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득권을 내려놓으니 함께 행복해집디다.” 얼마 전 알고 지내던 우리 군의 한 장성분이 들려준 고백이다. 누구보다 아끼는 아들로 인해 얻어진 결론인데, 많은 걸 생각하게 만들었다. 사연은 이렇다.

몇 년 전 아들이 군 입대 전 술에 흥건히 취해 들어왔다. 평소 술을 안했던 아들, 몸을 흐느적대더니 “도와주세요”라고 말하며 고꾸라지더란다. 측은했단다. 잇따른 군대 내 사고와 불확실한 미래가 빚어낸 두려움이겠거니 싶어 아들을 위로하고 오랜만에 묵직한 녀석을 이부자리까지 옮겨줬다고 한다.

하지만 군 입대 후 아들의 태도는 돌변했다. 휴가 나올 때마다 원망의 말들을 쏟아냈다. “아버지가 군 장성인데 전방 근무가 왠 말이냐”, “하나밖에 없는 아들 잘못되길 바라느냐” 등등. 평소 청렴과 정직을 소신으로 여겨온 이 장성은 안타까웠다고 했다. 하지만 아들을 약하게 키우고 싶지 않아 매번 입단속을 시키며 다독였다. 그러다가 아들이 제대할 무렵 결국 아버지가 군 장성이라는 소문이 부대 내에 알려졌고 그때부터 반전이 일어났다.

아들이 고맙다는 말을 하기 시작한 것. 사실이 알려지고 군 동료와 상관들이 자신을 대견한 눈빛으로 보더라는 것이다. 말없이 함께 흙먼지 나는 연병장을 구르고, 냄새나는 화장실 청소를 함께 했던 이가 평판 좋은 군 장성의 아들이었다니 달리보아지고 신뢰가 생기더라는 말들이었다. 아들은 많은 동료와 상관들로부터 칭찬을 들으며 행복했다고 털어놨다.

은근 자기와 자식 자랑을 버무린 이야기. 하지만 그 결론에는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는 요즘 우리 사회의 가장 큰 화두 가운데 하나인 ‘양성평등’에도 그대로 적용시킬 수 있을 것 같다. 여성에 대한 사회적 배려가 많아지고 고위직 진출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사실 우리 사회 양성평등의 길은 아직도 멀었다. OECD 회원국 가운데 유리천장 지수가 여전히 밑바닥이고, 실제로 취재 현장에서 부딪히는 여성들의 지위도 크게 달라졌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남성들의 군입대와 가산점 폐지로 여성들의 입사가 빨라 역차별을 당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임금과 승진에서 차별을 받고 임신 출산에 따른 경력단절의 두려움도 겪어야 한다. 또 일.가정 양립을 이루기 위해 남성들의 배려아닌 배려(?)에도 목매야 한다.

이에 반해 가부장 시대를 지내오면서 이미 기득권이 몸에 배인 나를 포함한 남성들은 이를 잘 모르거나 모른 채 하기 일쑤다. 사실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는 남성의 권리라는 것이 원래는 한쪽 성의 희생이 전제된 것이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여성으로 사는 것은 고충이 크다. 새가 좌우의 날개로 날듯, 평등사회는 남성과 여성이 함께 동반 성장할 때 가능하다. 처음에는 불편하겠지만 이제 남성들이 조금씩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래야 모두가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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