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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故 법장스님과 설정스님, 그리고 조계종 총무원장
홍진호 기자 | 승인 2017.10.18 17:09
선거기간 설정스님은 돈암동 흥천사 느티나무어린이집을 방문해 기념사진을 찍었다. 

설정스님이 원로회의 인준 통과로 제35대 조계종 총무원장 당선을 확정지었다. 94년 종단개혁 이후 중앙종회 의장에서 물러난 지 20여년 만에 종단정치의 중심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설정스님 하면 덕숭총림이 먼저 떠오른다. 근현대 한국선불교의 중흥조인 경허스님의 법맥을 이으며, 숭산스님을 통해 세계일화를 꽃피운 문중의 최고어른이었다는 사실 만으로도 무게감을 지닌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설정스님 하면 문중의 사제였던 31대 조계종 총무원장 故 법장스님이 생각난다.

28살 이었다. 필자가 조계종 총무원에 소위 말하는 1진 출입기자로 들어온 때가 2003년 이었다. 이전 직장에서 종립대학 출신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지만 파격이라고 할 만큼 이른 나이였다. 당연히 실수의 연속이었다. 갓 입사해서 수습을 떼자마자 종단을 출입했기에 고초와 중압감 또한 남달랐다. 당시에는 PD의 업무도 겸해야 했기에 4층 접견실과 수덕사를 부지런히 오갔다. 하루는 총무원장 스님의 집무모습을 영상으로 담아오라는 지시에 카메라 감독과 함께 총무원장 집무실을 찾았다. 당시 법장스님의 상좌이자 수행사서 이었던 진광스님에게 이를 요청했다. 스님은 힘들다고 했지만, 거듭 된 부탁에 원장 집무실로 마지못해 들어갔다. 이윽고 문 너머로 총무원장 스님의 호통이 들려왔다. 잠시 후 진광스님이 나오면서, 당시 스님이 필자를 부르는 별명이 홍 반장 이었는데, 붉어진 얼굴로 “홍 반장 이번에는 안 되겠다”고 말했다. 신입기자라 서툴렀고 어렸을 때라 마음만 급했다. 그때 진광 스님에게 참 미안했고 또 고마웠다.

지금도 그렇지만 조계종 총무원장은 대외손님도 많고 스케줄도 촘촘하다. 특히 법장스님은 때로는 하루에 2~3개의 교구본사를 오가고, 1년에 3~4차례 해외일정을 소화할 정도로 남다른 활동력을 보였다. 숨 가쁜 일정 탓에 1년에 두 번 총무원장 스님이 발표하는 부처님오신날 봉축메시지와 신년 메시지 등을 녹화할 때면 주말에 수덕사로 촬영을 가야하는 경우도 종종 생겼다. 길눈이 어두운 필자가 당시 내비게이션을 켜지 않고 운전을 해 찾아가는 곳은 경기도 이천 할머니댁과 수덕사가 유일할 정도로 수덕사에 참 많이도 갔다.

법장스님은 1분 1초를 아껴 활동했지만 소통에는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 법장스님 때는 출입기자로, 이후에도 근거리에서 총무원장 스님들을 보아왔지만 내가 아는 한에 있어서 법장스님만큼 기자는 물론 모든 이들과 소통을 했던 분은 드물었던 것 같다. 법장스님은 재임 당시 모든 예방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언론에 공개했다. 기자실보다도 4층 접견실로 출근을 하고 접견실 소파에서 오전시간을 보냈던 기억도 적지 않다. 법장스님은 언론과의 인터뷰도 주저하지 않았다. 직접 요청했을 때 거절 했던 기억이 없다. 종단 출입기자들과도 자주 만났다. 시간이 없을 때는 출입기자들과 아침 7시에 조찬을 함께 하며 의견을 묻고, 종단운영 방안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32대 총무원장 故 지관스님 이후 다시 종단원로인 설정스님이 종단정치의 최 정점에 올랐다. 원로의 정치일선 복귀는 기대와 우려를 함께 불러온다. 원로 특히 수좌스님으로서 설정스님은 원칙에 입각해 종단을 운영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많은 업무와 일정 탓에 100세 시대이지만 원로 총무원장의 건강을 염려하는 우려는 끊임없이 제기 될 수도 있다. 가열됐던 총무원장 선거 탓에 불거져 나왔던 우려 또한 상승작용을 일으켜 우려가 불안으로 바뀔 수도 있다. 또 원로는 대정부 기조 등이 다소 딱딱해 질 거라는 우려도 있다. 여러면에서 법장스님, 자승스님 등 종단정치에 노련했던 중진 원장스님과는 많은 부분에서 비교가 될 수도 있다.

여러 의혹도 있었지만 설정스님은 선거를 통해 종도들의 지지를 확인했고 원로회의의 인준도 받았다. 신심, 원력, 공심에 선거 때 반대편에 섰던 스님들의 의견까지 경청하고 포용할 수 있는 소통과 화합이 더해진다면 총림방장의 종단운영은 우려보다 기대가 많을 것이다. 지관스님이 당시 정권에 맞서 범불교도대회를 성공적으로 이끈 기억은 아직도 사부대중들의 기억에 또렷하고 입에서 회자된다. 지관스님은 바쁜 일정으로 힘든 표정이 얼굴에 나타날 때도 있지만, 위기의 순간 그 누구보다 단호하게 범불교대회를 이끌었다. 위기 때 표출되는 연륜과 저력은 종단원로만이 지닌 장점이 될 것이다.

홍진호 기자  jino413@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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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공 2017-10-19 09:09:44

    존경할만 한 스님께서..

    세속에 모습을 드러내길 만무하며,

    세속인인들 존경할만 한 스님이
    눈에 드러올 일이 만무하다.
    만약 그런 스님을 알아 본다면
    이미 탈세속한 자이기 때문이다.

    나무 석가모니불 _()_ _()_ _()_   삭제

    • 멱우 2017-10-19 01:37:28

      아 ~ 한국불교는 썩을대로 썩더니 서서히 몰락의길을 걸어가는구나
      언제부터인지 사람들은 절집이 사업을한다고들 말하며 무시하더니
      불자들 역시도 승복입은 스님들을만나도 우습게보며 인사조차 안하는
      세상이 되었는데 과연 어느누가 스님을 존경한다고 따르려 하겠는가?

      하물며 많은의문 투성이인 스님이라면 더더욱 존경하며 따르겠는가?
      뼈를깍는 마음으로 부처님앞에 한치의 부끄럼없이 떴떴해야 하거늘
      속인들 보다도못한 자세로 인생9만리 중에서 8만리도넘게 달려와
      불과몇백리 남겨놓고 인생갈무리에서 보여주는 모습이란 참으로
      안타깝고 개탄스럽기 그지없소이다   삭제

      • 조게종 2017-10-18 22:05:23

        다른 것은 다 사실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본인이 이미 밝혔듯이 저 사람은 누구나 원서만 내면 들어가는 2년제 방송통신대학(졸업했는지도 확인안된)을 서울대 졸업이라고 속여왔습니다. 이것으로 조계종은 세속의 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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