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에서 후배는 어쩌면 가장 위협적인 존재입니다. 치고 올라와서 고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습니다. 유능한 후배일수록 더 빨리 선배를 넘어섭니다. 그래서 선배는 후배를 키우면서 때로는 견제를 합니다. 후배의 커가는 모습이 흐뭇하지만 마음 한켠에 불안감도 싹틉니다. 그것은 세상의 이치이자 조직의 생리입니다. 그렇다고 자연스런 신구교체(新舊交替)를 막아선다면 조직은 고리타분해지고 멈춰설 수 밖에 없습니다. 그 갈림길에서 조직은 뒤처지거나 멸망합니다. 결국 후배의 약진이 수월하고 자연스러운 상황은 조직에게 승패의 문제, 생사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잘 풀리는 건강한 조직은 대체로 그러합니다.

  제 1야당 자유한국당은 선배들이 편안한(?) 대표적인 조직입니다. 10년이나 여당을 했고, 줄어든 의원수가 여전히 100명이 넘는데도 그 안에서 위협적인 후배를 찾기 어렵습니다. 새 정부 출범으로 진행되는 공직후보 인사청문회에서는 으레껏 야당이 ‘청문회 스타’ 한두명은 배출하지만 이번에 자유한국당에서는 단 한명도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불과 몇 달 전 ‘최순실 청문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바른정당 장제원, 국민의당 김경진 의원 등이 빼어난 활약으로 이른바 ‘어벤저스’ 칭호를 받은 것을 기억한다면 완연히 비교되는 일입니다. 며칠 전 후보 등록을 마감한 자유한국당 당 대표 선거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직 대선후보’ 홍준표, ‘5선의 전직 원내대표’ 원유철, ‘4선의 현직 미방위원장’ 신상진 등 이른바 ‘원로급’ 3명의 경쟁 무대가 돼버렸습니다. 보수의 궤멸을 걱정하는 많은 이들이 자유한국당을 구할 새로운 리더십을 그토록 요구했는데도 당의 간판 얼굴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지금의 보수정당에 인물 자체가 없다는 조롱섞인 세간의 평가에 맞서 호기롭게 나선 ‘젊은 피’ 조차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국민들은 자유한국당 당권 경쟁에 거의 관심이 없는 듯 합니다. 대한민국의 정통 보수정당이 어쩌다 이렇게 폭망하게 됐는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지금부터 17년 전인 2000년. 재선에 불과하던 민주당 정동영 의원은 당내 소장파 천정배, 신기남 의원과 손을 잡고 최고 실세로 권력을 주무르던 권노갑 고문의 2선 퇴진을 요구하고 나섭니다. 그러자 당시 총재였던 DJ는 탈당하고 권 고문은 2선으로 후퇴해 이 사건은 한국정치사에 정풍 쇄신운동의 상징으로 기록됩니다. 훗날 세인들은 당 혁신과 세대교체를 이뤄낸 이 ‘정풍운동’을 진보 세력이 2002년에 정권을 재창출하는 밑거름이 된 것으로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보수정당에도 친박 세력이 집권하기 전까지 혁신을 이끌어온 젊은 주역들이 있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들이 ‘남원정’(남경필·원희룡·정병국)으로 대표되는 소장파 그룹입니다. 30대 나이에 금배지를 단 이들은 제왕적 총재 시절 목에 칼이 들어올 상황에도 당을 향해 쓴소리를 굽히지 않는 패기를 보여줬습니다. 그 시절의 ‘남원정’은 이제 다선 의원을 거친 광역단체장으로, 당대표로 선배들을 훌쩍 넘어섰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언저리에서 한 솥밥을 먹으며 이들을 위협하는 후배들은 별로 없어보입니다. 결코 이들에게도 다행스런 일은 아닐테지요.

  현 자유한국당의 지리멸렬한 모습이 박근혜 정부 4년의 결과물임은 자명합니다. 돌아보면 당시 박 대통령은 2인자를 키우는 일에는 철저히 선을 그었습니다. 누군가 자신과 맞서려고 하면 ‘레이저 눈빛’으로 주눅들게 하고 ‘배신자’란 용어로 왕따를 시켰습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보수정당의 주류는 고분고분한 인물들로만 채워졌고, 특히 지금의 자유한국당 구성원이 만들어지게 된 20대 총선은 ‘존재감 없는’ 인물들로 채워졌습니다. 19대 국회의 야당 비례대표들이 대여 투쟁의 선봉에서 하나같이 일사분란한 돌격대 역할을 했던 것을 생각한다면 지금 자유한국당 비례대표 17명은 도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모를 일입니다. 그들도 선배들을 뛰어넘고 싶고 더 큰 정치를 하고 싶은 의지가 물론 있을테지요. 조직의 희망과 미래는 선배를 넘어서려는 후배들의 패기와 유능함에서 좌우된다는 세상의 이치를 고명하신 의원님들이 모를리 없겠지요. 박근혜 전 대통령을 필두로 한 못난(?) 선배들을 탓하며 마냥 불평만 하고 있기에는 보수정당과 그들의 어깨에 놓인 책무가 너무나 막중합니다/이현구 정치외교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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