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인즈에서 슘페터로.. 경제철학의 전환을 주문

♣‘신정아 사건’으로 불명예 퇴진했던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저성장 장기불황 시대 우리 경제의 활로를 찾는데 멘토를 자처하고 나서 주목받고 있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비전 2030’이라는 복지국가의 비전을 설계한 책임자이기도 했던 그는 지난 2012년 <노무현의 따뜻한 경제학>을 펴내 노 대통령의 경제 비전과 복지 비전을 정리해 발표한 데 이어 최근 <경제철학의 전환>을 출간하고 문재인 정부에 훈수를 던졌다.

 

변양균 전 실장은 “지난 10년간 홀가분하게 사인으로 생활하는 동안 세상의 변화를 제3자의 관점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며, “혼자 편히 살기에는 실망스러운 상황이며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운을 뗐다. 그리고 “평생을 국가기획과 경제정책 업무해 종사한 경험과 지식을 모아 향후 경제정책의 수단들을 관통하는 철학을 제시해보고자 한다”고 의중을 밝혔다.

변 전 실장은 우리 경제의 탈출구를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 경제철학에서 찾고 있다. 20세기 최고의 경제학자로 꼽히는 케인즈와 슘페터, 두 사람 가운데 지금까지는 케인즈의 이론이 선호되었으나 이제 케인즈 방식은 한계에 직면했다는 진단이다. ‘수요 확대’를 중심으로 하는 케인즈 이론에 의존한 결과 단기적 통화정책으로 경기를 부양하려던 조치들이 장기적으로 분배구조를 악화시켰고 양극화는 심화되었으며 낙수효과는 미미했다는 것.

그는 케인즈와 슘페터는 모두 ‘상품·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반드시 포화한다’라는 명제에 공감했지만 대책은 다르다고 지적한다. 즉 케인스는 수요 부족을 주어진 조건으로 보고 정부가 유효수요를 확대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슘페터는 수요 포화상태에서의 상품·서비스를 대체할 새로운 상품·서비스를 창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것. 그래서 혁신이 필요하고 혁신이 자본주의 경제에서 기업가의 역할이라고 강조한다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그는 앞으로 기업가들이 노동·토지·자본이라는 생산요소를 자유로이 결합하여 ‘창조적 파괴’를 할 수 있어야 미래의 성장을 약속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왜냐하면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슘페터식의 ‘공급 혁신’에 의한 새로운 수요의 창출이 절실한 시대이기 때문이라는 것. 따라서 경제 활성화를 위해 재정의 확대가 필요하다는 점은 케인즈와 공통되지만 다만 그런 재정을 케인즈식 수요 확대가 아닌 슘페터식 공급 혁신을 위해 쏟아부어야 한다는 것이다.

변 전 실장은 창의와 혁신이 활발히 샘솟는 기업가정신을 발현시키기 위해서는 노동·토지·자본 등 생산요소의 자유로운 결합을 방해하는 걸림돌들을 국가가 적극 나서서 해소해 주자고 주장하며, 다음 네 가지 자유를 제안한다. 첫째는 노동의 자유, 둘째는 토지의 자유, 셋째는 투자의 자유, 넷째는 왕래의 자유이다. 그러면서 이들 네 가지는 개별적으로가 아니라 ‘패키지 딜’로 추진해야 실천이 가능할 것이라고 조언한다.

[노동의 자유] 기업가가 생산요소의 자유로운 결합을 할 수 있도록 고무하기 위해서는 ‘노동의 유연성’이 필요하지만 그 전제조건으로 노동자에게도 ‘노동의 자유(선택권)’가 보장되어야 한다. 노동의 자유를 위해 국가가 노동자들에게 주택·교육·보육·의료·안전 등 기본수요를 충족시켜 주어야 한다. 기본수요가 충족되면 노동자는 해고의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있고 장기간 실업급여를 받는 가운데 뭔가 재교육을 받거나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충전해 다른 일에 도전할 수 있다. 기존의 실업자 대책 수준을 뛰어넘는 대안이 나와야 한다.

[토지의 자유] 또 한 번의 토지개혁이 요구된다. 이 토지개혁은 토지를 강제로 배분해주는 개혁이 아니라 엄청난 규모로 토지를 공급함으로써 기존의 토지소유자의 독점적 이윤을 다같이 나누어 가져야 한다. 수도권을 세계적인 대도시권으로 육성하여 국가경쟁력을 강화해야 하며, 이를 위해 수도권 규제를 대폭 완화해야 한다. 수도권 투자에 따라 발생하는 이익을 비수도권과 나누면 윈-윈이 된다.

[투자의 자유] 우리나라의 은행은 위험부담이 적은 담보 중심의 가계대출을 늘리는 바람에 산업의 파이프 라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투자의 자유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부에 의한 금융규제가 네거티브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법에서 명시적으로 금지하지 않는 사업은 원칙적으로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하여 국가자본주의식 정부 규제를 과감하게 떨쳐버려야 한다. 취약한 금융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금융개혁의 최우선 목표를 금융의 산업자금 공급 확대에 두어야 한다.

[왕래의 자유] 세계 최고수준의 무장병력으로 대치하고 있는 한반도 상황에서 안보와 경제발전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방법은 세계 최고수준의 개방에 있다. 세계의 수준 높은 인력과 자본이 몰려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왕래의 자유를 구현해야 하며, 국가 운영 자체가 세계를 향해 열려 있는 플랫폼 국가를 지향해야 한다. 국내의 인재 뿐 아니라 외국의 인재까지도 활용할 때 더 부강한 나라가 될 수 있다. 해외의 우수한 두뇌를 유치하는 ‘신 10만 양병론’을 제시한다.

변양균 전 실장은 문재인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론’도 슘페터식 경제정책과 같이 가야 한다고 주문한다. 왜냐하면 소득 주도 성장론의 이론적 기반은 유효수요 창출을 중시하는 케인스주의 사고에 기초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또 변 전 실장은 종교인에 대한 과세를 지지하기도 한다. “최순실 사건도 애초에 최태민이라는 종교인에 대해 과세를 할 수 없었기에 더 악화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고 적고 있다. 사회 투명성 확보를 위해서는 이러한 과세 강화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다.

책 말미에서는 외부 경제적 요인, 그 중에서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의 중요성을 거론한다. 그동안 경제 정책이 제대로 먹히지 않은 데는 다양한 외부 경제적 요인을 가벼이 여긴 탓도 있다는 것. 사회구성원 간에 서로 신뢰하며 함께 규칙을 지키는 사회적 자본은 사회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거래비용을 낮추는데 기여하는 만큼 이를 담보할 수 있는 정책과 제도화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김봉래(불교사회인의 책임 실천운동TF팀장 겸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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