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오랜 역사만큼 수많은 ‘도시전설’을 갖고 있다. 첫눈이 오는 날 덕수궁 돌담길을 걷는 연인은 헤어진다던가. 90년대 서울의 비둘기의 개체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는데 그 원인이 누군가 식재료를 목적으로 비밀리에 사육을 시도했기 때문이라던가. 서울 영등포에서 일어난 한 변사 사건에서 시신 옆에 켜져 있던 선풍기 때문에 퍼진 ‘선풍기 틀고 자면 죽는다’는 괴설은 실제 재해보상금을 지급하는 판례를 만들기도 했다. 이 같은 ‘도시전설’은 대부분 근거 없는 민담이나 우스갯소리로 치부되지만, 때때로 눈앞에 소름끼치는 진실로 도래하기도 한다.

  지난 19일 시민들에게 공개된 여의도 지하 비밀벙커 역시 그야말로 실존하는 ‘도시전설’, 실화였다. 지하 벙커는 2005년 서울시가 여의도에 버스환승센터를 만들기 위해 현지조사를 진행하던 중 발견됐다. 녹색 철제문이 화단 속에 있었던 건데, 당시 내시경을 넣어 속을 확인했던 서울시 건설안전본부 직원들은 토끼굴에 빠진 앨리스처럼 이상한 나라를 보고 말았다. 침수돼 물이 무릎 높이까지 차오른 지하 180평의 공간 안에는 2개의 화장실과 3개의 비상용 탈출구, 소파, 2백여 대의 전화를 동시에 연결할 수 있는 단자함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벙커가 언제 어떻게 조성됐는지에 대해선 그 어디에도 기록이 나와 있지 않다. 국토교통부 지하 시설물 도면에 기록은 없었고, 수도방위사령부도 “존재자체를 모른다”는 논평을 냈다. 서울시가 보유한 항공사진을 보면 벙커의 출입구가 1977년 자료 이후부터 표시된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로 미루어 1976년 말에서 1977년 초 사이 만들어졌을 것이라 보고 있다. 김준기 서울시 안전교통본부장은 “벙커는 여의도 광장에서 열린 국군의날 행사의 사열대 단상 바로 아래 위치하고 있었다”면서 “대통령 대피용 시설로 조성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1974년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 이후, 대통령 경호를 위해 지하벙커를 만들었다는 설이 지금까지 가장 유력하다. 80년대 중반부터 국군의 날 행사가 여의도에서 열리지 않게 되자 기능을 잃은 벙커는 쇠락해 잊혀졌다.

  약 40년 만에 현대의 부름에 회귀한 ‘여의도 지하 비밀벙커’에서는 전시가 한창이다. 처음 벙커가 발견된 2005년 이후 십여 년 동안은 사업비 부족 등으로 보존만 해놓다가, 최근 시민의견을 수렴해 서울시립미술관 별관 ‘Sema 벙커’라는 이름을 붙여 전시장으로 만든 것이다. 누런 때가 묻은 환풍기와 타일, 퀴퀴한 냄새는 여전히 이 곳이 이질적 공간임을 상기시켜주지만, 현대의 첨병으로 나선 11명 작가들의 사진과 영상, 작업물은 정치‧금융 1번지 여의도와 공군기지‧5.16광장이 있던 여의도를 매개하고 있었다. 그들의 생각도 재미있다. 독립 큐레이터 윤율리 씨와 이유미 작가는 흰색 예비군 군복을 즉석에서 만들어 판매하는 작업을 한다. 그들이 생각하는 현대의 ‘카모플라쥬(위장용 얼룩무늬)’는 예비군이 입는 개구리복의 색이 아니라 유리로 뒤덮인 건물들의 눈부심을 상징하는 흰색이다. 유리와 PVC, 비닐과 펄 소재가 군복 곳곳에 사용됐고 모자엔 계급장 대신 은색 자수가 들어갔다. 윤 씨는 “여의도 금융가와 벙커는 이데올로기적 장소로서 떨어질 수 없게 연결돼 있다”면서 “이 옷이 그 통로를 관통하는 스타일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개관식 날, 기자단과 함께 전시장 여기저기를 둘러본 박원순 서울시장은 벙커 VIP룸 내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자리였을 것으로 보이는 소파에 앉아 담당 관계자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이 공사에 참여했던 사람 누구라도 한 명은 있지 않겠어요? 한 번 찾아보면 좋을 것 같은데” 옆에 앉았던 신경민 의원이 맞장구를 쳤고, 그 관계자는 알아보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표정은 별로 좋지 않았던 것 같다.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가 시작된 건데 당연할 터. 이후 나흘 정도가 지난 오늘에서야 궁금해진다. 과연 그는 공사에 참여한 사람을 찾았을까. 솔직한 심경으로는 그가 임무에 실패했기를 바란다.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세상을 더 재밌게 만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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