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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내용 인용시 BBS 시사프로그램 <전영신의 아침저널>이라는 출처를 밝혀주시길 바랍니다**

□출연 : 정우스님 (서울 구룡사 회주, 조계종 3대 군종특별교구장)
□진행 : 전영신 기자
□프로그램 : BBS 아침저널 07월27일(금) 07:00~09:00(2시간)
□주파수 : 서울 FM 101.9MHz. 인천 FM 88.1MHz. 부산 FM 89.9MHz. 대구 FM 94.5MHz. 광주 FM 89.7MHz. 춘천 FM 100.1MHz. 청주 FM 96.7MHz. 진주 FM 88.1MHz. 포항 FM 105.5MHz. 창원 FM 89.5MHz. 안동 FM 97.7MHz. 속초 FM 93.5MHz. 양양 FM 97.1MHz. 울산 FM 88.3MHz. 강릉 FM 104.3MHz. 

[인터뷰 내용]

전영신 : 대한불교조계종 제 3대 군종특별교구장으로서 소임을 마치신 정우 스님 모셨는데요. 군 포교에 헌신해 오셨던 그 동안의 소회에 대한 이야기들 나눠보겠습니다. 구룡사 회주이신 정우 스님 스튜디오에 직접 모셨습니다. 스님 안녕하십니까?

정우 스님 : 반갑습니다. 

전영신 : 비 오는 날 이른 시간인데 이렇게 함께 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정우 스님 : 별 말씀을요.

전영신 : 아침 저널 애청자 여러분들께 인사 한 말씀 해 주시죠.

정우 스님 : 저도 서울에서는 101.9 채널을 늘 맞춰놓고 있고, 요즘은 IPTV 텔레비전도 보고 있고, 아까 말씀한 것처럼 만공회에도 동참하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전영신 : 예 감사합니다. 자 4년의 임기를 마치시고 어제 이임식을 하셨죠? 선묵 혜자 스님께서 후임을 맡게 되셨는데, 그 동안의 소회가 어떠십니까?

정우 스님 : 엊그저께 소임을 맡은 듯싶었는데 벌써 유수 같은 시간은 4년이 되었고 최선을 다 하지는 못했지만 군 불교를 위해서 최선을 다 하려고 노력을 했던 4년이 아니었는가 생각됩니다.

전영신 : 스님께서는 군과의 인연은 어떻게 맺게 되셨나요?

정우 스님 : 나도 대한민국 국민이니까 73년도에 군에 가서 3년 정도 복무를 했고, 그 때 사병으로 군에 갔지만 그때는 법사님들이 몇 분 계시지 않아서 26사단에서 두 곳에 법당을 세우고 열심히 거기서 포교활동을 하다가 제대를 했습니다. 지금도 그 법당이 그대로 있습니다.

전영신 : 그렇습니까? 어느 어느 법당을 세우신 건가요?

정우 스님 : 호국 황룡사와 호국 일월사라는 절이 26사단에 양주 쪽에 있습니다.

전영신 : 그리고 혹시 군 장병들에게 각별한 애정을 갖게 되신 계기가 있으실 것 같은데요?

정우 스님 : 그런 것은 아니지만 모두가 평등하게 대해야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는 6.25 전쟁을 통해서 분단되어 있기도 하고 또 열악한 환경에 노출되어 온 산악지대의 철책선도 있을뿐더러 얼마나 저 쪽에서 하고 있는 것이 불완전하고 불확실합니까? 젊은 청년들하고의 함께 만남, 또 부처님 가르침이 늘상 내 생각에는 비타민적인 역할, 윤활유 역할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있어서 함께 해왔습니다.
전영신 : 병영 생활을 하면서 부처님 가르침을 만난다는 게 군 장병들에게는 비타민 같은 역할을 많이 할 것 같습니다. 스님께서는 오늘 아침 저널에 비타민이 돼 주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저희가 사실 스님이 나오신다는 예고 방송을 안 했거든요. 그런데 스님에 대한 이야기를 올려주신 분들이 계세요. 오시기도 전에, 8시 9분에 올라온 사연인데요, 4329님께서 정우 스님 보면 참 재미있습니다. 정우 스님 항상 건강하시고 승승장구 하십시오 이런 문자를 미리 남겨주셨고요, 5111님께서도 정우 스님 그동안 정말 자비 많이 보여주셨습니다. 부디 건강하시고 이제는 좀 쉬시고 혜자 스님께 책임 뒤로 하시고 쉬셨으면 좋겠습니다 라는 걱정의 문자도 보내주셨네요.

