니다. 그리고 1997년 11월 부모님과 함께, 4남매와 함께 중국으로 탈북을 하셨고, 1999년도 4월에 한국에 망명을 했습니다. 당시 황보영 감독님은 스물한 살 이었습니다. 그리고 부모 모두 당에서 일한 관계로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고 합니다. 그래서 2011년 선수를 은퇴하고 현재 국제아이스하키 협회 활동과 경기도 장애인 아이스 슬레지 하키 감독직을 지금 겸하고 있고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아이스하키 대사를 지금 역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까?

황보영 : 다 맞는데요, 올림픽 대사는 좀 아닌 것 같아요. 

허성우 : 그렇습니까? 제가 찾아보니까 아이스하키 대사로 지금 하시는 것 같은데.

황보영 : 예전에 NHL 미국에 인터넷 방송에 인터뷰 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을 한국에서 해석해가지고 기사를 내면서 그때 여자 아이스하키계의 어머니다, 홍보대사다, 이런 이야기들이 그때부터 나왔어요. 그런데 제가 딱히 홍보해서 한 것도 없고요. 어머니라 하기엔 나이가 너무 아직은 젊고.

허성우 : 그래도 우리가 보통 어머니라고 할 때는 나이가 많은 사람을 어머니라 부르는 것이 아니고, 아이스하키에서, 그래도 그 분야에서 최고의 명성을 날리고 사람들이 많이 존경할 때 우리가 보통 어머니라는 표현을 씁니다. 그런데 황보영 감독님은 지금 북한말을 거의 쓰지 않는 것 같아요?

황보영 : 네, 한국 와서 계속 한국 사람하고 여기서 적응을 하고 하려면 한국 사람들하고 계속 어울리고 그래야 될 것 같아서 왔을 때부터 거의 새터민들하고 어울리지 않다 보니까 말투가 빨리 바뀌어 졌던 것 같아요.

허성우 : 그리고 아까 제가 말씀드렸던 대로 아이스 슬레지 하키라는 우리들에게 좀 생소한 용어인데요. 이것이 사실은 일반 청취자분들이 잘 모릅니다. 여기에 대해서 좀 설명해주시죠.

황보영 : 그냥 쉽게 생각하면 장애인 아이스하키에요. 하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썰매를 타고 하는 그런 운동이에요. 아이스하키랑 조금 다르다 하면 아이스하키는 스케이트를 타고 긴 스틱을 잡고 하지만 여기는 썰매를 타고 짧은 스틱 두 개를 가지고 옛날에 우리가 강가 같은데 가면 썰매 탔던, 그런 것 비슷하게 해 가지고 만들어진 기구를 가지고 운동을 하는 거예요.

허성우 : 현재도 경기도 고양시 장애인 아이스 슬레지 하키팀을 지금 맡고 있습니까?

황보영 : 네, 지금 맡고 있어요.

허성우 : 그리고 유소년 아이스하키 팀에서도 지도자 생활들 좀 했죠?

황보영 : 네, 지금 성남에 있는 유소년팀 코치로도 활동하고 있어요.

허성우 : 사실 비인기종목이잖아요? 아이스하키라는 것이요? 그렇게 하려면 남다른 각오가 있어야 되고 또 생활고도 상당히 어려우실 텐데 어떻게 해결합니까? 솔직히 한 번 말씀해보시죠.

황보영 : 그전부터 한국 와가지고 처음으로 옷 공장에 가서 일을 시작했어요. 그래서,

허성우 : 옷 공장에?

황보영 : 네, 와이셔츠 만드는 공장에 가서 일을 하면서 그때 엄마 따라다니면서 일을 하면서 처음으로 제가 이름으로 된 통장 만들고 돈을 모으는 재미를 처음 가졌던 것 같아요.

허성우 : 북한에서는 그런 것이 없지 않습니까?

황보영 : 그렇죠. 그 때는 또 운동만 하다 보니까 전혀 일이라는 것을 해본 적도 없고 제 통장이란 것도 없었어요. 여기 와서 처음으로 그때 99년에 일을 다니면서 제 통장을 만들고 돈을 모으는데 그 모으는 재미가 쏠쏠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때부터 돈을 악착같이 모았던 것 같아요. 잘 쓰지도 않고 그리고 제가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따서 치과에서도 일을 했었고, 그러면서 돈을 알뜰하게 모았던 것을 지금 은퇴하고 나서부터는 살짝살짝 까먹기도 하고,

허성우 : 계속 쓰고 계시는 모양이군요?

황보영 : 그리고 심판 활동도 하고 이러면서 그 쪽으로 수입을 벌었고, 지금 유소년 팀에서도,

허성우 : 약간의 보조금이 나오는군요?

황보영 : 그렇죠. 알바비 정도는 나오니까.

