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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주한미군 기지의 문화재 보존 문제를 살펴보는 기획보도 세 번째 순서입니다.

용산 기지엔 과거 ‘일본군 충혼비’로 사용됐지만, 해방 후 한국전 전몰자 추모비로 바뀐 ‘미군 충혼비’가 있었습니다.

용산 기지 백년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대표적인 문화재 가운데 하나인데, 정부가 충혼비의 평택 반출을 허용한 것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보도에 박준상 기자입니다.

미 8군 전몰자 기념비(김천수 용산문화원 향토연구원 소장)

 

서울 이태원 차도를 가로지르는 구름다리를 넘으면 만날 수 있는 용산 미군기지의 북쪽 땅 메인포스트.

미 8군 사령부가 위치한 이 곳엔 최근까지 한국전쟁 당시 희생된 미군들을 추모하는 ‘미군 충혼비’가 있었습니다.

비석이 세워진 오각형 탑신을 중심으로 웅장한 7개 돌기둥을 두른 충혼비는 기지 내에서도 역사적 가치가 뛰어난 문화재로 꼽혔습니다.

당초 일본군 주둔시절, 만주사변과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에서 숨진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일본군 충혼비’였기 때문입니다.

<인서트1/ 신주백 연세대학교 HK연구교수>
“위령비의 애초의 출발점은 1935년 일본군 78연대 사망자들에 대한 위령비로 출발하는 건데, 기단하고 둘레에 있는 기둥석은 그 때 당시 것입니다. 충혼비는 엄밀히 말하면 미군과 일본군의 역사가 동시에 숨겨져 있는 기억의 공간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일제 침략의 상징이자 용산 백년사를 집약한 유물로 꼽히는 ‘충혼비’는 미군이 기지 이전을 시작하면서 평택으로 반출됐습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미군은 우리 정부에 충혼비 등 문화재 68점의 평택 반출에 관한 의사를 물었고, 문화재청은 56점에 대해 허가를 내줬습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충혼비 반출과 관련해 “전문가 조사를 마쳤다”면서 “미군의 역사성에 더 관련이 있기 때문에 평택에서 미군이 유지 관리하는 것이 맞지 않느냐는 점에서 판단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문화재청이 ‘충혼비’를 미군의 역사로만 인정한데 대해 적절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인서트2/ 김천수 용산문화원 향토 연구원>
“물론 미군의 역사에서도 중요해요. 다 인정하지만, 한번만 논의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물며 기념비 하나도 이런데 130여개 건물, 공간의 역사성, 장소성을 어떤 사람이 어떻게 다 판단할 수 있을까요.”

당초 국토교통부는 정부 주도의 공원 개발을 계획했다기 여론의 뭇매를 맞고 나서야 뒤늦게 의견 수렴에 나섰고, 다음 달 용산의 ‘역사, 문화 보존’을 주제로 시민공청회를 열 계획입니다.

그러나 이미 관 주도로 용산 기지의 문화재들을 솎아내고, 중요 문화재들이 다 사라진 마당에 의견 수렴이 무슨 소용이냐는 비판이 커지고 있습니다.

정부의 성급한 결정과 무분별한 판단으로 용산 기지의 역사적 흔적과 가치있는 이야기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BBS 뉴스 박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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