정우 스님 : 고맙습니다.

전영신 : 또 4959님께서 정우 큰스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삼배 올립니다. 불교 방송 감사합니다. 용인 태빈 불자 올림. 또 이런 사연도 방금 보내 주셨네요. 자 스님 지난 4년의 임기 동안요, 참 많은 일이 있었을 텐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시다면 어떤 부분을 꼽으시겠습니까?

정우 스님 : 그것은 아마 남북공동경비구역인 JSA에, 거기가 고려 시대의 수도이기도 했지만 개성이, 6.25때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곳이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 유엔군이나 한미연합사나 중립국이나 이런 것이 있어서 그 곳에다가 작년에 16개국 참전 국가의 수 많은 희생자들, 숭고한 희생을 통해서 전사하신 분들의 위패를 모시면 좋겠다 해가지고 절을 짓고, 고려 건축의 맞배집으로 지어서 16개국 하고 우리 국군, 경찰, 민간 희생자, 사망자들, 그 다음에 학도 의용군 그렇게 해 가지고 위패를 아주 장엄하게 잘 모셨습니다. 

전영신 : 남북공동경비구역 JSA에 무량수전을 세우신 것은 정말 의미가 큰 것 같은데요, 어떤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세요?

정우 스님 : 제가 출가한 이후에 많은 일들을 했다고 주변에서 칭찬도 하고 찬사를 받기도 하는데 어쩌면 불교와 인연 맺은 대한민국의 한 국민으로서 그런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값지고 소중한 인연, 보람된 인연, 또 그 때 희생된 그 분들이 안 계셨더라면 대한민국이 어떻게 지금의 민주주의가 될 수 있으며, 지금 대한민국이 어떻게 건재할 수 있었을까 싶으면 그 분들에 대한 값진 희생을 우리는 항상 기려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전영신 : 그런데요 이 비무장지대에 군 법당을 신축하기 까지 쉽지가 않으셨을 것 같은데요?

정우 스님 : 그런데 내 땅에다 짓는 것처럼 아주 수월하게 빠른 시간 안에 됐어요. 처음에 작년 1월달에 1사단 지역에 부대 방문을 해 가지고 월동기에 병사들에게 핫팩을 매년 제가 전달을 했었는데, 몇 십만 개씩, 그 때 이제 1사단에 방문했다가 1사단 신병교육대에서 훈련병들하고 자장면 공양 하고, 돌아간 OP에 가가지고 북한 정황도 이야기를 듣고, 또 OP에다 북 카페도 하나 해드렸어요. 동부 전선에서 서부 전선까지 컨테이너를 개조해서 

전영신 : 그건 군 장병들이 이용할 수 있겠네요? 굉장히 좋아할 것 같은데.

정우 스님 : 그렇죠. 산 언덕배기에 있는 OP니까 거기에 있는 병사들, 소대원 중대원 들이 음악도 듣고 책도 보고 담소도 나눌 수 있는 그것을 전달하고. 그러면서 이제 판문점으로 내려와서 거기를 방문 했다가 거기 부대장이 우리도 법당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법당이 막사를 개조해 가지고 법당은 있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생각이 다른 방향으로 간 것이 지금 JSA에 무량수전을 세우고 평화의 종을 달고 하게 된 계기가 되었어요. 

전영신 : 스님의 원력과 부처님의 가피가 있어서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기억에 남는 부분이 제가 여성이라서 그런지 몰라도요, 창군 이래 최초의 여성 군종 장교가 탄생을 해서 당시에 명법 스님께서 군종 장교가 되셨고 그 이후에 많은 비구니 스님들께서 많지는 않으시지만 한 네 분 정도 되시죠? 군종 장교에 임관이 되셨잖아요? 그 당시에는 사실 불교나 천주교, 개신교, 원불교 통틀어서 처음으로 불교에서 첫 여성 군종 장교가 탄생을 했던 거죠?

정우 스님 : 그렇죠. 그것은 국방 정책에 의해서 평등을 이야기 하고 있고, 실질적으로 여성들도 군에서 많이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제일 먼저 출발점을 가지게 된 것이고, 지금 네 명의 스님들이 어제 그 스님들이 내 위임식에 또 혜자 스님 취임식에 전체 군종 장교스님들이 왔었으니까 함께 했습니다.