허성우 : 그리고 실제로 아까 통장을 생애 최초로 만들어서 돈 모으는 쏠쏠한 재미를 보셨다는데, 북한에서는 아이스하키 생활을 하게 되면 전적으로 당이나 북한 정부에서, 정부는 아닙니다만, 북한 노동당에서 전적으로 다 지원해서 특별히 생활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죠?

황보영 : 네, 거기는 장비부터 해서 일체 생활용품까지도, 빨랫비누까지도 다 지급을 해줬어서요, 크게 개인적으로 돈 들어가는 일은 없었던 것 같아요.

허성우 : 그런데 안타깝게도 최근에 북한 여자 아이스하키팀 단일팀과 관련해서 논란이 계속 이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이제 올림픽이 19일도 조금 남지 않았는데. 실제로 단일팀이 만들어지는 것으로 거의 다 확정이 됐지 않습니까? 그래서 지금 국내 여론이 굉장히 찬반 논란이 많은데, 이것이 반대 논란이 훨씬 더 많아요. 지금 실제로 현장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시면서 이런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황보영 : 저도 절대 반대를 하고 있어요. 

허성우 : 절대 반대를 한다?

황보영 : 예, 절대 반대를 하고 있는데, 일단은 지금까지 어쨌든 4년 동안 선수들이, 4년이 아니라 그 전부터 준비를 해왔던 것인데, 평창이 확정됨으로 인해서 정말 피나는 노력을 했어요, 선수들이. 현장에서 같이 뛰지는 않았어도 어쨌든 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데 그 선수들의 노고에 지금 찬물을 끼얹는 것 같아요. 아직 올림픽 무대가 시작도 안했는데, 시작도 하기 전에 벌써부터 찬물을 끼얹어가지고 선수들도 통화해보면, 후배들하고 통화해보면 되게 속상해하고, 그런 것을 보면서 저도 막 화가 나는 거예요.

허성우 : 특히 선수들하고 대화를 해보면 어떤 부분이 제일 화가 난다고 합니까?

황보영 : 어린 선수들인데도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본인들 정치하는 기간에 이런 것으로 해서 역사를 만들려고 이런 것을 한다, 제발 좀 우리한테 이런 것을 안 했으면 좋겠다, 왜 하필이면 우리냐.

허성우 : 아 그래서 정치논리를 들이대지 말라는 거지요?

황보영 : 그렇죠. 그러면서 스포츠는 그냥 건전하게 스포츠로 봐줘야 되는데 그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용하니까 그런 것이 너무 화가 나는 거예요. 지금 마무리 단계고 마무리 잘 해야 되고, 또 컨디션 조절도 해야 되는 지금 이 시기에 이런 것이 딱 터지다 보니까 정신적으로 너무 스트레스 많이 받더라고요.

허성우 : 심리적으로 굉장히 흔들리겠네요? 예를 들어 총 선수 엔트리가 23명으로 알고 있거든요?

황보영 : 네, 엔트리는 나왔죠.

허성우 : 엔트리 중에서 북한에서 몇 명이 오게 되면, 6명인가 오게 되면, 실제로 팀이라는 것은 팀워크가 중요한데, 그 팀워크가 과연 되겠습니까?

황보영 : 힘들죠. 지금 저희가 보통 운동할 때 보면 조가 있어요. 1조, 2조, 3조 이렇게 조가 있잖아요? 그런데 그것이 물론 제일 잘하는 사람이 1조가 될 수도 있고, 조금 떨어지는 선수들이 그 다음 순위가 되는데 이 선수들하고 조를 바꿔놓게 되면 또 달라져요.

허성우 : 구체적으로 어떻게 달라집니까? 

황보영 : 예를 들어 1조 선수랑 3조 선수랑 똑같은 포메이션의 연습을 했는데도 자리를 바꿔놓게 되면 좀 버벅댄다든지, 똑같은 포지션인데도 그렇게 되요. 예를 들어 스피드를 못 맞춘다든지, 패스 강도 같은 것을 못 맞춘다든지, 뛰는 타이밍이 늦다든지, 그런 것으로 해서 되게 미세하게 차이가 크거든요? 안 나는 것 같아도 스타트 한 발이 늦는 것이랑 패스 리시브를 못해서 놓쳐가지고 흐름을 끊기게 하는 것이랑 정말 큰 차이가 나거든요. 그렇게 되는 상태인데 북한 선수들, 아무리 조직력을 맞춰보지 않았던 선수들이 오게 되면 거의 뭐 5대4 파워플레이 해야 된다고 보죠.

허성우 : 그러면 예를 들어서 1팀, 2팀, 3팀이면 3팀을 아예 북한 선수들로 구성하는 방법은 없습니까?

황보영 : 일단 지금 한 세 명에서 여섯 명을 생각하고 있다 그러더라고요? 북한에서 보내는 선수가? 그런데 한 조를 해서 집어넣기에는 좀 어려울 것 같아요.

허성우 : 어떤 측면에서요?

