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학교 동창을 만나거나 오래전부터 알던 지인들과 연락이 닿으면 주고 받는 말이 있다. “언제 밥 한번 먹자” “조만간 술 한잔 하자 ”...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과 같이 SNS 상에서 오랜만에 옛 친구를 만났을때도 서로의 안부를 묻고 직접 얼굴 한번 보자라는 말을 주고 받는다.

하지만 실제로 밥을 먹거나 술 한잔 하는 경우는 드물다. 어떤 친구는 실제로 밥 약속이나 술 약속을 정하자고 하면 즉답을 하지 않고 당분간은 약속이 꽉 차 있어 시간을 두고 정하자며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다. 형식적으로,인사 치레로 밥이나 먹자고 한 것뿐인데 상대방이 의외로 적극적으로 나오니까 무슨 다른 의도가 있는게 아닌지 의심하기도 한다. 들어주기 힘든 부탁을 하거나 돈을 빌려달라고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눈치다.

필자도 이런 경우를 적지 않게 경험한 편이다. 조만간 술 한잔하자고 했지만 몇 년째 하지 못한 경우, 옛 동창을 실로 오랜만에 SNS상에서 만났지만 실제로 만나기는 커녕 전화 통화 조차 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기자들이라면 출입처에서 이런 경험은 다 해봤을 것이다. 잠깐 차 한잔 하면서 이야기 좀 하자고 하면 특별한 이유가 있느냐, 혹시 무슨 취재가 있느냐하면서 잔뜩 경계 하는 경우 말이다. 그저 차 한잔 하면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나 나누자는 것인데 그야말로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달려드는 격이다. 

고등학교나 대학교 동창 모임도 늘 나오는 친구들만 나온다. 적어도 분기별로는 뭉치자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누군가 모임을 주선하고 총대를 매지 않는한 1년에 한 두 번 얼굴 보기도 힘든 동창 모임이 부지기수다. 모임에 나오지 않는 친구들은 생업이 바빠서,한가하게 친구들 만날 여유가 없어서 그렇다는 이유들을 댄다. 하지만 실제로는 잘나가는 동창이나 평소 좋아하지 않았던 친구를 동창 모임에서 만나는 것을 꺼려하는 심리가 깔려 있다.

국회에서 매년 열리는 국정감사장에서 여야 국회의원이나 장,차관들은 질의와 답변을 할 때 늘 상대방에게 “존경하는..”이라는 말을 쓴다. 하지만 실제로 국정감사에서는 막말과 고성이 오가고 상대방을 존경한다는 말 자체가 무색해지는 상황이 어김없이 연출된다.

정치인들은 소속된 당을 옮기거나 중대한 정치적 결심을 할 때 입버릇처럼 “나라와 국민을 위한 고뇌에 찬 결단”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를 곧이 곧대로 믿는 이들은 별로 없다. 자신의 정치적 계산이나 이득을 취하기 위한 행동으로 여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중에 넘쳐나는 한국인들의 심리 분석서를 보면 한국인들은 대체로 실제 행동과 속마음이 다르다고 한다.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자신의 저서에서 한국인들은 상대방 행동보다 의도와 정서를 우선시하는 심정(心情) 중심주의 경향이 강하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상대방의 순수한 의도까지도 우선 의심하고 본다. 겉으로 드러난 행동과는 다른 무엇인가가 상대방 속내에 들어있을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믿지 못하고 경계하다보니 자기 자신의 실체도 드러내려 하지 않는 이들이 많다. 주위를 둘러보면 허세와 체면에 집착해 자신을 포장하려는 이들이 넘쳐난다. 이에 대해 필자는 솔직하게 자신의 내면을 드러낼줄 아는 용기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배가 많이 나온 것을 부끄러워해 옷을 입을 때 최대한 배를 가리고 아무리 더워도 양복 웃도리를 잘 벗지 않는 필자의 행동도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얼굴에 씌워져 있는 가면을 벗어놓고 세상 앞에 당당히 섰으면 좋겠다. 필자도 예외가 아니다. 이제는 정말 솔직해지자. 이 세상은 가면 무도회장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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