전영신 : 비구니 스님으로서의 군종 장교의 역할은 어떻습니까? 

정우 스님 : 그런데 장단점이 있겠지만 어머니 같은 역할? 누이 같은 역할? 이런 것들을 하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전방 28사단에 그 다음에 간 균재 스님이 있었던 일인데, 그때 목침 지뢰 사건이 있고 또 북한에서 포를 쏘고 했을 적에 그때 비상이 걸려있었는데, 그때 여군 간부들이 막상 비상이 걸렸는데 군 안에 출퇴근을 하니까 군 안에 숙소가 여의치 않고 위치를 지켜야 될 때 법당으로 여군 간부들, 장교들, 하사관들을 그 쪽으로 조치를 해서 저녁에 함께 있고 또 아침에 공양도 준비해가지고 너무 칭찬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전영신 : 아 그런 일도 있었군요. 지금 목침 지뢰 사건을 이야기 하셨는데, 군대 내에서 여러 가지 안타까운 사건 그런 기억도 조금 있으시죠?

정우 스님 : 그렇죠. 그래서 1년에 한두 번씩 국군 교도소도 가서 현장의 가해자들도 만나고 특히 불교에 귀의한 병사들은 수계식이나 법회에 참석을 해가지고 같이 담소를 나누기도 하고 그런 적도 있습니다.

전영신 : 군 생활이 예전보다는 많이 개선이 되고 있다고는 하는데요, 여전히 군인들이 군대 생활을 못 견뎌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던지 이런 안타까운 일들이 계속 되고 있는데, 스님께서 보시기에 이런 문제들은 왜 생긴다고 보십니까?

정우 스님 : 그게 개도국에서 선진화 되어가는 물질의 풍요 속에 노출되어있는 사람들의 병폐가 아닌가 싶은데 사실은 60만 명이라고 하는 대군이 움직이고 젊은이들이 공동체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군인들이 일어나는 그런 자살건 같은 것은 아주 미미하다고 보거든요? 사회에서는 1년에 얼마나 그 숫자가 많고 교통사고보다도 훨씬 더 숫자가 많은데, 군에서는 그렇지 않잖아요? 다만 그것이 바깥으로 한 건씩 일어나는 것을 노출시켜서 그럴 뿐이지 그 많은 젊은이들이 거기서 생활하고 있는데. 그런데 가장 (심한) 것은 인터넷, 사이버, 현실, 그 다음에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바뀌는 거기에서 일어나는 혼돈, 이런 것들도 젊은이들한테 어렵게 하는 것이 아닌가.

전영신 : 그래서 군대 내에서 종교의 역할의 더 중요해지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실제로 군종 교구가 그런 역할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정우 스님 : 그래도 1년이면 한 12만 명 정도가 불교에 귀의해서 수계식에도 참여하고. 물론 거기에는 맛있는 햄버거나 또는 자장면이나 초코파이나 이런 것들도 가미되지만.. 이것도 하나의 방편이니까요.

전영신 : 맞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와서 불교에 귀의하게 되면 또 보람 있는 일이죠. 제 3대 군종 특별 교구장으로서 소임을 마친 정우 스님 만나고 있습니다. 이제 4대 교구장으로 혜자 스님이 임기를 시작하셨는데 특별히 당부하고 싶은 부분이 있으실 것 같은데요?

정우 스님 : 무거운 등짐을 혜자 스님한테 넘겨준 것 같아서 종간에서는 4년만 더 저에게 소임을 봐달라는 여러 각도에서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이제 나이도 나이이고 그 말고도 해야 할 일들이나 산재해 있는 부처님 일들이 여러 가지가 있어가지고 소임을 내려놨습니다. 그러나 혜자 스님은 2006년, 2007년부터 한 10년 동안 108산사 순례팀을 이끌면서 평화의 불을 밝히고 또 그때마다 사찰에서 초코파이를 순례자들이 모아가지고 준 것을 우리가 전부 기록으로 남겨놨는데 그것이 10년 동안 12억 원어치 초코파이를 우리에게 주어서 그 초코파이를 격오지, 최전방 부대에다가 골고루 골고루 나누어서 주었던 그런 인연도 있고. 논산 훈련소 할 때 물론 저도 통도사 주지 소임을 할 때 함께 했지만 모두 모두가 함께 해가지고 판문점에도 함께한 것처럼 혜자 스님도 거기에 동참해서 소중한 인연들을 지었던 분이기 때문에 잘 할 수 있으실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영신 : 이제 군종 특별 교구장으로서의 소임을 마치셨는데요, 다음은 어떤 분야에 스님께서 관심을 갖게 되실지 이것이 상당히 궁금합니다. 요즘 문화예술계 사업 관련해서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계시죠?

