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기있는 영화 ‘남한산성’을 관람한 뒤 극의 배경에 관한 지적 욕구가 차올라 인터넷TV의 ‘지난 방송’ 메뉴를 뒤졌습니다. 언젠가 스쳐 지나며 봤던 강연 프로그램 ‘어쩌다 어른’을 찾아서 틀었는데, 인기 한국사 강사 설민석씨가 병자호란을 설명하면서 관객들에게 이렇게 묻는 장면이 나옵니다. “당시 남한산성 안에서 대립했던 척화파 신하 김상헌과 주화파 신하 최명길 가운데 여러분들은 어느쪽을 지지하십니까?” 얼추 100명은 넘어 보이는 젊은 관객들 중에서 김상헌을 지지한다며 손을 드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습니다. 반면 최명길 쪽은 많은 사람들이 쭈뼛거림 없이 손을 듭니다. 어찌된 영문인지 혼란스러울만도 할텐데 강사는 당황하지 않습니다. 한국사에서 절개와 지조의 상징으로 여겨져온 김상헌의 명분론이 현대인들에게 어쩜 이렇게 외면을 받는가란 생각이 들만큼 차이는 확연했습니다. 북한 핵을 머리에 이고 살며 끌려다니는 굴욕은 참을 수 있지만 전쟁만은 안된다는 요즘의 대한민국 사회 분위기가 그들의 짧은 순간 선택에 고스란히 투영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상헌, 최명길 두 신하는 나라와 백성을 위하는 방식이 달랐을 뿐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애국자입니다. 이들의 사상과 주장에 옳다, 그르다란 잣대를 들이대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부터 20여년을 거슬러 저의 학창시절 국사 수업 시간으로 돌아가보면 최명길의 존재는 도의를 저버린 변절자이자 힘센 오랑캐에 부역한 사대주의자였습니다. 당시 김상헌이 남긴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보자 한강수야~’로 시작되는 시조는 학생 누구나 읊을 수 있는 ‘국민 싯구’였습니다. 하지만 어떻게든 백성을 지키고자 했던 최명길의 위민 정신과 고립무원의 성 안과 밖을 홀로 오가며 화친을 성사시킨 최명길의 위기대처 능력을 거론하며 높은 점수를 주는 이는 제 기억에는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영화 ‘남한산성’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최명길이 청나라 황제에게 보낼 왕의 항복 서한을 자신이 쓰겠다고 자처하는 부분입니다. 후대에 역적으로 몰릴 것을 걱정해 모두가 주저할 때 서슴없이 붓을 잡았던 최명길과 영화에는 생략됐지만 ‘명문(名文)’의 그 서한을 왕 앞에서 찢어버렸던 김상헌 모두 요즘 대한민국에는 찾기 힘든 큰 정치인이자 진정한 애국자임에 틀림없습니다.

  최명길이 현대 사가(史家)에서 재조명을 받고 있고, 김상헌에 관한 세간의 인심이 박해진 것은 달리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역사적 사실에 관한 평가는 그것을 바라보는 시대 상황과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역사란 무엇인가’의 저자 에드워드 카(E.H.Carr)는 “역사는 시대와 상황의 산물이므로, 역사적 사실을 그 시대와 상황에 비춰 평가하고 판단해 재구성된 의미있는 사실”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곧 역사적 사실을 평가하고 판단한다면 매우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점도 의미합니다. 특히 그것이 법적,정치적으로 이어질 ‘역사적 단죄’라면 더욱 그러합니다. 최근 10여년 사이 벌어진 중요한 사안들만 보더라도 한미FTA 체결과 광우병 쇠고기 파동에 관한 역사적 평가의 경우 불과 몇 년이 지나지 않아 180도 바뀌었습니다. 아마추어식 리더십으로 국정 운영에 실패해 스스로 ‘폐족(廢族)’이라 칭했던 이른바 친노에 대한 평가도 어느새 달라졌습니다. 그들은 10년새 화려하게 부활해 높은 국민적 지지를 얻고 있습니다. 반대로 경제 근대화의 업적으로 전직 대통령 호감도 1위를 줄곧 달려온 박정희 전 대통령은 탄생 100돌 기념우표 조차 발행하지 못할 정도로 신드롬의 종말을 맞고 있습니다. 요즘 정치권과 사법기관을 중심으로 과거 정권때 벌어진 일들에 관한 ‘적폐청산’ 논란이 한창입니다. 과거 정권의 적폐를 청산해야 역사가 진일보한다는 입장과 역사의 흐름에 맡기면 될 문제로 국론을 분열시키고 정치보복을 시도한다는 논리가 맞서는 현 상황은 400여년 전 남한산성 안에서 김상헌과 최명길이 내걸었던 담론을 생각한다면 지극히 한가한 싸움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벼랑 끝에 내몰린 한반도의 위기 상황만큼은 그 때와 큰 차이가 없어보입니다./이현구 정치외교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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