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구치소는 이미 작은 청와대

'나가는 곳'을 바라보는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오늘은 레이저를 쏠까?” 우병우 전 수석이 소환되는 날이면 취재진 사이엔 늘 이런 말이 나왔다. ‘우병우 레이저’는 기자생활을 하면서 꼭 한 번 맞아보고 싶은 것이기도 했다. ‘국정농단’의 마지막 퍼즐이라고 불리면서도, 제대로 된 해명이나 성명조차 없이 뻣뻣한 모습으로 일관해온 그에게 누구나 ‘불편한 질문’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레이저는 오히려 포상에 가깝다. 지난해 말부터 올 상반기까지는 몇몇 기자들이 그 시혜(?)를 입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상대를 쏘아보던 날카로운 눈빛은 사라졌고 최근에는 “숙명이라면 받아들이겠다”는 지친듯한 워딩이 그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지난주 세 번째 구속영장 실질심사 당일, 마지막으로 눈에 담은 우 전 수석의 모습이 떠오른다. 어깨로 취재진의 마이크를 밀고 법정 출입구로 향하던 그는 “불법사찰이 민정수석의 통상업무에 속하느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굳이 고개를 뒤돌려 “예”라고 답하고 들어갔다. 영장심사를 마치고 나와서 차에 오르기까지의 짧은 순간에는 옆에 서있던 검찰 관계자가 으례 피의자를 인치하듯 팔짱을 끼려하자 기분 나쁜 듯이 저지했다. 코너에 몰렸지만 아직은 ‘숙명’이 자신의 편이라고 믿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법원은 그의 구속을 결정했다. “피의자 우병우, 혐의사실이 소명되고…”라고 적힌 문자메시지가 핸드폰에 들어왔다. 검찰로선 세번 힘줘서 겨우 내려가는 숙변을 받아들이는 경험이었을 것이다.

  우 전 수석의 구속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구속의 만능열쇠’ 바로 국정원이다. 그동안 부실수사, 황제소환 논란 속에서 우 전 수석은 번번이 풀려났지만 ‘국정원’의 등판으로 수사는 대전환기를 맞았다. 국정원 적폐청산TF는 지난 10월 추명호 전 국정원 국장의 비선보고 의혹에 대한 내부 보고서를 검찰에 제출했다. 여기엔 우 전 수석이 자신의 비위 의혹을 감찰하던 이석수 당시 청와대 특별감찰관의 뒷조사에 국정원을 동원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게다가 국정원 관계자들이 우 전 수석의 지시를 받았다는 진술이 더해졌다. 친절한 물증과 정황 앞에서 ‘민정수석 통상업무’라는 방어논리는 박살이 났다. 넥슨 땅 고가매매부터 가족회사 자금 횡령, 코너링이 유달리 좋았던 운전병 아들을 둘러싼 논란, 국정농단 묵인과 국회 청문회에서의 위증… 어떤 것도 잡지 못했던 우 전 수석의 발목은 국정원에서 잡혔다.  

  지금 서울구치소에서는 작은 청와대를 하나 만들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전직 대통령(박근혜)을 비롯한 장관급 실장(김기춘, 이병기)과 차관급 수석(우병우, 안종범)들이 포진해있고, 비서관(이재만, 안봉근)은 물론 아래의 행정관(허현준)이 받들며, 얼마 전까진 이들을 지키는 경호관(이영선)도 자리했었다. 몇몇은 참회하고 법 앞에 머리를 숙였다. 몇몇은 아직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몇몇은 부끄러움 없이 이를 고까운 ‘숙명’이라 표한다. 숙명은 본인이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을 뜻한다. 반성과 납득은 않지만 기왕 이리 된 것 수긍은 하겠단 것이다. 잘못은 안했지만 벌은 받겠단 것이다. 스스로 법정에 선 이유를 받아들일 수 없을테니 아마도 그의 레이저는 법 앞에서 또 한 번 번뜩일 것이다. 하지만 이 나라의 사법정신이 살아있다면, 정의의 여신은 이미 눈을 감았으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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