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식 우포자연학교장

● 진행 : 박찬민 기자
● 출연 : 이인식 우포자연학교장

우포도서관

(앵커멘트)네, 찾아가는 라디오 시간입니다. 선생님에서 환경운동가로 30년 동안 활동하고 있는 이인식 우포학교장을 만나 뵙기 위해서 경남 창녕 우포늪에 왔습니다. 2015년 환경운동 공로를 높게 평가받아서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인식 선생님과 함께 있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질문1)우포자연학교장이라는 호칭이 낯설지 않으세요?

-저는 굉장히 낯설죠. 그냥 제도권에서 교육운동하고 교사생활하고 환경운동하고 환경운동가라고 불리다가 교장이라고 스스로 지은 건 아니죠. 우포자연학교를 열고 있으니까 자연봉사교사라고 했는데, 사람들이 그러지 말고 퇴임했는데 나이도 있으니까 교장선생님이라고 하십시요라고 해서 그렇게 됐습니다.

질문2)지금까지 교단에 계셨으면, 어느 학교장을 하고 계셨을 수 있어요?

-저는 퇴임을 했지만, 대부분 동기들은 다 그렇게 거쳤죠.

이인식 우포자연학교장(환경운동가)

질문3)제가 편안하게 우포학교장이라는 호칭과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섞어가면서 하겠습니다. 우선 알리고 소개를 좀 해야 되니까요. 우포자연학교, 도서관과 같이 있는데요. 여기는 어떤 곳입니다?

-제가 우포늪 보존 운동을 한 지는 27년 됐습니다. 1991년도에 낙동강 페놀유출사건 이후에 우포늪이 쓰레기 매립장이 되어있고, 다른 공장이라든지 농업용으로 쓸려고 했을 때 그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 생각돼서 보존운동 시작했습니다. 주민들은 반대가 심했습니다. 97년 보존지역이 될 때까지 주민들 설득하고 아이들 교육하는 과정이었습니다. 해직교사 시절이라 시간이 있었습니다. 어쨌든 그 때 약속한 게 있습니다. 단순히 지키겠다는 것을 떠나서 나도 나이가 들면 여기와서 자연과 더불어 사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생활하면서 자연의 소중함을 가르치겠다고 하는 것이 5년 전에 명예퇴직을 현실이 된 것이죠. 정부가 명퇴를 하면 명퇴금을 줬는데요. 그 돈이 들어간 곳이 바로 여기 도서관 건물이고 자연학교 건물이고 그렇습니다.

질문4) 모습들이 특이했어요. 자연스럽다는 생각을 하게 됐는데요. 구조라든지 디자인은 어떻게 하신 겁니까?

-질문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여러 사람의 네트워크가 있다고 했잖아요? 시골창고를 얻었을 때는 목적이 있었어요. 외국나가서 보면 늪과 관련된 자료가 있는데요. 환경부나 경남에 있습니다. 그런데 한 곳에서 볼 수가 없어요. 자연학교를 열면서 정부기관이나 학교에 카피를 해서 모아서요. 창고 안에다가 빈 공간에 차곡차곡 포스터 등 자료를 모으고 있습니다. 한 세대가 끝나면, 다음 세대가 근거지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자료를 모으고 해서 전국에서 하나쯤은 ‘습지 전문박물관’을 만들려고 합니다.

질문5)디자인 관련 질문을 드렸는데....?

-도서관 만들고, 자연학교 만든다고 하니까요. 페북에서 서울대 서정철 건축과 교수가 보고 디자인을 해주겠다는 겁니다. 시골창고 디자인하기가 힘들거든요. 2박 3일 동안 학생들과 와서 구상을 해서 설치를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건축이 바뀌었어요. 서울대 건축과 교수를 압도한 사연이 있습니다. 우리 동네 초등학교 아이들이 자연학습하러 왔다가요. 아니 형님들 우리가 뛰어노는 장소인데요. 그렇게 하면 어떻게 뛰어놀아요? 이러면서 그러니까, 아이들이 들고와서 의자 등을 쌓은 거에요. 그래서 일종의 놀이터 도서관이 된 거죠. 서울대 서 교수가 아이들을 다 불러서 아이들의 의견을 들어서 지금 구조가 이렇게 만든 겁니다. 스토리텔링이 되잖아요? 초등학교 친구들이 서울대 교수의 설계를 변경시킨 최초 사례일 겁니다.

질문6) 친구들이 책도 썼어요?

-금요일마다 일주일마다 관찰도 했고요. 그림 그리는 선생님이 도와주고 해서 최초로 초등학생이 저자인 그림책을 다 만들었습니다.

질문7) 도서관 하루일과가 궁금한데요. 매일 학생들이 오지는 않죠?

-크게 2가지입니다. 하나는 도서관을 만드는데 지원해준 도서관친구들이라고 하는데요. 시민운동단체입니다. 전국 네트워크가 있어요. 그분들이 필요할 때는 자연프로그램을 이야기해서 아이들이 책도 보고 자연도 즐기는 그런 프로그램들이 매년 있고요. 그 다음에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거의 지역 학교라든지 환경단체라든지 고유의 프로그램들을 시행합니다.

