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난 1일부터 4일까지 필리핀 출장을 다녀왔다. 국제 어린이 구호단체 '굿월드 자선은행'이 필리핀 빈민 마을 아이들을 위한 교육 시설 준공식과 입학식을 현지에서 가졌고 이를 취재하기 위해 단체 관계자들과 동행했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1999년 당시 신혼여행으로 필리핀을 다녀온 이후 18년만에 다시 필리핀을 찾게 돼 감회가 새로웠다. 과거 아시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였던 필리핀은 빈부격차가 심하고 국민 대다수가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 그리고 치안도 매우 불안한 나라로 꼽힌다. 후덥지근한 날씨와 시도 때도 없이 쏟아지는 폭우 등 날씨조차도 필리핀에 대해 부정정인 이미지를 갖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런 부정적인 인식을 머릿속에 가득 채운 채 필자는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에서 차로 2시간 가량 걸리는 산페드로시의 사우스사이드 마을을 빙문했다. 이 곳은 이른바 쓰레기 마을로 불리는 곳으로 필리핀의 대표적인 빈민촌으로 꼽힌다. 주민들은 쓰레기 매립지 위에 지어진 집에 살고 있고 어린 아이들도 쓰레기 매립지 주변의 고철과 재활용품들을 팔아 어렵게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한국에서 온 봉사단 일행이 마을에 도착하자 아이들은 신기한듯 우리를 빤히 쳐다봤다. 불과 4-5살에 불과한 아이들은 무엇보다 이방인에 대한 낯가림이 전혀 없었다.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촬영 준비를 하는 필자에게 아이들은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찌는듯한 무더위에 비오듯 땀을 흘리는 필자에게 손수건을 건네는 아이도 있었다. 비록 찢어지게 가난한데다 부모의 제대로 된 보살핌도 받지 못하고 변변한 교육 시설조차 없이 폐품 수집으로 직접 돈벌이까지 해야하는 아이들이지만 이들은 시종 밝은 표정을 잃지 않았다.

이들을 보면서 우리나라 아이들의 모습이 새삼 떠올랐다. 물질적으로는 필리핀의 아이들보다 훨씬 여유가 있지만 우리 아이들의 얼굴에서 해맑은 미소가 사라진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생들이 벌써부터 수면 부족과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조사 결과도 우리들을 우울하게 만들고 있다.

요즘 아이들은 지나치게 현실에 안주하려는 경향도 강한 것 같다. 예전에는 장래 희망을 대통령이나 노벨상을 수상하는 과학자 등 원대한 목표를 이야기하는 아이들이 적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저 4년제 대학을 나와 내 앞가림이나 잘 했으면 좋겠다든지, 공무원이 돼서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싶다는 등 지극히 현실적인 꿈과 희망을 이야기한다.

진짜 행복한 삶, 가치있는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성찰이 부족한 아이들,미래에 대한 꿈의 크기도 스스로 제한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무엇을 해줘야 할까 ?  

힘든 필리핀 출장을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필자는 고등학교 2학년 딸에게 힘들어도 용기를 잃지 말라는 문자를 보냈다. 엄마가 시켰냐는 답이 돌아오기는 했지만 이번 필리핀 출장은 딸에게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만큼은 절대 주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든 소중한 계기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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