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새 식구를 들였습니다. 이 ‘거사(巨事)’는 순식간에 진행됐습니다. 주말 아침 ‘질풍노도’의 사춘기 자녀들을 힘겹게 깨우던 아빠는 별안간 “동물을 키우자”고 제안합니다. 부모 말이라면 늘상 시큰둥하던 두 딸은 웬일로 즉각 반응합니다. “지금 당장 강아지를 보러 가요!” 근처 애견샵에 진열된 갓난 새끼견들의 귀여움은 마음 급한 아이들에게 고민할 틈을 주지 않습니다. 인터넷을 뒤져보는 최소한의 요식 행위도 생략된채 생후 2개월된 암컷 말티즈가 아이들에게 낙점돼 가방에 담겨집니다. 아빠가 처음 애견 아이디어를 꺼낸지 겨우 두시간. 집 거실 중앙은 울타리가 쳐진 ‘셋째딸’의 공간으로 탈바꿈했습니다. 평소 개나 고양이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아빠는 급작스레 찾아온 ‘반려견 뒤치닥꺼리’의 고통이 내심 걱정되지만 가정의 문화가 바뀔 것이란 기대감이 그런 걱정을 압도합니다. 얼마 전 회사 조회 시간때 강사가 했던 말이 귓가를 계속 맴돌기 때문입니다.

  “사춘기 딸 셋과 함께 있는건 지옥인데, 막둥이를 바라보면 천국입니다” 뒤늦게 생긴 넷째 딸을 키우고 있는 성폭력 전담강사는 회사 조회 시간에 자신의 요즘 생활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사춘기 자녀들과 전쟁을 벌이며 살아가는 그의 모습에 아빠는 자신의 처지가 오버랩되면서 요즘말로 격하게 와닿습니다. 그때부터 머리 속에는 ‘막둥이’란 단어가 떠나지 않습니다. 그러던 중 강아지를 새 식구로 맞이하기 전날 아빠는 전격적인 결단을 내립니다. 저녁 무렵 초등학교 6학년인 둘째딸은 갑자기 “친구가 다니는 태권도 학원에서 다음주 워터파크로 1박2일 물놀이를 가는데 따라가겠다”고 ‘통보’했습니다. 아빠는 뻐근해진 뒷목을 만지며 “위험해서 안된다, 그리고 친구 학원 행사에 네가 왜가냐?”며 고함을 꽥 질렀고, 아이는 “간다고 벌써 얘기 다했다”고 악다구니를 쓰며 달려듭니다. 결국 싸움은 엄마와 언니까지 합세한 다자간 전쟁으로 커졌고, 서로간에 높아진 언성으로 아파트 옆집에 소음 피해를 주는 일이 또다시 벌어졌습니다. ‘평화’를 위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고, 아빠는 성인이 된 후 단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견주’가 되는 길을 선택하게 됩니다.

  그로부터 1주일. 애기 강아지가 거실을 점령한 가정에는 작지않은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가족간에 부딪칠 때 불쑥불쑥 터져나오는 고함 소리가 현저하게 잦아들었습니다. 며칠 전 두 딸아이는 에어컨 틀어놓은 거실에서 씩씩대며 말다툼을 하다가도 “공쥬(강아지 이름)가 깜짝 놀란다”며 안방으로 들어가 싸우더니 덥다면서 금방 나와 버렸습니다. 수업을 마치면 늘상 휴대폰을 꺼놓은채 친구들과 어디론지 사라져버려 직장생활하는 아빠,엄마의 애간장을 태우던 둘째 딸은 방과 후 일단은 어김없이 집으로 들어옵니다. 아무리 깨워도 꼼짝하지 않아 아침마다 화를 돋우던 두 녀석의 기상 태도도 막둥이를 밥 먹이고 응가 치우는 역할이 생기자 일순간 달라졌습니다. 물론 이런 달라진 모습이 과연 언제까지 유지될지는 지켜볼 일입니다. 반짝하고 말 수도 있을테지요. 하지만 가족 구성원들에게 공통의 관심사가 생겼고, 그 매개체를 중심으로 서로간의 대화가 늘어나고 부드러워진 것은 일단 소중한 변화이자 경험입니다. 사춘기를 겪는 두 아이와 ‘경상도 출신 아빠’가 대결하는 전장 속에서 오랜만에 맞은 가정의 ‘평화 무드’가 한참 더 지속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불현듯 찾아온 새끼 강아지가 안겨준 ‘평화’와 그로인한 정신적 행복을 만끽한 1주일간의 소회입니다./이현구 정치외교부장

 

 

저작권자 © BBS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