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이 우리나라를 조세회피처 블랙리스트에 포함시키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로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로는 첫 지정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습니다.

정부의 대응이 안일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는데요.

선임기자의 시선에서 자세히 알아봅니다.

양봉모 선임기자가 연결돼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앵커]

조세회피처, 이런 용어가 굉장히 부도덕하게 들리는데요.

유럽연합에서 우리나라가 포함시켰습니다.

조세회피처가 뭔지 용어부터 정리하고 가죠.

[기자]

조세회피처, 돈은 버는데 그 벌어들인 돈에 대해서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서 세금이 없는 곳으로 돈을 도피시키는 행위, 거칠게 해석하면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하나의 예를 보면, 지난해였죠.

독일 일간지 탐사 저널리스트인 오베르마이어에게 10만 건에 달하는 페이퍼컴퍼니 내부 자료가 전해집니다.

이것이 이른바 ‘파나마 페이퍼스’인데요.

여기에는 러시아 푸틴 대통령, 축구선수 메시 등 조세회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운 명단이 들어 있었습니다.

이중에는 한국인 190명도 포함돼 있었죠.

[앵커]

이번 유럽연합의 조세회피처 발표와는 성격이 다른거죠?

[기자]

다릅니다.

이번에 유럽연합이 지정한 것은 한국이 ‘조세비협조지역’이라는 겁니다.

한국을 포함해 17개 국가 명단을 ‘조세 비협조적 지역 블랙리스트’로 발표한 겁니다.

조세 비협조적 지역은 외국인에 과도한 세제 혜택을 부여해 국제적으로 부당한 조세 경쟁을 유발하는 국가를 뜻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조세회피처'라는 뜻으로 사용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조세회피처는 불법행위와 관련이 있지만 조세 비협조적 지역은 불법과 관련이 없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앵커]

그런데 왜 조세회피처 불랙리스트 라고하죠?

[기자]

언론은 좀 자극적인 걸 좋아하니까요.

‘조세회피처’ 라고 쓰지 않는다가 아니라 ‘조세 비협조적 지역’이지만 ‘조세회피처’ 라고도 쓰인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조세회피처의 블랙리스트로 발표되었다’는 보도가 나간거죠.

[앵커]

일단 어감은 좋지 않습니다.

그런데 앞에서 17개 국가가 지정됐다고 했는데요. 어떤 나라들입니까?

[기자]

한국을 빼고 모두 경제 규모가 작은 나라이거나 자치령인 섬지역입니다.

어디 있는지도 알기 어려운 세인트루시아 같은 나라가 포함됐구요.

미국령 사모아, 바레인, 튀니지 등 경제규모나 인지도 측면에서 매우 낮은 국가들과 함께 우리가 포함된 겁니다.

아시아에서는 몽골 마카오 한국뿐입니다.

어쩌다 우리가 이런 나라 수준으로 전락했는지 매우 안타깝습니다.

[앵커]

우리나라가 정말 조세회피처 블랙리스트에 오를만큼 경제적으로 조세문제에서 수준이 낮다는 건가요?

[기자]

여기에는 논란이 있습니다.

EU 회원국은 물론 회원국과 관련이 있는 국가나 자치령 지역은 리스트에 포함하지 않았습니다.

공정성이 보장되지 않았다는거죠.

지난해 말 EU 경제재무이사회가 일차적으로 92개국을 선정했습니다.

EU 회원국 가운데 네덜란드를 비롯해 룩셈부르크, 아일랜드, 몰타 등이 주된 타깃이 됐습니다.

그런데 리스트를 확정하는 과정에서 일부 EU 회원국들은 자신들과 관련이 있는 자치령 지역은 조세회피처 블랙리스트에서 제외하도록 온갖 압력을 행사했고 결국 유럽연합은 빠지고 제3국만을 상대로 리스트를 작성한 겁니다.

이미 조세회피처로 널리 알려진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의 경우 아예 이번 리스트에서 빠졌고 버뮤다, 케이먼군도 등이 블랙리스트가 아닌 그레이리스트에 포함됐습니다.

EU의 이번 조세회피처 리스트 선정이 공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앵커]

전혀 공정하지 않았다고 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가 블랙리스트에 올랐습니다.