황보영 : 왜냐하면 북한이 예전 같았으면, 저희보다 실력이 조금 더 좋았었으니까 괜찮은데, 지금은 이제 몇 년 전부터 저희한테 지고 있고, 작년 4월에도 3대 0으로 졌거든요, 강릉에서. 그런 것을 보면 지금 전력이 많이 떨어졌더라고요. 저도 현장에 가서 봤지만 어떻게 북한이 이렇게까지 됐지? 이런 생각 들면서 안타깝고 속상하더라고요. 너무 예전에는 저희가 북한 선수들 쫓아가기가 힘들었어요. 

허성우 : 과거에는?

황보영 : 네, 그냥 계속 꽁무니만 따라다니고 진짜 무엇 하나 제대로 된 플레이를 할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작년 4월에 강릉 가서 보니까 북한 선수들이 그 꼴인 거예요

허성우 : 완전히 역전이 됐네요?

황보영 : 네, 한국 선수들 쫓아가기 힘들고, 체력들도 안 되가지고 예전에 2003년의 저희를 보는 느낌?

허성우 : 그러면 지금 우리 선수들도 상당히 기술력도 뛰어나다는 거네요?

황보영 : 많이 올라왔죠. 많이 올라왔더라고요.

허성우 : 그 팀들이 많이 올라오고 상당한 자긍심을 갖고 우리도 한 번 해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인데 지금 북한 선수들이 갑자기 끼어들면 누군가는 또 빠져야 되니까 그 선수들은 빠져나감으로 인해서 그 동안 팀워크를 맞췄던 선수들끼리 불협화음도 생길 수도 있고,

황보영 : 빠져나가지는 않을 것 같아요. 지금 엔트리가 23명이 정해졌는데, 예를 들어서 북한 선수들이 세 명이던 여섯 명이던 투입이 된다고 하면 그냥 대회 엔트리만 늘리는 거예요. 그래서 세 명이 포함된다고 하면 스물여섯 명이 되는 것이고. 여태껏 사상 없던 일이 생기는 것이죠. 그것 때문에 어제 회의를 하게 된 것이고요.

허성우 : 제가 말씀드리는 빠져나간다는 것은 무엇이냐면 스물여섯 명이, 세 명이 온다면 스물여섯 명이 된다고 하더라도 플레이할 적에는 우리 선수가 들어가야 할 자리에 북한 선수들이 들어가게 되면 나머지 세 명은 어쩌면 경기도 한 번도 못 뛰어보고 평창 올림픽을 마쳐야하는 그런 경우가 있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황보영 : 그렇죠. 지금 우리가 예선전이 세 게임인데, 두 게임은 조금 해볼만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게임이 있어요. 스위스랑 일본은 좀 워낙 연습게임이든 본 대회든, 아시안게임이든 스코어가 차이가 많이 안 났었어요. 한두 골 정도 이렇게밖에 안 났어서. 지금 스위스랑 일본은 해볼만하다고 하고 있는 상태인데. 어쨌든 저희 선수들 스물세 명이 다 출전한다고 해도 얼음판에 실질적으로 투입이 못 되는 선수도 생겨요. 스물세 명을 다 못 돌리거든요. 그런데 북한 선수들이 거기에 한 명이 됐든 여섯 명이 됐든 끼게 되면 분명히 북한 선수 반, 저희 선수 몇 명은 장비를 못 입고 아예 벤치조차도 못 서게 되는 선수들이 생기는 거예요.

허성우 : 예를 들어서, 결국 사과는 했습니다만, 이낙연 총리의 발언이 문제가 됐지 않습니까? 우리가 북한의 세계랭킹과는 먼 22위와 25위라면 북한 측의 선수보강이 오히려 전력에 보탬이 될 것이다, 이랬는데. 현장에서 보면 실제로 북한 선수들이 체력 면에서 우리를 따라올 수 있다고 보십니까?

황보영 : 아니요. 체력도 안 되고, 기술적인 면도 그렇고, 지금 저희 같은 경우는 감독을 외국인 감독을 영입을 해서 활동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다보니까 유럽 하키를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북한 같은 경우는 아직까지 옛날 하키, 한 20년 전의 그런 하키를 아직까지 하고 있다 보니까 저희랑 전력적으로도 많이 차이가 나고 그러다보니까 저희한테 도움은 전혀 안되고요 저희가 지금 평창인데, 우리나라 평창에서 하고 있는데, 태극기를 들고 들어가야 되는데 지금 한반도기를 들고 들어가야 될 수도 있고, 그러면 결국은 이것이 우리의 축제가 아니라 그냥 한반도의 축제인거예요. 힘들게 평창 올림픽이라는 것을 힘들게 따내놓고는 북한 좋은 일을 시키는 것 같아요.

허성우 : 어떤 면에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황보영 : 솔직히 이야기하면 저희 아이스하키 같은 경우는 남자나 여자나 국내가 아니었으면 출전을 못하는 수준이에요, 솔직히.

허성우 : 실제로 세계적으로 놓고 보면 수준은 아직까지는 떨어진다?

