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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애먼 사람' 바보 만드는 방법
유상석 기자 | 승인 2017.09.14 10:35

인터넷을 들쑤셔놓았던 240번 버스 논란. 청취자와 독자 여러분도 잘 아시죠. 처음엔 버스 운전기사가 천하의 나쁜 사람으로 몰렸지만, 나중에는 상황이 반전돼 버린, 그런 사건입니다.

기자는 이번 사건을 통해 "사람 한 명 바보 만드는 건 정말 쉽구나"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됐습니다. 애먼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방법, 한 번 짚어보겠습니다.

엄마와 함께 시내버스에 타고 있던 아이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먼저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하지만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어머니는 내리지 못하고 있다가 나중에야 차를 세워줄 것을 요구했고요. 하지만 운전기사는 차를 세워주지도, 문을 열어주지도 않았다는 것. 이게 전해지는 내용입니다.

사실 전 어쩌다보니 큰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는 운전면허를 남들보다 몇 개 더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버스운전기사 입장에서 여러 가능성을 추측해볼 수 있었습니다. 배차간격에 쫓기고 있을 가능성, 차량 정비 불량 가능성, 운전기사가 출발 전, 후문 쪽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을 가능성, 그리고 이미 차량이 출발한 뒤에 승객이 하차를 요구했을 가능성입니다.

배차간격에 쫓겨서 발생할 사건일 가능성은 낮아 보였습니다. “아, 거 참, 내릴 준비 좀 미리 하시지, 뭡니까!” 이렇게 면박을 주거나 투덜거리긴 하겠지만, 문은 열어줍니다. 승객 요청에 응하지 않을 경우 민원이 발생하고, 본인에게 불이익이 온다는 걸 운전기사들이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죠.

후문이 달린 버스의 경우, 승객이 계단 위에 올라서 있으면 문은 닫히지 않습니다. 그리고 문이 열린 상태에서 액셀러레이터를 밟으면 차는 출발하지 않습니다. 대형차량 운전해보신 분들은 알 겁니다. 주차브레이크를 풀지 않은 상태로 차를 출발시키려고 하면, 시동이 꺼져버립니다. 딱 그렇게 된다는 거죠. 그런 기능을 없애버리면, 차량 정비불량입니다. 버스회사는 불이익을 겪게 되겠죠. 그러나 취재해 보니, 승객이 내리는 중에 문이 닫히고 출발한 그런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승객이 뒷문으로 내릴 때, 운전기사는 뒷문 쪽을 육안으로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그래서 후문 쪽에 따로 거울도 달려 있습니다. 이 의무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을 가능성에 대해 취재해봤지만, 그런 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차량이 출발한 뒤에 승객이 하차를 요구했기 때문이죠. 

여러 매체를 통해 접하셨겠지만, 일단 차가 정류장을 떠나면 다음 정류장에 도착할 때까지 승객을 승하차시킬 수 없습니다. 단속에라도 적발되면 운전기사는 적지 않은 과태료를 물어야만 합니다. 과태료도 과태료지만, 정류장이 아닌 곳에서 승객을 취급하다가 사고라도 발생하면 책임은 누가 지나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황들 모두 무시한 채, 덮어놓고 운전기사만 탓하면 됩니다. “아이가 사라졌는데, 문 잠깐 열어주는 게 뭐가 그렇게 어렵느냐”고 우기면 됩니다. 아주 쉽게 애먼 사람을 바보로 만들 수 있죠.

그리고 전후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여기저기 퍼트리면 됩니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일방의 이야기만 전해 듣고 “여러분, 버스 기사 진짜 나쁜 사람이에요! 혹시 사이코는 아닐까요?” 이런 식으로 나름대로의 살을 붙여서 퍼다 나르면 됩니다. 애먼 사람은 더욱 바보가 되어 갑니다. 아니, 사이코에 나쁜 사람까지 돼 버립니다.

퍼트리는 일 하면 또 기자들이 전문이죠.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240번 버스 논란’이라는 키워드가 뜨면,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떻게든 ‘240번 버스 논란’이란 말을 넣어 ‘아무 말 대잔치’를 하면 됩니다. 그러면 검색어와 맞물려서 본인 기사의 조회수가 올라가거든요. 팩트 확인이요? 언제 그런 걸 하고 있나요. 팩트 확인하고, 데스킹 거치면 검색어 바뀌는데. 그리고 각 언론사의 간부들은 부하직원들에게 그런 일을 하도록 강요하면 됩니다. 이제 애먼 사람은 언론에 보도된 바보가 됩니다.

애먼 사람이 근무하는 회사도, 직원을 바보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행여나 기자가 사실 확인을 할 때를 대비해, 전화를 받지 않으면 됩니다. 사실 서울 240번 버스를 운행하는 대원여객과 대원교통은 ‘KD운송그룹’이라는 대형 업체의 계열사들입니다. 버스업체로는 워낙 대규모라, 홍보팀이 따로 있을 정돕니다. 하지만, 괜히 기자들 상대하다가 일이 더욱 나쁜 방향으로 커질 수 있으니, 아예 전화를 받지 않으면 됩니다. 그러면 회사의 명예를 지킬 수 있고, 애먼 직원을 바보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삼인성호(三人成虎)라는 고사성어가 있지요. 세 명이 모여서 입 맞추면, 없던 호랑이도 만들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3명이 아니라 몇 명인지 짐작도 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애먼 한 사람 바보 만드는 것, 일도 아닙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바보가 되어버리는 애먼 사람, 240번 버스 운전기사를 마지막으로, 더는 탄생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바보를 만들지 않으려면, 지금까지 알려드린 ‘바보 만드는 방법’을 정 반대로만 실행하면 되겠죠.

유상석 기자  listen_well@bbs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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