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데도 가지 않기’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글을 쓰는 에세이스트 피코 아이어의 책 ‘여행하지 않을 자유’의 머리말 소 제목이다. 영국에서 태어나 캘리포니아와 일본을 오가며 활동을 하고 있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부터 발리, 엘살바도르 등 지구를 종횡하며 살던 저자는 문득 매일 매일이 짜릿한 삶에서 떠나 고요한 내면을 들여다보기 위해 ‘아무데도 가지 않기’를 실천했다고 한다.

그의 책은 척박한 오지에서 참선을 하며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던 레너드 코헨과의 만남에서부터 시작된다. 지난해 작고한 레너드 코헨은 시인으로 출발해 소설가와 영화배우, 가수로 큰 성공을 거뒀다. 레너드 코헨은 1935년 캐나다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맥길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 했으며, 이후 시인과 소설가로 차례로 등단했다. 그는 30대에 음악활동을 시작해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그만의 서정적이고 문학적인 가사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특히 코헨은 오랫동안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로 꼽혀왔으며,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밥 딜런은 코헨이 가사 뿐만이 아니라 작곡에 있어서도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극찬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I am your man’ 이라는 곡이 그의 이름보다 더 잘 알려져 있다.

생전에 코헨은 유대인이지만 불자로 더 유명했다. 피코 아이어의 책에는 일본 선원에서의 그의 법명은 ‘지칸’이었으며, 그는 7일 밤낮의 대부분을 휑한 선원에서 참선에 몰두했다고 적혀있다. 레너드 코헨은 피코 아이어에게 “좌선은 지구에서 61년 동안 살며 알아낸 ‘진짜 심오한 즐거움’이었다”고 말했다. 세계 적인 유명가수로, 세속적인 성공의 정점을 맛본 레너드 코헨은 “내가 뭘 더 하겠습니까?”라고 저자에게 되물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참선을 하는 지금의 생활이 다른 무엇보다 사치스럽고 호화로운 선택지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흔히들 인생은 여행이라고 하고, 국적을 떠나 가수들의 노랫말에서는 그 어떤 문학보다도 더 큰 울림을 받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스웨덴의 천재 DJ로 불리는 아비치의 노래 ‘Wake me up’을 좋아하는데, 인생과 여행이라는 주제와 잘 어울린다. 가사의 일부는 이렇다.

“세차게 뛰는 심장에 이끌려 어둠속에서 길을 찾았지, 내 인생이 어디서 끝나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어디서 출발했는지는 알아. 사람들은 내가 망상에 사로잡혀 있고 인생을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리다고 하지...그러니 모든 것이 끝났을 때, 내가 더 현명해지고 나이가 들었을 때 깨워줘. 지금까지 난 나 자신을 찾아 헤맸는데 내가 길을 잃어버린 지조차 몰랐던 것 같아” (Feeling my way through the darkness, guided by a beating heart. I can’t tell where the journey will end, but I know where it start. They tell me I’m too young to understand. They say I’m caught up in a dream...So wake me up when it’s all over. When I’m wiser and i’m older. All this time I was finding my self, and I didn’t know I was lost.)

불자가수로 유명한 장미화 씨의 노래 ‘서풍이 부는 날’도 인생과 여행이라는 주제에 더없이 어울린다. 가사는 이렇다.

“어느 날 인가 서풍이 부는 날이면, 누구든 나를 깨워주오. 무명바지 다려 입고 흰 모자 눌러쓰고 땅콩을 주머니에 가득 넣어 가지고 어디론간 먼 길을 떠나고 싶어도 내가 잠들어 있어 못가고 못 보네. 그래도 서풍은, 서풍은 불어오네. 내 마음 깊은 곳에 서풍은 불어오네.”

생명나눔실천본부가 동국대 일산병원에서 열었던 환우 콘서트에서 장미화 씨의 열창을 듣고 가사를 찾아 그 뜻을 음미하며 한동안 즐겨 들었다. 물론 예전에도 ‘서풍이 부는 날’을 현장에서 몇 번 들었는데, 유독 그때 그 순간에 그 의미가 가슴속에 남다르게 전달되었고, 노래를 듣고 한동안 “내가 잠들어 있어 못가고 못 보네”를 화두처럼 안고 살았다.

여름 휴가철이라 모두들 들떠있다. 물론 나도 그렇다. 물론 필자는 피코 아이어나 레너드 코헨처럼 ‘아무데도 가지 않기’나 ‘참선’을 하면서 휴가를 보내지는 않았다. 지난달에 본가 식구들에 아내와 아이들까지 7명의 대가족을 이끌고 일본 벳부로 2박 3일 동안 짧은 1차 휴가를 다녀왔다. 패키지 온천여행을 다녀오겠다는 부모님을 설득해 직접 가이드를 자처하고 나섰다. 여러 사이트를 돌아다녀 저렴한 비행기 표를 샀고, 요즘 부정적인 보도가 많은 세계적인 공유경제 숙박사이트를 이용해 숙소를 예약했다. 본격적인 휴가 전이라 1인당 왕복 20만원에 비행기를 예약했고, 벳부 시내의 2층 단독주택을 2박에 우리나라 돈으로 약 30만원에 빌렸다. 집을 통째로 빌린다면 공유숙박도 괜찮은 것 같다. 일어를 하는 아내가 결제 전에 집주인과 국제통화를 한 것을 제외하고는, 영어로 된 안내서에 따라 집주인과 어떠한 연락도 없이 숙소에서 잘 지냈다. JR 패스가 아깝다며 아내가 유후인을 2번이나 방문하면서, 한군데 머물러 온천을 하고자 했던 나와 갈등을 빚었지만 말이다.

불교에서는 근기에 맞는 수행을 강조한다. 일상에 고요히 머물러 내면을 들여다 볼 수도, 적극적으로 수행을 할 수도, 가까운 이들과 여행을 하던지, 혹은 그 무엇을 하든, 인생이라는 여행에서 길동무들과 지금 이 순간을 행복하게 지낸다면 그걸로 족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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