황보영 : 낮죠. 그래서 정말 자기네 실력으로 올림픽에 나갈 수 있는 정도가 아직은 안돼요. 그런데 어쨌든 국내에서 하고 있고, 아이스하키 협회 회장님께서 되게 많은 노력을 해주시고 투자를 해주시다 보니까 어쨌든 자동출전권을 따냈어요. 이것이 없어진지 오래됐던 것인데. 또 자동출전권을 따내서 남녀 다 출전을 하는데. 우리가 이렇게 출전하는 것도 힘들게 하고 있는데 북한은 모든 종목에서 솔직히 실력으로 나올 수 있는 종목이 아무것도 없잖아요?

허성우 : 숟가락 하나 더 얹는 거네요?

황보영 : 하나 정도가 아니잖아요. 지금 장애인 패럴림픽도 파견하겠다, 이렇게 나오니까 지금 숟가락을 몇 개를 얹는지를 모를 정도에요. 응원단을 자꾸 내세우는데 이것은 그냥 스포츠적이지 놀이 행사장이 아니거든요? 거기에 그 응원단만 너무 몇 백 명 내세우고 이러는데 그것은 너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허성우 : 지금 응원단을 이야기하셨는데, 우리가 말하는, 국내에서 말하는 스포츠 서포트하는 분들, 응원단들하고 북한의 응원단들하고 성격이 다르죠?

황보영 : 많이 다르죠. 거긴 정말 선전용이잖아요. 선전용, 홍보용 이런 것이잖아요. 그런데 한 번 딱 재미를 들리고, 우리나라에서 너무 반응이 좋다보니까, 그 응원단에 대한 반응이 좋다보니까 그것을 많이 이용하고 강조하는 것 같아요. 선수들보다는.

허성우 : 우리 대표팀이 아까 말씀하신 대로 자력으로는 사실 올림픽을 못가지만 어쨌든 자동 출전권을 땄기 때문에, 이 올림픽이라는 무대에 선다는 것은 참 자랑스럽잖아요? 성적과 관계없이 일생일대의 영광인데, 그 영광을 뺏고 하면 결국은 그것이 순수한 올림픽 정신은 아니죠?

황보영 : 그렇죠. 스포츠 정신도 아니고 이것은 진짜 그 동안 열심히 운동한 선수들의 피까지는 아니어도 땀과 노력, 열정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고, 결국은 이것은 올림픽을 보면 어찌됐든 저희도 여자들 같은 경우는 1승도 솔직히 어렵거든요?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팀들이기 때문에. 그런데 가능성을 보고 하고 있는데 이렇게 찬물을 끼얹으면 1승은커녕 좀 더 좋은 성적을 거둘래야 거둘 수가 없을 것 같아요.

허성우 : 혹시 북한 선수들이 누가 올지 대충 짐작이 갑니까?

황보영 : 아니요. 전혀. 제가 작년 4월에 세계선수권대회를 강릉에서 할 때 명단을 받아봤는데 다 어린 친구들이고, 2000년생이고 이러다보니까 나이들도 너무 어리고, 세대교체가 다 돼가지고 전혀 모르겠더라고요. 누가 누군지도 한 선수도 모르겠고. 그리고 실력도 별 차이가 없었어요.

허성우 : 제가 이 말씀을 왜 여쭤 보냐면요, 황보영 감독님이 2003년에 일본 아오모리에서 열린 아시안게임에서 북한 선수들과 재회를 한 것으로 알고 있거든요? 그때 북한 선수들이 황보영 감독님을 보고는 갑자기 냉랭해졌다는데, 그때 분위기 한 번 설명해주시죠.

황보영 : 그때 분위기는 말로 하면 또 생각이 나고 좀 그런데. 저는 되게 설렜어요. 7년 만에 본다는 생각에. 그 전년도 한 11월 이때부터 너무 설렌 거예요. 나중에 명단이 딱 나오고 보니까 제 친구들도 있고, 같이 중고등학교 다니면서 옆자리 앉았던 친구도 있고, 친하게 지냈던 선배도 있고 후배도 있고 다 있는 거예요, 명단에. 하다못해 코치까지도 저랑 친했던 코치님도 계신 거예요. 되게 설레어 가지고 선물을 무엇을 해다 줄까, 또 생일인 친구가 있어가지고 선물도 막 챙기고 했었어요. 그랬는데 저희가 먼저 도착했죠, 일본에. 그리고 이틀 있다가 북한이 왔는데 몇 시에 도착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부터 잠이 안 오는 거예요. 그래서 밤새 기다렸어요.

허성우 : 옛날 아는, 같이 훈련했던 동료들이니까?