유럽연합에서 내세우고 있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기자]

EU가 문제가 있다고 본 제도는 우리나라의 경제자유구역과 외국인투자지역 등 외국인 투자 세제지원제도, 즉 이 지역에 투자하는 외국 기업에 한해 한시적으로 법인세 등 세금을 감면해주는 제도가 내·외국인을 차별하는 '유해(preferential) 조세제도'에 해당한다는 겁니다.

또 저율과세 또는 무과세, 국내와 국제거래 차별적 조세혜택 제공, 투명성 부족, 정보교환 부족 등 지정 근거로 들었습니다

이런 제도가 조세회피에 활용될 수 있다고 보고, 한국을 '비협조 지역'으로 지정한 겁니다.

[앵커]

정부가 조세회피처 블랙리스트 지정에 대해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죠?

[기자]

정부는 조세주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며 강력 반발했습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블랙리스트 지정이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다"며 "다른 국제 규범이나 기준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기재부는 우리나라의 외국인투자 지원제도는 유해조세제도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OECD가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투명성 부족'에 대해 기재부는 "우리는 광범위한 조세 조약 등을 통해 효과적 정보교환 체제를 구축하고 있으며, 조세행정에서도 높은 투명성을 보장하고 있다"고 반박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기획재정부는 담당 국장을 유럽 현지에 파견하며 사태 수습에 나섰습니다.

[앵커]

정부에서는 괜찮다 별거 아니다. 이런 말을 하고 있지만 국제사회에서 우리 이미지, 또 경제적 타격은 있지 않을까요?

[기자]

당연히 타격이 있을 수 있습니다.

경제개발기구 국가 중 유일하게 우리나라가 포함이 되면서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봐야겠죠.

유럽연합이 이런 블랙리스트를 발표함으로써 우리를 재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정이 됐다는 것만으로도 타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세회피처, 조세비협조적 지역으로 지정이 됐다고 해서 당장 불이익은 없지만 대외 이미지, 투자위축은 우려되는 점입니다.

또한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조세제도가 불투명하다는 인식이 확산될 경우 기업활동도 위축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한국의 경제자유규역이나 외국인투자지역으로 들어가면 세금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역효과’도 있을 수 있다는거죠.

이런 점에서 보면 다 나쁘다고만은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앵커]

정부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이른 시일내에 조세비협조지역 블랙리스트 명단에서 한국이 제외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습니다.

가능할까요?

[기자]

좀 어렵다고 봐야겠죠.

EU가 지적한 게 외국기업 세금감면이잖아요.

그런데 정부가 외국투자기업에 대한 세제를 EU의 입맛대로 다 뜯어고칠 수는 없습니다.

우리나라로서는 외국기업의 투자유치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세금감면 혜택은 불가피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유럽연합이 지적한 부분에 대해 우리나라가 고칠 수 없으니까 이대로 가야되겠죠.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선다고 하더라도 당장 EU가 블랙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앵커]

우리나라가 유럽연합에 의해서 조세비협조적지역으로 지정되는 굴욕을 겪고 있는데요.

선임기자는 이를 어떻게 보십니까?

[기자]

블랙리스트나 그레이리스트에 안들어 갔다면 좋았을텐데 안타깝게도 지정이 됐습니다.

대외신인도에 영향을 미치겠죠.

EU가 지난해 말 우리 정부에 자료 제공을 요구하고 이를 토대로 명단을 압축해 왔는데 정부가 이 과정에서 안이하게 대응한 측면은 없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EU의 결정이 OECD 기준과 다른 국제적 합의에 위배되고, ‘조세주권’ 침해 우려가 있다는 정부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왜냐면 EU가 EU에 가입돼 있는 국가들은 뺐고 불성실한 조사로 무책임한 판정을 했다는 지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EU 탓만 할 일은 아닙니다.

지난해 말 평가자료를 요구했을 때부터 신중하게 대응했어야 했고 외교부라든가 산업통상자원부 등과 공조를 하는 게 옳았을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IMF위기 때부터 본격적으로 외국기업투자유치를 위해 소득세 법인세 등을 감면해 주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우리나라에만 있는 이 제도, 그리고 투자유치 효과도 그리 크지 않은 ‘외국인기업에 대한 세제혜택’을 계속 유지할 것인가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끝>

저작권자 © BBS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