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말에서 8월 초 여름 바캉스 시즌의 대목이 지나는 무렵에는 세상의 풍파가 대체로 잠잠했지만 이번 만큼은 매우 달라 보입니다. 북한 ICBM 도발 파장과 육군대장 부부 갑질 사건, 8.2 부동산 안정화 대책 발표 등의 메가톤급 뉴스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왔습니다. 일상 탈출을 꿈꾸는 이 시기에 마음 다급하게 하는 ‘뉴스 속보’와 자꾸 맞딱뜨린다는건 누구에게나 행복하지 않은 일입니다. ‘유례없는 무더위!’라든지 ‘해운대 100만 인파’ 기사가 메인을 장식하게끔 세상이 순리(?)대로 움직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 휴가철에 제일 안쓰러운 부류는 ‘기자’가 아닐까?”하는 자위마저 하게 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가 위기 속에서도 짐짓 세상일과 거리를 두며 온 국민에게 ‘쉴 권리’의 소중함을 일깨운 여름 휴가를 지켜냈지만 보통의 언론사 보도국 뉴스룸이 지도자의 ‘깊은 뜻’을 따르기에 요즘 벌어지는 사안의 무게는 과중합니다. 실상은 저도 일주일 여름휴가의 끝자락에 ‘숙제’같은 글을 쓰겠다며 노트북을 펼친 셈입니다. 걸음을 옮기기조차 힘겨운 바깥 더위에 이번만큼은 세상 일 잊고 에어컨 바람 밑에서 독서로만 시간을 보내자고 작정을 했지만 정치부 데스크의 불안한 마음은 자꾸만 뉴스로 시선을 돌아가게 합니다. 그래서 기왕 휴가때 쓰는 글, 휴가 기간 읽은 책에서 요즘의 시사적 상황과 연관된 두 내용을 뽑아내봤습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 사이에 오간 편지에서 노동자들을 대개 ‘미련퉁이’니, ‘상놈’이니, ‘멍청한 당나귀’ 따위로 부른 것은 그나마 양반이다. 예외적인 경우이지만 마르크스가 노동자 집회에서 참석해서 선동적 수사학과 현란한 지적 능력을 과시하며 연설하면 불쌍한 대중들은 무슨 말인지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중략) 훗날의 미국 내무장관 카를 슈르츠는 마르크스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그처럼 모욕적이고 참을 수 없는 오만함으로 가득찬 인간은 본 적이 없다” 젊은 시절의 친구였던 철학자 아르놀트 루게의 표현에 따르면 마르크스는 평생을 ‘오만과 분노에 취해 미친 듯이’ 외부 세계로 공격의 화살을 쏘아댔다“(만들어진 승리자들/볼프 슈나이더 지음, 219p)

   독일의 언론인이자 문화사 전문가인 볼프 슈나이더는 명성 뒤에 가려진 인물들의 이중성을 ‘팩트’를 기반으로 신랄히 폭로하면서 서문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백과사전에 등재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혐오스런 인간이 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급격한 산업화를 겪은 대한민국 백과사전에 올라있는 근,현대 위인들은 과연 어떨까요? 이 글귀 위로 박찬주 육군 2작전사령관(대장) 부부의 공관병 갑질 논란이 국방부 감사결과 대부분 사실로 드러났다는 기사가 오버랩됐습니다. 저자는 “유리한 환경과 탁월한 능력, 강한 목표 의식이 자기 중심적 태도와 냉혹함, 거만함, 교묘한 자기 포장 능력과 결합될 때 명성은 얻어진다”라고 단언하고 있네요. 지금 대한민국 지도층의 갑질은 어쩌면 박찬주 대장 부부의 경우가 특별하지 않을만큼 만연해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북한 전문가인 빅터차와 데이비드 강은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에서 개전 초기에 북한군은 서울을 향해 50만발 이상을 발사할 수 잇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상당히 높은 예상 수치지만 이를 5분의 1로 줄인다해도 결과는 어마어마하다. 이 경우 남한 정부는 남쪽으로 밀려내려오는 수백만명의 북한 주민들을 관리하는 동시에 주요 전투를 치러야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수도 이남에 배치해놓은 부대를 동원해서 아무리 국경을 단단하게 틀어막는다해도 이는 쉽지 않을 일이다...(중략) 남북한 두 나라의 오판은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한반도에 사는 주민들에게 엄청난 재앙을 가져올 것이다”(지리의 힘/팀 마샬 지음, 171p)

  지난 2일 린지 그레이엄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은 미국의 한 TV 방송사와 가진 인터뷰에서 북한 문제와 관련해 충격적인 말을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기 면전에서 전쟁 불사론을 펼치며 “수천 명이 죽더라도 거기(한반도)에서 죽는 것이지 여기(미국)서 죽는 게 아니다”란 말을 했다고 전했습니다. 트럼프는 원래 말이 거칠고, 그레이엄은 대북 강경론자란 점을 감안하더라도 예사롭게 들리지 않습니다. 이날 대한민국에서는 다주택자들이 집을 팔도록 하는데 초점이 맞춰진 고강도 부동산 대책이 발표됐습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부동산 투기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정부 의지는 확고하다"고 발언했습니다. 그러면서 ”8월 북핵 위기설은 미약하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김현미 국토부장관도 청와대 공식 페이스북에 인터뷰 영상을 올려서 “내년 4월까지 시간을 드렸으니 자기가 사는 집이 아닌 집들은 좀 파시라”고 말했습니다. 이들 기사는 하나같이 포털 사이트 뉴스 메인에 내걸렸고 기사마다 수천개씩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대부분 정부 정책을 응원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날 북한의 2차 ICBM 시험발사 이후 고조된 북핵 위기와 관련해서는 이렇다할 메시지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청와대는 문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전화통화를 휴가 이후로 연기한데 대해 “대통령이 의제도 없는데 무조건 통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습니다. 오늘 문재인 대통령은 휴가에서 복귀했고 때마침 트럼프는 17일간의 휴가에 들어갔습니다. 서울 강남의 부동산 중개업소들도 한결같이 문을 걸어잠그고 여느 해보다 긴 여름 휴가를 떠났습니다. 폭염 속에도 거실 에어컨 전원을 맘대로 켜는데 익숙치 않은 서민들은 급격한 탈원전으로 혹여 전기요금이 오르지 않을까 걱정이지만 뉴스는 도통 해답없는 소식만 전하고 있습니다. 뉴스의 손아귀를 벗어난 정녕 자유로운 휴가를 꿈꾸지만 다음을 기약해야겠습니다./이현구 정치외교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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