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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인공지능 시대, ‘나무아미타불’을 말하다
홍진호 기자 | 승인 2017.09.09 20:55

믿음이란 무엇인가? 종교는 무엇인가? 인간의 두뇌까지 기계로 대체되는 인공지능의 시대에, 현대인들은 과연 무언가를 온전히 믿을 수 있을까? 과학의 시대, 신 없는 시대, 종교는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가?

대학시절 지도교수였던 동국대 불교대학 김호성 교수는 최근 필자에게 ‘나무아미타불’ 육자명호를 큼지막하게 써주었다. 기획보도를 위해 만난 자리, 인터뷰에 앞서 스승은 내게 ‘나무아미타불’을 먼저 건넸다. 나무는 ‘귀의’를 뜻한다. 아미타불은 서방정토 극락세계를 관장하는 부처이다. 즉 나무아미타불은 아미타불에 귀의해 극락에 다시 태어나겠다는 서원이다. 출가도 했었고, 禪사상에도 밝은 종립대학 교수가 말년에 정토행자를 선언한 셈이다. 은사는 일본의 미학자 야나기 무네요시가 쓴 ‘나무아미타불’을 10년 동안 읽고 번역하고, 정토신앙을 공부하는 사이에 ‘앎’이 ‘믿음’이 되었다고 담담히 말했다. 아니 고백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 듯하다. 자신은 불교공부에 있어 유목민이었다며, 불교를 만나고 불교공부를 시작한지 30년 만에 이곳저곳 정처 없이 떠돌다 ‘나무아미타불’에 정착했다고 말했다. 이어 남은여생을 정토신앙 공부에 매진하겠노라 거듭 강조했다.

은사가 10년 간 매달려 책임 번역한 책 ‘나무아미타불’이 궁금했다. 모과나무 출판사에 들를 일이 있어서, 남배현 대표에게 청해 책 한권을 받아 읽었다. 여름휴가 전날 책 표지를 열고 절반을 읽고, 새벽에 읽어나 나머지를 읽었다. 대천 바닷가로 떠난 2박 3일 휴가지에서 줄을 치며 되새겨 읽었다. 정토신앙이 이렇게 깊은 의미가 있는지 미처 몰랐다. 종교와 믿음의 근원적 의미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되었다. 책의 주요 요지를 간추려 보았다.

① 붓다는 신인가? 그렇다면 아미타불은?

우선 믿음의 대상으로서의 붓다에 대해 되새기게 되었다. 붓다는 깨달은 자를 뜻한다. 우리가 믿는 부처님은 이를 성취한 역사적 인물이다. 2500여 년 전에 인도에서 태어나 깨달음 이루고 세상을 떠났다. 즉 우리가 믿는 부처님은 ‘생신불’이다. 역사적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남긴 마지막 가르침은 자등명, 법등명이다. 곧 자신과 진리를 의지하라고 설했다. 생신불로서의 부처님은 사바세계를 떠났지만, 법으로서의 부처님은 곧 역사적 부처님이 이 땅위에 오기 전에도, 성도를 이루고 떠난 후에도 영원하다. 불교에서 말하는 수많은 부처님은 법으로서의 부처님 즉 ‘법신불’이다. 아미타부처님 또한 온 우주를 비추는 빛과 같은 법으로서의 부처님이다.

②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면 왕생할 수 있는가?

아미타부처님은 이미 성불을 했지만 모든 중생을 극락왕생 시키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이를 이룰 때까지 정각을 미뤘다. 생신불로서의 부처님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즉 자력으로 수행을 하고 깨달음을 이뤘고, 그 방법을 설했다. 그렇다면 아미타부처님에게 귀의를 하는 염불을 한다고 왕생을 이룰 수 있는가? 앞서 법신불을 이야기 한 것은 이러한 물음에 대한 전제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 야나기 무네요시는 ‘나무아미타불’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모든 불교는 법이 중심이다. 법은 단순히 정지된 이체가 아니라 스스로 여러 가지로 현현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린다. 미타는 바로 그 가운데 하나이지만, 역사적 존재는 아니다. 오히려 역사일수 있게 하는 힘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타가 움직이는 세계는 실제로 중생 한가운데 있다. 중생은 현실역사에 존재하지만 만약 중생을 중생이게 하는 법체가 결여되었다면 중생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중생에게 작용하는 그 법체를 미타라고 부른다.”

즉 법신불로서 아미타부처님의 본원에 의지해 왕생을 하는 것은 법으로서의 부처님에 의지해 왕생을 구하는 것이다.

③ 성불과 왕생은 다른가? 같은가?

성불은 부처님이 되는 것, 깨달음을 이룬다는 뜻이다. 왕생은 아미타부처님이 관장하는 극락에 다시 태어나는 것을 뜻한다. 전자는 성불문, 자력신앙으로 불리고, 수행방법은 선이다. 후자는 정토문, 타력신앙으로 불리고 수행방법은 염불이다. 그런데 성불과 왕생모두 추구하는 것은 불이(不二)이다. 무명과 업에 의해 가려진 본래 부처를 밝히는 것이다. 즉 깨달음이다. 성불과 왕생은 결국 같은 의미이다.

④ 그렇다면 왜 정토신앙이 존재하는가?

