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등 엄중한 국제정세 속에서도 우리들 각자는 일상의 업무처리에 여념이 없는 것 같다. 설마 남쪽을 향해 핵미사일을 쏘겠나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나 혹시 쏠지 모르니 대비해야 한다는 사람이나 이래저래 다른 일들로 바쁜 것은 마찬가지인 듯하다. 회사는 수립한 계획에 따라 업무를 밀고 나가고, 직원들은 그에 맞춰 업무 처리하기에 바쁘다.

첨단 과학기술이 지배하는 현대는 초스피드 시대다. 속도에서 뒤지면 경쟁에서 밀리기 십상이라 생각하는 우리는 ‘빨리빨리’에 익숙하다보니 어느 순간 ‘바쁨’이라는 정신의 교도소에 갇혀버리고만 듯하다. 특히 정보화 시대를 맞아 물밀듯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는 ‘과다의 세상’을 산출했고, 우리는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신세가 된 것 같다.

상황은 갈수록 복잡해지고 예측불가능성도 높아져 우리의 시각(視覺)은 더욱 짧아지고 좁아진다. 주변을 제대로 살펴볼 틈도 부족하고 자신을 돌아볼 여유는 더더구나 부족하다. 호모 사피엔스의 뇌가 3만 년 전 수렵채집 시대에 적응한 이후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니,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수많은 정보들이 뇌의 처리용량을 훌쩍 넘어버리는 건 당연한지도 모른다.

인류가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방황하게 된 원인 가운데는 막연히 품어온 발전 내지 진보에 대한 환상도 한 몫 한듯하다. 좀 더 편하기 위해 도구를 활용했고 그 덕분에 다른 종(species)이 할 수 없는 찬란한 문명을 이룩했지만 그 이면에 도사리고 있던 부작용에 시달리게 됐다. 문명의 이기가 노동의 부담을 덜어주리라는 기대는 착각이었다. 농업혁명을 통해 작물을 재배하면서부터는 하루 노동시간이 10시간 정도로, 이전 수렵채집 시대에 비해 두 배 이상 크게 늘었다고 한다. 최초의 뼈아픈 실수였지만 되돌릴 수는 없었다.

산업혁명으로 기계가 일을 대신하니 사람이 쉴 수 있을 줄 알았지만 결과는 반대로 나타났다. 일거리를 잃은 농민들은 일거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들었고, 하루 종일 저임금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그나마 일거리를 갖지 못한 이들은 도시빈민으로 전락하기도 했다. 기술발달에 힘입어 전체적인 생산성은 높아졌다지만 그 과실을 함께 공유하는 데는 크게 미흡하다.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 역시 녹녹한 환경은 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단기적인 처방에 매달리는 듯하다.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대처하기에는 일이 너무 많은데다 상황이 너무 빨리 변해 불확실성도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때 그 때 밀려드는 일들을 처리하기 바쁘고, 그나마 경쟁에 뒤지지 않기 위해서는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실적쌓기에 애쓴다.

탈출구는 없을까? 영국의 비즈니스 심리학자 토니 크랩(Tony Crabbe)은 무엇보다 ‘바쁨’의 교도소를 탈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너무 바쁘다면 잘못 살고 있는 것이다>에서 분주함의 상당부분이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한다는 무력감 때문에 일어난다며, 이같은 분주함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삶의 주인이라는 느낌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또 ‘과다’의 세상에서 성공하려면 만족을 모르는 ‘모어게임(More Game)’에 빠져 보다 많은 것을 생산하기보다 중요한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변화를 이루는데 필요한 추진력을 확보할 것을 강조한다.

불교의 참선이나 명상과 같은 수행이 매우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수행은 근거 없는 뜬구름 같은 생각들을 말끔히 내려놓고 자신과 세계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혹시 바쁠 필요가 없다고 자칫 별다른 노력이 필요없다는 식으로 오해해서는 안될 것이다. 허둥지둥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지 제대로 된 안목을 기르고 실천하는 노력까지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최후 유훈인 ‘불방일(不放逸)’은 인류문명의 미래를 구할 수 있는 향상일로(向上一路)의 부단한 정진의 메시지로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김봉래(불교사회인의 책임 실천운동TF팀장 겸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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