황보영 : 그렇죠. 설레 가지고 만나면 무슨 말을 먼저 해야 될까, 얘네들이 날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런 생각에 설레 가지고 계속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던 거예요. 호텔에서. 그랬는데 버스가 딱 왔어요. 도착해서 내리는데 모자도 쓰고 하니까, 밤이고, 그래서 못 알아봤어요. 일단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밑에까지 내려갔어요. 1층까지 내려갔어요. 그런데 너무 사람들이 많은 거예요. 하키만 온 것이 아니니까. 그래서 일단은 피하자 싶어서 거기서는 피했는데. 그 다음날 북한 선수들이 저를 못 알아봤어요. 스쳐 지나가는데 다른 친구로 오해를 한 거예요. 저인줄 알고. 그런데 저는 그때 머리도 생머리로 엉덩이까지 기르고 염색도 좀 밝은 갈색으로 하고 하다 보니까 당연히 저라고 생각을 못 했던 거예요. 다른 친구를 저로 오해를 했더라고요, 보니까. 그런데 나중에 저라는 것을 알고 나서부터는 반응이 너무 냉랭하다 못해 지나갈 때마다 나라의 배신자는 인간도 아니다.

허성우 : 대놓고 이야기를 했어요?

황보영 : 네, 그렇게 대놓고 이야기하고 가고. 식당에서 밥 먹을 때 마주쳤어요. 밥이 잘 넘어 가냐, 이렇게 시비 툭툭 걸고 가고. 되게 그러더라고요.

허성우 : 그러면 그때 반응을 어떻게 하셨어요? 그 당시에? 무언가 한 마디 했을 것 아니에요?

황보영 : 못 했어요.

허성우 : 못 했어요? 가만히 있었던 거예요? 여러 사람이 그러니까 주눅이 든 거예요?

황보영 : 그렇죠. 저희는 그렇게 팀이라도 전체 다 움직이거나 이러지는 않거든요? 그런데 북한은 온천가도 열일곱 명이 우르르 다 들어오고 식당가도 물론,

허성우 : 단체행동을 하는군요?

황보영 : 네, 그냥 다 단체로 움직이는 거예요. 한 번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저희가 세 명이고 북한 선수가 한 명이 탄 거예요. 그런데 후배에요. 그래서 옆에서 저희 후배들이 옆구리 툭툭 찌르면서 말 좀 시켜보라고 하는 거예요. 두근두근대고 무슨 말을 시켜야 될지를 모르겠는 거예요. 일단은 그 친구가 문신을 했는데 완전 옛날 중국에서 했던 파란색,

허성우 : 문신을 해요?

황보영 : 눈썹이랑 아이라인을,

허성우 : 북한에서 그렇게,

황보영 : 원래는 없었죠. 그런데 그것을 했길래 저도 그것을 보고 신기했던 거예요. 완전 옛날에 우리나라도 오래 전에 했던 파란색깔 있어요. 그런 초록빛 나는 그런 염색으로 문신을,

허성우 : 쉽게 말하면 조금 촌스럽게 했군요? 우리 시각에서 볼 때는.

황보영 : 네, 눈썹도 두껍게 이상하게 하고 아이라인도 하고 막 이렇게 있는 거예요. 제가 거기서 순간 그것을 보고 웃겨가지고 이야기를 한 거예요. 어디서 넌 그런 문신을 했냐고. 그랬더니 얘가 저를 쳐다보는데, 저희는 제 옆으로 이만한 덩치 큰 친구가 두 명이 있으니까 자기도 살짝 그랬는지 대꾸를 못하더라고요. 이것저것 물어봤어요. 잘 지내냐, 어쩌고저쩌고 막 물어봤더니. 그게 또 엘리베이터에서 잠깐이니까 아무 말도 안 하고 가만히 있더라고요. 그런데 문이 딱 열리고 내리면서 얘가 먼저, 북한이 3, 4층 쓰고 저희가 5, 6층 썼으니까. 3층에서 내리면서 딱 돌아서면서 한 마디 하더라고요. 좋아하긴 아직 이를 텐데? 이러는 거예요. 그러고 엘리베이터 문이 딱 닫혔어요.

허성우 : 그것은 무슨 의미죠?

황보영 : 그래서 후배들이 언니 저게 무슨 말이야? 좋아하기 이를 텐데, 라니? 그래서 뭐겠냐, 내일 북한전인데, 죽었다 이거지. 두고보자 이런 거지, 뭐겠어, 이랬어요. 그래서 감독님한테 그 이야기를 하고 감독님은 게임을 뛰게 하지 말아야 겠다, 하는 생각도 하고 계셨어요. 괜히 사고날까봐. 그런데 또 첫 남북 대결이다 보니까 이슈가 엄청 됐었어요, 그때. 우리나라도 그렇고 일본도 그렇고 엄청나게 이슈가 돼가지고, 제가 안 나갈수가 없는 거예요. 

허성우 : 꼭 이겨야 되니까?

황보영 : 그때도 정치적으로 이용을 한 것이, 위에서는 설마 죽기야 하겠어? 얼음판에서? 죽더라도 내보내, 이런 식인 거예요. 경기를.