대충 일과를 보면 개인 일과하고 같이 이야기 하겠습니다. 여름에 새벽 4시나 4시30분 우포늪을 한 바퀴 돕니다. 그런 상황을 매일 페이스북에 올립니다. 후원하는 분들에게 하는 서비스입니다. 새 울음소리 등을 보여주죠. 라이브 중계도 하고 합니다. 댓들이 달리고 하죠.

질문8)저도 친구신청 해야겠는데요?

-지금은 팔로워 밖에 못하십니다. 어쨌든 마치고 나오면 10시쯤 되면 아침을 먹습니다. 하루에 두 끼 먹으니까요. 10킬로미터 가까운 거리를 걸으면 자연의 에너지, 소리와 향기들이 있어서 전혀 배고프지가 않아요. 마을식당에 모여서 먹고, 도서관에 10시 30분에 옵니다. 그것도 겨울철이 되면 문을 빨리 열지 못해요. 독수리들이 몽골에서 우포나 고성이나 봉하마을에 선회를 합니다. 몽골에서 겨울에 먹을 게 없잖아요. 남쪽을 내려오면 도축장이 있으니까 먹을거리를 트럭에 실어서 나눠줍니다. 그때 어린이들이 오면 프로그램도 같이하고 하면 오전시간이 갑니다. 겨울은 그렇고요.

평소에는 들어와서 신문이나 방송원고 써야할 시간이 있습니다. 손님들이 방문하시면 오고요. 할머니들하고 지역 아이들 오고 그러죠. 일이 만들어져서 도서관을 방문하거나, 때로는 영화상영도 하면서 보냅니다.

오후 4시에서 5시 되면 모니터링 하러 우포늪에 나갑니다. 기본적으로 모니터링 촬영입니다. 관찰기록인데요. 중국에서 10년 전에 따오기를 들여왔거든요. 따오기 복원 제안한 사람이기 접니다. 따오기가 사라진 이유가 있잖아요? 깨끗한 환경이 없어져서 그런데요. 중국에서 들여온 한 쌍, 그 뒤에 또 들어오죠. 올해 방사를 못했어요. 내년 쯤에는 해야 되요. 늘 걱정이 농촌 땅, 습지 안에 먹을 게 많아야 되는데요. 늪 안에는 많은데요. 다행이 괜찮은데요. 날개를 단 짐승이잖아요. 멀리가면 사고가 날 확률이 많거든요. 우리도 그 정도 본다고 하면, 더 넓은 곳에서 친환경되고 싶다는 바람이 있잖아요. 상위 포식자들이 있어서 증식하는 과정에서요. 따오기들은 삵이나 이런 것들이 다 친구인 줄 알아요. 그런 것들 때문에 어느 지점에는 우리가 공간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유럽이나 일본은 다 하고 있어요. 펜스도 치기도 하고요. 정부와 지자체가 어마어마한 돈이 들고 해서 이런 일을 추진하기가 쉽지 않죠. 그런 자료들을 축적해서 자문회의 가서 수정이 되고 갈 수 있다고 싶어서 그렇게 일하고 있습니다.

질문9)일과 말씀하시면서 계속 이어가고 계세요...

-네, 단순히 자연학교, 환경교육하는 게 아니고 우포늪이라는 거대한 큰 그림 속에 서식지를 확보해서 사라진 종을 복원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여우, 곰, 늑대 다 살았거든요. 그 이유는 여기가 자연성이 너무나 뛰어난 곳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데는 인간이 제어를 많이 해요. 영국이나 중국은 제 구상하고 맞물려 있습니다. 800만 런던시민들 주변에 거대한 공연이나 자연성이 없으면 안 되거든요. 우포도 부산이나 창원, 대구 큰 쪽에 자연성이 있는 데가 없잖아요. 이런 것을 인공적인 사파리 공원이 아니라 자연에다가 덧붙인 곳을 하고 싶은 거죠. 그런 그림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 이야기를 정책으로 내어야 되잖아요? 문재인 대통령이 방중할 때 제안을 했습니다. 중국과의 관계가 소원해졌으니까, 중국이 준 따오기를 다시 선물주면서 우리가 잘 지냈다고 하면 말이 되잖아요. 그렇게 되면 생태문화외교가 되는 것이잖아요. 성사가 될 지는 모르겠습다만 생각은 그렇습니다. 넓은 우포늪 주변과 서식지를 확보하고 여러 곳에 주민들의 소득을 올릴 수 있도록 한다든지 해서 젊은이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하는 거죠. 50대 세계습지를 유치하자는 의견도 있습니다. 자연동물원 같은 곳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질문10) 자연생태복합문화공간, 공간장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큰 그림 속에서 바쁜 일상을 보내고 계신데요. 어린 친구들하고 계실 때 행복감이 크시죠?

