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백만명을 돌파한 11월12일

 지금도 광화문을 지날때면 나도 모르게 읇조리게되는 노래가 있다. 짧지만 깊이가 있고 평범하면서도 경건한 노랫말. 거기에 비장하면서도 슬프지않고 조용하면서도 경쾌함마저 느껴지는 곡조. 부를수록 마음에 사무치는 의지.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않는다’. 세월호 유가족만의 노래는 아니었다. 누구든 따라부를 수 있었다. 함께 크게 부를 수도, 혼자 흥얼거릴 수도 있었다. 오랫동안 전해져내려온 구전가요와도 같았다. 그렇게 큰 목소리로 모아질 지 몰랐다. 불과 1년전 일이다.

 11월 5일 토요일 오후. 오늘은 꼭 나가야할 것 같았다. 몸도 편치않은 후배의 채근이 한몫을 했다. 지하철은 이미 만원이었다. 주말에 좀처럼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이미 지하철 승객 대부분이 그곳을 향해가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친구, 연인, 동료, 선후배, 가족 등 관계는 다양해보였지만 복장은 간편했고 눈빛은 맑았다. 혼잡하기는 러시아워와 다르지않았지만 서로 밀지않으려는 배려는 뭔가 따뜻함을 전해주고 있었다. 목적지가 같은 승객간에 느끼는 무언의 안도감과도 같은 것이었다. 역시 다들 광화문역에서 내렸고 지상으로 올라가기까지 꽤나 시간이 걸렸다. 주최측 추산 30만명. 촛불집회가 시작된 지 두 번째 주말만에 광장을 가득 메웠다. 고 백남기 농민의 장례식이 치러졌던 그 날이었다.

 11월 26일 일요일 저녁. 당시 야당 의원 한분이 전화를 주셨다. 근황과 함께 자연스레 시국에 대한 얘기를 주고받았다. 과거 아침 시사프로를 진행하듯 질문과 답변이 꽤 한참동안 이어졌다. “의원님은 지금 상황을 어떻게 보시나요?” “과거 IMF 외환위기때를 생각해봐야하는데 지금은 경제가 걱정이예요” “제가 직접 나가보니 시민들의 분노가 30년전 6월항쟁 당시를 뛰어넘습니다. 대통령 탄핵을 주저해서는 안될꺼 같애요.” 나는 광장에서 느꼈던 언론인으로서의 감회를 비교적 솔직하게 전했다. 그리고 그 이튿날 아침, 나는 월요일 출근길에 한 라디오방송에서 인터뷰하는 그 의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보다 자신감있는 야당 입장에 흐뭇했던 기억이 있다. 그로부터 2주가 채 안돼 국회에서는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됐다.

 1백만명이 넘기도 했다. 2백만명이 넘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참여인원수가 그리 중요해지지않았다. 광장에 있든 없든, 촛불을 들었든 안들었든 서로의 마음에는 차이가 없었던거다. 모두가 헌법 제1조 1항과 2항을 읇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10월28일, 박경수 기자의 삼개나루]

 

3월 11일 광화문의 축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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