허성우 : 그것은 위에서 이야기 한 거예요? 그 당시?

황보영 : 예, 위에서. 감독님은 이제 선수를 보호해야 되니까 안 뛰게 했으면 좋겠다. 얘네가 벌써 이런 경고도 하고 이러는데 좀 안 뛰게 했으면 좋겠다, 하는데 위에서는 이것 때문에 얘를 데리고 왔는데 설마 죽이기라도 하겠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는데?

허성우 : 선수 보호 이런 개념은 없고 오로지 정치 논리로만?

황보영 : 그렇죠. 뛰게 해라, 무조건. 그래서 결국은 나가서 한 5분 만에 강한 슛을 맞았어요. 발을. 강한 슛을 맞고 거기서 거의 기어서 나와가지고 벤치에 앉아서 대성통곡을 했어요.

허성우 : 그러면 의도적으로 그 당시에 그렇게 한 거예요?

황보영 : 네, 저를 앞에다 놓고 쐈으니까. 그것도 저랑 같이 7년 동안 동고동락했던 언니가 그러는 거예요. 딱 나와 가지고 대성통곡을 하고 울었어요. 그것이 아프다기 보다는 너무 마음이 아프고 서러워서, 상처가 아픈 것이 아니라, 너무 마음이 안 좋은 거예요. 거기에 앉아서 한참을 게임을 못 뛰고 울었어요.

허성우 : 그렇군요. 그때도 사실 정치 논리가 그 당시도 있었는데 감독님은 선수 보호 차원에서 이것은 결국은 부상 입을 확률이 높다고 했는데 결국은 그렇게 돼 버렸네요? 그 이후에, 그날 이후에 혹시 북한 선수들을 만난 적은 없습니까?

황보영 : 만났죠. 온천에서도 알몸으로도 다 만나고.

허성우 : 아무 소리 안했어요?

황보영 : 그렇죠. 눈치만 보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거기 친구가 2월 초에 생일인 친구가 있었어요. 저랑 같이 고등학교 다녔던 친구가. 

허성우 : 북한 선수 중에?

황보영 : 제가 선물을 케이크도 좀 사고 한국에서 선물도 몇 개 챙겨갔는데 솔직히 선물은 못 줬어요. 그런데 케이크는 제가 주면 또 안 받을 것 같아서 호텔 식당 지배인한테 주고 북한 선수들 몇 시에 운동 끝나고 들어오니까 이걸로 생일파티 좀 해줘라, 호텔에서 해주는 것처럼. 그렇게 해서 케이크는.

허성우 : 배려심이 높았네요 그때.

황보영 : 안 그러면, 제가 준다고 그러면 그 케이크 분명히 버렸을 거예요.

허성우 : 그래서 받아갔대요?

황보영 : 거기서 파티 해가지고 촛불 끄고 먹었다 하더라고요.

허성우 : 참 재미있는 이야기 들었네요. 그런데 이번에 또 북한 선수들이 오면 선수들은 세 명에서 여섯 명이 온다 하더라도 따라오는 감독, 코치, 감시조 이래서 한 2~30명이 올 것 아니에요? 그 중에 아는 사람이 있을 것 같은데?

황보영 : 글쎄요. 만약에 정말 단일팀이 구성 되서 게임을 뛴다고 그러면 저도 현장에 아마 가서 볼 것 같아요. 현장에 가서 볼 것 같은데 제가 있었을 때의 사람들은 없을 것 같아요. 요즘에 다 젊게 가다 보니까.

허성우 : 감독님은 북한에 이어서 한국에서도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을 맡은 적이 있죠?

황보영 : 네.

허성우 : 탈북 후 처음으로 국가대표 선발될 때, 그 당시의 기분은 좀 어땠어요?

황보영 : 국가대표에 선발되지는 않았고요, 저로 인해서 국가대표가 만들어졌어요.

허성우 : 그래도 어쨌든 팀이 만들어져서 대한민국 최초의 팀이 만들어진 겁니까?

황보영 : 최초가 아니고요. 99년에 강원도에서 아시안게임을 했었더라고요? 그때 급조로 스피드, 피겨, 쇼트트랙, 이런 데서 은퇴한 사람들을 해가지고 아이스하키 팀을 만들어가지고 99년 아시안게임을 나갔다 왔어요. 완전 대패를 하고 들어온 것이죠. 그리고 없앴어요. 그때 당시에 그 팀을 만들 때 회장으로 있던 분이 실업팀도 만들어 주겠다, 대학도 보내주겠다, 이랬는데 결국 입 싹 닫고 말았던 것이죠.

허성우 : 왜 입 싹 닫았죠?

황보영 : 창피하게 그냥 어쨌든 국내에서 하는 것이니까 무조건 종목별로 다 나가라 해서 급조로 만들어서 

허성우 : 급조를 했구나.