성불과 왕생이 같은 의미라면 왜 정토신앙이 존재하는가? 일본의 호넨 스님이 종파로서의 정토종을 만들었을 때, 같은 의문과 반발이 있었다. ‘나무아미타불’ 책에서는 정토신앙의 근거 이유로 두 가지를 든다. ‘천상천하 유아독악’과 ‘말법시대’ 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악한 나와 부처님 법이 실현되지 않는 가장 나쁜 시대이다. 곧 가장 악한 나는 불이의 세상, 극락에 태어나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자력도로서의 성불은 사후 깨달음을 말하지 않는다. 지금 이 자리에서 수행을 통해 깨달음에 이룰 수 있다. 그러나 자력수행으로 깨달음에 이르지 못하는 범부는 법신불에 의지해 사후에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사상이 정토신앙이다. 이는 귀족 중심의 일본불교를 민중불교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⑤ 일본의 정토신앙 어떻게 발전했는가?

불교를 자력신앙의 성불문, 타력신앙의 정토문으로 나눈다면, 일본불교의 중심은 단연 정토신앙이다. 정토종 중에서도 진종은 일본 내 최대 종파이다. 일본불교에서는 왜 정통신앙이 발전한 걸까? 당시 혼란했던 시대상황과 민중불교에 대한 염원 등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지진과 태풍 등 자연재해가 많고 전란이 많았던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죽음에 대한 특유의 미의식이 작용한 것은 아닐까 여겨진다.

일본의 정토종은 호넨 스님에 의해 창종 돼, 이후 신란 스님이 진종을 거쳐 잇펜 스님의 시종으로 발전해 가며 사상적 깊이를 넓혀 갔다. 특히 일본 정토신앙은 평생을 절에도 집에도 머물지 않고 유랑을 하며 나무아미타불을 설파했던 잇펜 스님에 이르러 활짝 피었다고 ‘나무아미타불’ 책을 전한다. 잇펜 스님은 불상과 불화, 교리를 떠나 ‘나무아미타불’ 육자명호에 집중했다. 이에 대해 ‘나무아미타불’ 책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호넨 스님이 가르친다: 입으로 명호를 불러라, 그대의 왕생은 약속되어 있다.

신란 스님이 말한다: 본원을 믿어라, 그때 왕생은 결정된다.

잇펜 스님이 새로이 말한다: 왕생은 이미 나무아미타불에 성취되어 있다. 왕생하는 사람이 어떠하냐에 좌지우지되지 않는다.

잇펜 스님은 유랑을 하면서 ‘나무아미타불’ 육자명호와 정토신앙을 알렸는데, 길 위에서 만난 어떤 율사 스님이 부처님 경전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나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는 말을 하자 믿음에 대해 거듭 고민하고 아래와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고 한다.

“우리의 힘으로 왕생이 가능하지도 않고 우리가 남들을 왕생 시킬 수도 없다. 중생의 왕생은 이미 십겁 전에 아미타불이 정각을 이룬 그 찰나에 결정되어 있다. 믿음과 불신, 청정과 부정의 차별로 인해 왕생이 좌우되지는 않는다. 인간의 힘으로 왕생한다면 믿음도 필요하고 청정도 갖추어야 한다. 그렇지만 왕생은 ‘나무아미타불’ 그 자체에 있지 인간의 힘에 의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선과 악, 청정과 부정, 지혜와 우둔함. 믿음과 불신과 같은 차별이 마타의 본원을 방해할 수 있겠는가”

⑥ 나무아미타불의 의미는?

나무아미타불에서 나무는 귀의한다는 뜻이다. 즉 나무아미타불은 아미타부처님에게 귀의한다는 서원이다. 그런데 아미타부처님은 십 억겁 년 전에 이미 깨달음을 성취했지만 중생의 극락왕생이 이뤄질 때까지 정각을 미뤘다. 즉 나무아미타불 염송은 나의 극락왕생과 아미타부처님의 정각이 함께 이뤄지는 것이다. 범부가 극락왕생을 해야, 아미타부처님이 정각을 이루는 것이다. 어찌 보면 범부와 아미타부처님은 둘이 아니다. 또 이 같은 논리라면 아미타부처님은 이미 깨달음을 성취했기에 나의 극락왕생도 이미 이뤄진 것이다.

일본의 정토신앙의 사상적 깊이를 더했다는 평가를 받는 잇펜 스님은 집도 절도 없이 평생을 떠돌았다. 그야말로 풍찬노숙을 하며 ‘나무아미타불’을 설파하다가 입적했다. 원적에 들기 전에 자신의 모든 저서를 태워버리고, 제자들에게 이같이 유언을 했다.

“내 죽고 나면, 나의 문제(門弟)들은 장례의 의식을 행하지 말라. 들판에 내다버려서 짐승들에게 베풀어주라”

우리나라 불교계 일각에서는 염불과 정토신앙을 이야기 하면 타력신앙이라 하여, 선종에 비해 한 수 아래로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그런데 잇펜 스님의 생애와 사상, 제자들에 의해 전해지는 법문을 보면 그 어느 선사보다 선기가 충만해 보인다.

인간의 근육에 이어 인간의 두뇌까지 기계로 대체되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왔지만 아직 인간은 죽음을 정복하지 못했다. 탄생이라는 인간의 출발점과 죽음이라는 우리 삶의 마침표가 있는 한 나미아미타불 염송은 계속될 것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나무아미타불 육자명호를 밝힌 잇펜 스님의 법어를 끝으로 글을 마친다.

“과거 현재 미래를 꿰뚫는 명호에, 몸도 마음도 던져 넣는다면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왕생 그 자체이다. 임종을 기다려서 왕생하는가, 보통 그대로 왕생하는가, 핑계거리를 말하는 것도 망심의 인간이 하는 것이다. ‘나무아미타불’에는 임종도 없고, 평생도 없다. 항상 삼세를 꿰뚫는 진리이다. 내쉬는 숨은 들어오는 숨을 기다리지 않기 때문에, 지금 그대로의 일념을 명이 끝나는 시간이라고 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시각의 일념일념이 왕생이다”

홍진호 기자  jino413@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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