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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문고리 3인방도 피하지 못한 '시간의 검색'박근혜 전 대통령을 보좌한 정호성, 이재만, 안봉근의 최후
유상석 기자 | 승인 2017.11.02 09:47
왼쪽부터 정호성, 이재만, 안봉근 전 청와대 비서관. 이른바 '문고리 3인방'으로 통했다.

"유 기자! 자네, 가장 훌륭하고 무서운 검색 수단이 뭐라고 생각하나? 구글, 네이버, 다음 모두 아니야. 내가 볼 땐 시간일세."

법학 이론 연구와 실무 경험이 풍부한 한 법대 교수가 해주신 얘기입니다. 

우리는 거의 매일 인터넷 검색창을 두드립니다. 검색이라는 단어가 일상화됐고요. 모두가 검색 전문가가 됐습니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게, 검색창에 몇 글자만 두드리면 어지간한 정보는 다 나오거든요.

최근 뜨거운 이슈로 떠오르는 법조계 주요 사건들만 봐도 그렇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갑자기 왜 재판을 거부했는지. 그래서 그 뒤로는 뭐가 어떻게 돼 가고 있는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재판정에서 어떤 모습으로 앉아 있는지. 국정원 수사와 관련해 검찰은 오늘 누굴 불러서 뭘 물어봤는지.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돼 재판을 받고 있는 대기업 총수들의 근황은 어떤지. 어지간히 궁금한 내용들은 검색하면 다 나오니까요.

하지만 한 때 아무리 검색을 해도 도무지 나오지 않던 게 있었습니다.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의 일부였던 이재만, 안봉근 전 청와대 비서관의 행방 말입니다.

이재만, 안봉근, 정호성. 이 ‘3인방’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1998년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통해 정계에 입문하던 때부터 ‘밀착 보좌’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최순실 씨의 전 남편이자 박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이던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정윤회 씨를 통해 보좌에 입문했답니다. 그렇게 시작한 보좌가 국정농단 사건 직전까지 계속됐으니, 박 전 대통령과는 20년 가까이 함께한 거죠.

20년 전부터 모시던 어르신이 대권을 쥐었으니, 이들의 위세... 짐작할 만 하죠? 오죽하면 ‘문고리 3인방’이란 별칭이 붙었겠습니까. 문고리를 만지지 않으면 문을 열 수 없듯, 이 3명을 거치지 않으면 대통령을 만날 수 없었다나요.

그러다가 탄핵정국이 되자 상황이 변합니다. 정호성 비서관은 청와대 문건을 외부인인 최순실 씨에게 유출했다는 혐의로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는 신세가 됐죠.

이 비서관과 안 비서관은 어딘가로 잠적해버립니다. 국정농단 청문회 증인석에도 앉지 않았고,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 증인으로도 출석하지 않았습니다. 헌법재판소는 두 사람에게 출석요구서를 전달하려고 경찰에 소재탐지촉탁까지 했습니다만, 결국 찾지 못했습니다. 헌법재판소에 있던 동료 기자들의 한숨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혹시나 했는데 오늘도 안 나왔네! 어휴~”

결국 박 전 대통령은 헌재의 파면 결정으로 청와대를 떠나야만 했습니다만, 그 때까지도 두 사람의 모습은 어디서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들의 잠적은 이번 국정감사 직후 끝났습니다. 여러 의원들이 문무일 검찰총장에게 ‘문고리 3인방’ 수사가 부진하다고 질타했고, 우연인지 몰라도 이런 지적이 나온 지 1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안봉근, 이재만 전 비서관은 검찰에 체포됩니다. 한 때 권력을 쥐고 흔들던 3인방은 이렇게 구금당한 채 형사재판 절차를 밟는 신세가 됐습니다.

시간의 검색은 결코 빠르지 않습니다. 검색 등록이 이루어지기까지 참 오래 걸립니다. 안봉근, 이재만, 정호성. 아무리 찾고 싶어도 어떤 정보도 나오지 않았던 건, 아직 검색 엔진에 등록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시간의 검색은 정확합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앞에서 호가호위하던 3인방, 뒤에 숨어서 비선실세를 자처하던 최순실 씨 모두 결국 시간의 검색에 딱! 걸리면서 실체가 드러나고 말았으니까요.

그런데도 이 시간의 검색을 두렵게 여기는 이는 아직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자판 몇 번만 두드리면 모든 것이 입력되거나 지워진다고 굳게 믿는 이들이 넘쳐나는 세상. 지금 이 순간, 본인이 달고 있는 명함이며 직함이 본인의 전부라고 믿어버리는 안일한 생각 탓인지, 느리게 이어지는 시간의 검색은 무시되는 듯합니다. 이런 생각들이 작게는 이른바 ‘갑질’, 크게는 국정농단으로 이어지는 건 아닐까요.

그래서 말인데요. 시간의 검색에서, 나의 미래 모습은 어떻게 나타날까. 잠깐 씩이라도 상상 좀 해 보면 어떨까요? 아니, 과거 권력에 계셨던 분들 말고, 지금 권력을 쥐고 계신 분들도 말입니다. “아냐. 난 지금 권력과 별로 관계 없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마찬가지고요. 아! 남 말 할 때가 아니네요. 저 스스로부터도 이런 고민 한 번 씩 해보겠습니다. 시간의 검색에서 결과가 나쁘게 나온다는 것.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니까요.

유상석 기자  listen_well@bbs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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