황보영 : 만들어서 내보냈는데 별로 이것을 키우고 싶은 생각이 없었던 거예요. 99년에 왔을 때 팀이 없었어요. 그래서 11월 즈음에 신승환 감독님이 그때 계셨는데, 그 분이 연락이 왔고 만나가지고 여자팀이 아니라 남자 중등부 친구들이 운동하는데 여자 선수들 몇 명 껴가지고 같이 운동을 한 거예요. 목동에서. 너무 재미없더라고요. 이게 무슨 아이스하키인지도 모르겠고, 얼음판에서 졸음이 오고 막, 너무 재미없었는데 2000년에 어떻게 해 가지고 다시 으쌰으쌰 해 가지고 선수들 모으고 해서 다시 만들었죠. 국가대표팀을.

허성우 : 아이스하키 팀이 사실은 비인기 종목이잖아요? 북한에서도 비인기 종목 아닙니까?

황보영 : 북한은 인기 종목, 비인기 종목 이런 것이 딱히 없어요. 그런 것을 구분을 안 지어요.

허성우 : 그러면 경기할 때는 전적으로 당에서 사람 동원해서 가고 그렇게 합니까?

황보영 : 그렇죠. 예전에 제가 운동할 시기에는 인기가 좀 있었어요.

허성우 : 그 인기가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를 이야기합니까? 우리하고 비교를 해보시죠.

황보영 : 거기는 일단 하고자 하는 사람이 많고.

허성우 :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황보영 : 그리고 저희가 실내빙상장이 없다 보니까 야외에서 주로 겨울에만 아이스하키를 할 수 있어요.

허성우 : 겨울에 실제로 할 수 있는 것이 얼음과 관련된 것 밖에 없잖아요?

황보영 : 그렇죠. 실외다 보니까 얼음이 얼어야만 펜스를 운동장에다가 쳐놓고 물 뿌려가지고 만들어서 하거든요? 저희끼리 운동하거나 경기하거나 이럴 때면 관중들이 제법 많이, 그 추운데, 밖에서 다 서서 구경하고 있고.

허성우 : 아이스하키라는 것이 비인기 종목이지만 돈은 많이 들잖아요? 장비나 이런 것들이 상당히 돈이 많이 들지 않아요?

황보영 : 북한에 있을 때는 돈 걱정을 해본 적이 없어요. 장비라는 것을 저희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지원을 해줬기 때문에. 이 장비를 사야 된다, 만약에 헤졌다, 그러면 한국에서는 빵꾸 났다, 이러면 버리거나 새 글러브 껴서 하고 이러는데, 거기는 빵꾸 났다, 그러면 어 빵꾸 났네, 거기다 덧천 대 가지고 꿰매면 되네, 이런 식으로 해가지고 그렇게 사용을 했지,

허성우 : 그러면 거기 쓰는 장비들은 북한에서 직접 제작한 것은 아닐 것 아니에요?

황보영 : 아니죠. 러시아에서 그때는 많이 들여왔었어요.

허성우 : 러시아에서. 그렇구나. 그러면 러시아 장비를 쓰게 되면 체격 이런 것이 잘 맞지 않을 텐데, 어떻습니까?

황보영 : 사이즈 대로 갖고 와서 장비가 저한테 맞춰서 오는 것이 아니라 들어온 장비 중에 사이즈가 맞는 것이 있으면 제 차례가 되는 것이고, 안 맞으면 제 차례가 안 되는 것이고.

허성우 : 아무리 운동을 잘해도요? 그러면 사이즈 맞는 사람만 순서대로 맞추는 거예요?

황보영 : 그러니까 새 스케이트가 들어왔는데 발이 작은 사이즈에요. 그런데 그 발에 맞는 사람이 그 새 스케이트 임자가 되는 거예요. 내가 잘해서 새 스케이트를 신는 것이 아니라. 그런 식으로.

허성우 : 쉽게 말하면 신발에 발이 맞으면 자기 것이 되는 거네요? 그런 상태에서 북한이 경기력이 향상된다는 것이 상상이 잘 가지 않아요. 어떻게 해서 우리보다 훨씬 잘한다고 그 당시에 그렇게 됐을까요?

황보영 : 그때 당시에는, 일단은 선수층이 좀 두꺼웠죠, 우리나라 보다는. 여자 같은 경우도 4개 팀이 있어요. 실업팀처럼 되어 있는 도 대표가 3팀이 있고 대학교 팀이 1팀이 있거든요. 국가대표를 뽑을 때는 그 팀에서 선발을 해요. 잘 하는 사람들을. 그래서 또 키우고 대회 갔다 오고 나면 해체하고, 다음에 그 속에서 또 선발하고, 이러다 보니까 경쟁력이 계속 생기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 같은 경우는, 한국은 처음 아이스하키 팀 만들었을 때 정말 어중이떠중이, 개나 소나 다 했어요. 그때는 진짜 그런 표현도 하는데, 어중이떠중이, 개나 소나 다했었어요. 그냥 걸음마 아장아장 걸으면 태극마크 달고 대회 나가고. 저걸 누가 국가대표라고 하겠어. 그러니까 저희가 표현하는 것이 개나 소나 국가대표 되네, 이런 식이었던 것이죠.