정우 스님 : 활동을 하는 것은 아니고 문화 예술이 종교하고 같은, 행정부도 문화관광체육부에 종교도 거기에 포함되어 있고 예술계도 포괄적으로 포함되어 있는데, 80년대 초반에 님의 침묵을 통해서 연극인들하고 깊은 인연을 맺은 적이 있습니다. 몇 개월 동안 만해 한용운 스님... 그때 아! 이렇게 메시지도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 있겠다 해가지고 형제같은 가족 구성이라면 형편이 조금 나은 종교가 연극계라고 하는 예술을 조금만 지원하고 관심 가져도 서로 상생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함께 만든 극단이 87년도에 구룡사에서 만든 극단이 신시컴퍼니입니다. 

전영신 : 신시컴퍼니요? 굉장히 많은 작품을...

정우 스님 : 그 이름은 잘 몰라도, 그 이름은 잘 모르는 분이 있어도 예를 들어 맘마미아, 아이다, 시카고, 어제도 이임식 하고 그 틈새 저녁에 가가지고 조정래 선생의 소설, 장편 소설 아리랑을 우리가 예술의 전당에서 어제 아래 시작했는데, 어제 원로들이 많이 오셔가지고 함께 공연 시간을 가졌습니다.

전영신 : 그렇군요. 스님께서 청취자분들을 위해서 특별히 아리랑 공연 관람권을 저희에게 주신다고 하셔 가지고요. 저희 청취자 여러분들에게 선물로 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정우 스님 : 그건 극단에 이야기를 해봐야겠는데. 알았습니다.

전영신 : 스님께 지금 문자 메시지가요, 엄청나게 올라오고 있어서 안 주시면 안 될 것 같아요. 2109님 정우스님 논산 훈련소 법당 수계식에 두 번이나 갔다 왔습니다. 그렇게 큰 법당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하셨고요. 4471님께서 스님께서 속세를 보시면서 가장 안타까우셨던 점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이런 질문을 주셨어요.

정우 스님 : 그런데 승속이 둘이 아니에요. 맑고 깨끗함이나 어둡고 침침함이 둘이 아닌데 그것을 자꾸 우리가 혼돈하고 상황 전개가 그렇게 되어서 그렇지 안타깝기고 말하면 안타깝지 않은 것이 어디 있고 문제 삼으면 문제 안되는 문제가 어디 있나요? 그러나 문제는 반드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점이 해결될 수 있는 것이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엉클어진 실타래를 풀어가듯이, 옛날 어머니들 오늘처럼 비 오는 날이면 콧노래 부르면서 눈물바람 하시면서 지나온 시간 회상하면서 툇마루에 앉아서 엉클어진 실을 풀어서 두루마리로 말아서 쓰는 그런 모습처럼 인생은 그렇게 한올한올 풀어야 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전영신 : 스님 너무 울림이 있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오늘 이렇게 소중한 시간 내주셨는데요, 어느덧 벌써 마무리를 해야 될 시간이 됐습니다. 저희가 준비한 질문들 반도 지금 못 드렸는데요, 나중에 한 번 더 모실 수 있는 기회를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끝으로 청취자분들께 당부의 말씀 한 말씀 해주시죠.

정우 스님 : 저는 대다수가 불교에 관심이 있거나 인연이 있는 분들이 불교방송, BBS를 청취한다고 생각이 되어지는데, 신심이라고 하는 맑고 깨끗한 영혼을 오염시키지 말고 항상 발심해서 마음을 일으켜 가지고 한 걸음 한 걸음 무소뿔처럼 나아갈 수 있고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그런 삶을 살 수 있도록 진지한 현장의 우리 모습으로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전영신 : 예. 스님 오늘 이렇게 자리 함께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스님.

정우 스님 : 고맙습니다.

전영신 : 구룡사 회주 정우 스님 오늘 스페셜 게스트로 만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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