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은 경영평가 결과에 따라 성과급과 예산규모 등이 정해지고, 특히 E등급을 받는 기관장은 경고 조치나 해임안 건의 등의 인사조치가 뒤따르는 만큼 공공기관들은 결과에 민감할 수 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더 나은 점수를 받으려는 공공기관의 로비도 치열한 것이 현실입니다. 특히 새 정부 들어 처음으로 발표한 공공기관 경영평가에는 기관장은 물론이고 전 직원이 촉각을 곤두세웠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첫 공공기관 경영평가 결과는 당초 오늘(16일) 공공기관 운영위원회 논의를 거친 오는 20일 최종 발표될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평가표가 사전에 유출됐습니다. 공공기관 운영위원회가 열리기 하루 전인 15일 오후 평가표가 지라시 형태로 사전에 유포되면서 기획재정부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평가표의 진위 여부를 묻는 질문에 기재부나 담당국은 “과거 자료이다”,“전혀 사실과 다른 자료이다”로 완강하게 부인했지만, 결국 하루도 안돼 유출된 평가표는 최종 확정본이 돼 언론에 배포됐습니다. 이미 자료가 유출된 상황에서 각종 의혹과 로비를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됩니다. 자료 사전 유출 등 허술한 문건 관리도 문제지만 금방 탄로 날 일을 순간만 모면해보자는 식으로 일관한 기재부 담당국의 대처방식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정책의 신뢰성 훼손에 대한 문제도 제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부는 박근혜 정부 시절 공공부문 개혁을 이유로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도입을 강하게 밀어붙였습니다. 공공노조의 저항이 컸지만 공공기관의 생산성 향상과 방만경영을 막기위한 조치라는 논리를 내세우며 강행했고, 이 과정에서 국론분열 등 사회적 피해도 컸습니다. 성과연봉제 강행을 위해 정부는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3점을 성과연봉제 관련 항목으로 채우고, 지난해 조기 도입한 기관에는 1점의 가점을 부여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기획재정부는 새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곧바로 성과연봉제 가점제를 경영평가에 반영하지 않았고, 급기야 사실상 폐기를 선언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공공부문 성과연봉제, 성과평가제를 즉각 폐지하겠다’고 밝혔고, 이 공약이 정부의 '알아서 코드맞추기' 식으로 즉각 이행된 겁니다. 제도 시행 몇 달 만에 정책이 180도 바뀌어버렸습니다. 정부 방침에 따라 지난 10일까지 우선 도입 대상으로 분류돼 성과연봉제 확대 도입을 결정한 120개 공공기관의 당혹감은 클 수 밖에 없습니다. 정부는 성과연봉제 조기 확대 도입을 결정한 공공기관이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오히려 혼선만 불러올 것이라는 우려가 큽니다. 더욱 아이러니 한 것은 이런 조치가 기획재정부 김용진 2차관이 주재한 자리에서 결정됐다는 겁니다. 김용진 2차관은 차관 부임 전 동서발전 사장으로 재직하면서 성과연봉제 확대 도입을 강하게 밀어붙인 장본인이기 때문입니다.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은 정권에 상관없이 항구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고, 폐기 수순을 밟을 때는 정책 수립 과정과 마찬가지로 그에 합당한 절차가 있어야 합니다. 과거 정권에서도 그렇듯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정권 코드 맞추기" 식 관행....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기존 정책을 손바닥 뒤집듯 바꿔 버리는 행태는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저작권자 © BBS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