허성우 : 그래도 그런 환경 속에서도 한국 국가대표로 2005년에 우리가 대표팀을 이루고 세계여자선수권대회에서 여자 4부 리그에서 우승한 경험이 있죠?

황보영 : 있죠.

허성우 : 그때 어땠습니까? 그 개나 소나 하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끌고 가서 4부 리그 첫 우승을 했는데, 그 당시 상황을 좀 설명 해보시죠.

황보영 : 축구나 다른 종목은 시작하기 전에 양국 국가를 듣고 시작하잖아요? 그런데 아이스하키는 끝난 다음에 이긴 팀 국가를 들어요. 그래서 2003년, 2004년 다 외국 나가서 대회를 하면 다 남의 나라 국가만 들었던 거예요. 그런데 2005년 뉴질랜드에서는 처음에 아이슬란드랑 해서 8대 2로 이겼었거든요? 그러고 나서 애국가를 듣는데 다들 눈물이, 우리는 진짜 은퇴할 때까지 애국가를 얼음판에서 못 들어볼 줄 알았는데, 그 정도로 실력이 너무 낮다 보니까 정말 애국가를 못들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딱 듣고 나니까 눈물이 막 나고 감독, 코치님도 벤치에서 부둥켜안고 좋아하고 이러는 거예요. 그런데 저희가 전승을 하다 보니까 마지막 폐막식 때 까지도 애국가를 들은 거예요.

허성우 : 전승을 했어요? 그 당시에?

황보영 : 네, 그때 전승을 해가지고. 그래서 폐막식 때도 애국가를 듣고 이러다 보니까 정말 이제 은퇴를 해도 원이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리고 뉴질랜드 쪽에는 이민 오신 분들이 많아서,

허성우 : 교포들이 있죠?

황보영 : 교포들이 많아서 태극기 들고, 꽹과리 들고, 북 들고 와서 한 백여 명이 와가지고 응원을 하는데 너무 힘이 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저희들끼리 으쌰으쌰 해가지고 게임을 되게 즐겁게, 신나게 뛰었던 것 같아요.

허성우 : 이제 이번 평창 올림픽 단일팀에 황보영 감독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 이것을?

황보영 : 일단은 남북공동입장은 하더라도 단일팀은 안했으면 좋겠고, 단일팀은 좀 안 해서 우리 선수들이 마음 편하게, 지금 한 십여 일 남았는데 그 기간만이라도 마음을 추슬러 가지고 선수들이 그동안 노력했던 것에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줬으면 좋겠고요. 그리고 선수들은 설령 단일팀이 되더라도 여기에 동요하지 말고 그냥 자기네들 페이스 그대로 가지고, 컨디션 조절해서 여태껏 했던 것이 아깝지 않게 기량 발휘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허성우 : 아이스하키 팀이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고 있다, 이런 생각은 안 듭니까?

황보영 :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고 있죠. 지금. 어쨌든 누가 됐든 간에 지금 있는 정부에서는 이것을 또 하나의 역사를, 지금 단일팀이라는 것을 해서 역사를 쓰려고 하는 거잖아요?

허성우 : 아이스하키 팀이 희생된다고 보는 겁니까?

황보영 : 희생된 것이죠. 결국은.

허성우 : 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뭡니까? 

황보영 : 꼭 이루고 싶은 꿈은 이제는 별로 없고요. 그냥 여자 아이스하키 팀을 위해서 여태껏 지금 제가 아이스하키를 처음 시작해서 지금까지 한 27년 됐더라고요. 27년 동안 얼음판에 있으면서 많은 일들이 있었고, 북한에서도 했었고 여기서도 했었고 하지만, 지금까지 어쨌든 여자 아이스하키가 한국에서 이 정도 까지 올라온 것은, 물론 저뿐만 아니라 저랑 같이 동고동락했던 선후배들이 고생을 해서 밑바닥을 깔아놨기 때문에 지금까지 왔고 올림픽까지 나가게 됐는데, 앞으로도 더 여자들이 더 활발하게 더 많은 팀들이 생기고 더 많이 남자들처럼 양성을 시켜서 여자들도 중고등학교, 대학교 팀도 생겼으면 좋겠고. 그래서 나중에 은퇴하고 은퇴할 예정인 선수들도 지도자로서의 길도 갔으면 좋겠고. 여자 아이스하키가 좀 많이 발전이 더 됐으면 좋겠어요.

허성우 : 말씀을 들어보니까 아이스하키를 위해 태어난 것 같네요. 그래서 아마 아이스하키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이유를 저는 알겠습니다. 하여튼 오늘 정말 바쁜 시간을 내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황보영 : 감사합니다.

ㅁ 프로그램 <BBS 허성우의 뉴스와 사람들> 2018.1.21 18시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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