-아이들은 탄성, 감탄입니다. 독수리 먹이줄 때는요. 바로 앞에 독수리와 눈과 눈이 마주친다고 생각해보세요? 아이들은 우리가 말하면 감탄, 두려움, 공포까지 가지는 것이죠. 감동을 잊지 못하고 왜가리 할아버지 어떤 공포영화보다 두렵고, 자기 먹이를 받아 먹는 순간에 너무 행복했다는 거죠. 우리는 개울가에 빠지고 하는데, 절대 못하게 하잖아요. 스스로 안전을 지키고, 스스로 길을 찾는 프로그램도 포함되는 것이죠.

질문11) 오늘도 인터뷰를 진행하는 순간에도 문의가 많이 오던데요. 홍보는 필요없겠어요?

-저도 보이지 않는 인맥이 있잖아요. 그래서 행복하게 연락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옛날에 다퉜던 분도 계시고요. 모든 분들이 옛날 이야기하면서 모이고 있어요.

질문12) 따오기 자연방사를 예상했다가 미뤄졌어요?

-내년 5월이나 가을 정도로 생각하는데요. AI 등으로 변수가 있고요. 따오기 방사할 때 서식지가 필요하니까요, 그런 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분들을 모셔서 그런 것을 호소하려고도 합니다. 취재오셨으니까요. 수시로 정보를 요청하십시오.

질문13) 페놀사건 때문에 환경운동을 시작했다고 언급하셨는데요. 그 이전에는 환경문제에 관심이 없었습니까?

-저도 어린 시절에 늪 근처에서 소 먹이도 주고 그랬습니다. 환경적으로 어떤 지는 모르고 그냥 했죠. 보고 자랐죠. 정서적으로 가지고 있었고요. 해직되기 전에도 아이들하고 동아리 활동을 많이 했어요. 산에 가서 꽃도 보고, 야생동물도 보고 그랬습니다. 좋은 아이들을 만드는 게 교사라고 생각하는데요. 가능하면 아이들 성장과정에서 루쏘같은 분은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하고요. 자연에서 교육하는 게 많이 나옵니다. 저도 읽은 사람이라 토요일이나 일요일 동아리 활동을 했죠. 그것이 연계된 것이지 갑자기 변화하진 않았겠죠. 제가요.

질문14) 그 당시 고민하던 부분들이 이어져서 이런 공간이 만들어졌다고 봐야겠네요?

-관심을 가지고 있었죠. 대안학교. 샛별 거창에 초등학교가 있었는데요. 그 교장선생님은 항상 이야기하는 게 들꽃은 스스로 자란다고 하셨죠. 저도 아이들을 입시 전쟁에 몰아넣은 장본인이었거든요. 초등학교에는 갈등이 없었는데요. 그 다음부터는 입시가 치열할 때 였어요. 젊은 분들인 3학년 담임을 매년 합니다. 매일 간수처럼 생활하는 패턴이었어요. 가슴속에 안타까웠죠. 저는 좋은 학교라고 하는데 가지 않았어요. 사고 많이 치는 학교들을 가서 교직생활을 했습니다. 아이들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요.

질문15) 환경운동 하시던 시간들도 기억 많이 나실 텐데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아주시죠?

-일단 2003년도 우포늪이 보존이 되고 난 뒤에, 홍수가 돼서 이 자리가 잠겼죠. 동네에 난리가 났었습니다. 동네 주민들이 그것 때문에 항의를 왔어요. 마창환경운동연합에 오면서 불상사도 있었죠. 이걸 해결해야되겠다고 해서, 그 과정에서 시멘트를 바르고 하는 거에요. 한번 더 부딪혔어요 그래서. 그 과정 속에서 주민들하고 친해지게 됐는데요. 몰매를 맞고 실려갔는데, 제방을 안 높인 것이 마치 환경단체가 반대해서 올리지 못했다고 오해했는데, 그 당시 그게 풀렸고요. 우리 나라 국가기관 산업기술연구원 등 공신력 있는 박사가 오셔서 제가 제시했던 안이 맞으니까 창녕군이 받아들여서 제방을 만들었습니다. 지금 눈에 보이는 제방이 그겁니다. 시멘트를 바르지 않았죠. 그것으로 우포늪 가치가 높아진 게 기억에 남고요.

여기 아이들이 몇 명 안 되거든요. 미래세대잖아요. 다음 세대들이 더 좋은 환경을 지켜나가면서 직접 아이들이 1년 동안 관찰하고 했어요. 예비방사할 때도 아이들과 함께해서 그림책을 만든 거죠. 이게 혁신행복학교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지역에 자산 유산들을 아이들이 습득해야 됩니다. 우리는 국사를 강조하잖아요. 지역사를 가르쳐야 한다고 봅니다. 지역사는 거짓말을 못하거든요. 그런 것들을 통해서 공부를 하다가 국가의 역사들을 봐야하죠. 진실은 동네에 있는 게 가깝습니다. 국사는 한계가 있죠.

(앵커멘트)앞으로 하셔야 일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후손들에게 자연을 살리고 좋은 환경을 물러줄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는 부탁의 말씀을 드리면서 인터뷰를 마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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