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후락(先憂後樂)’ 나라가 어려울 때 위정자들이 가져야할 마음가짐, 권혁진 소장

*방송: 춘천BBS <아침세상 강원>
*앵커: 박경수 부장
*출연: 권혁진 소장 (강원한문고전연구소)
*방송시간: 2017년 6월 8일(목) 8:30 ~ 8:55
*방송주파수: 춘천 FM 100.1 MHz, 속초 93.5 MHz, 강릉 104.3 MHz

 

<다음은 방송 전문입니다>

 

1987년 7월 9일 신촌(이한열 열사 장례식)

 

2017년 4월 30일 신촌(문재인 민주당 대선후보 유세)

 

▽박경수 앵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하는데요, 과거사를 짚어보며 미래를 생각해보는 목요일입니다. 강원한문고전연구소 권혁진 소장 오늘도 함께 합니다. 권혁진 소장님 안녕하세요?

▶권혁진 소장:

네 안녕하세요

 

▽박경수 앵커:

봄에는 미세먼지 때문에 많이 힘들었는데요. 요즘은 때 이른 더위와 가뭄 때문에 농심이 타들어갑니다. 어제 비가 조금 왔습니다만 부족하다고 하구요. 이럴 때 성현들의 지혜를 들려주시면 농민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위로할 수 있지않을까 싶은데, 어떤 좋은 얘기 없을까요?

▶권혁진 소장:

어떤 말로도 농민들의 마음을 위로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이런 때 위정자들의 마음가짐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선우후락(先憂後樂)’이란 말이 있는데요, ‘천하 사람들이 근심하기에 앞서 근심하고, 천하 사람들이 즐거워 한 뒤에 즐거워한다’란 의미입니다. 이 말은 송나라 범중엄(范仲淹, 989∼1052)의 「악양루기(岳陽樓記)」에 나오는 말인데, 농민들의 걱정이 태산 같은 이 시기에 명심해야 할 말 같습니다.

 

▽박경수 앵커:

저는 아무래도 한반도가 아열대 기후로 변해가는 거 같구요. 지구의 기후변화가 결국 우리 인간에게 해를 끼치게 될 것이라고 판단하는데요. 그런 면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파리 기후협약에서 탈퇴하겠다는 건 충격입니다. 어떻게 바라보시나요?

▶권혁진 소장:

협정 탈퇴 이유로, 미국이 다른 경쟁국에 비해 무거운 이산화탄소 감축의무를 지는 바람에 석탄, 철강 등 주요 산업에서 경쟁력 약화가 우려된다는 것이 이유 같습니다.

트럼프와 같이 양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경제발전의 논리가 후기자본주의의 특징인데, 양적인 성장에 매달리는 논리는 생태계의 존립을 위협할 정도로 심대한 폐해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에너지 자원의 과도한 낭비와 자연환경의 훼손, 그리고 이로 인한 기상이변과 공기오염 및 수질오염 등은 생태계의 생존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기후변화를 촉발하는 온난화는 인류를 위협하는 재앙인 만큼 전 지구적 차원의 공동 대응이 필요한데, 자국의 이익만 생각하는 근시안적인 태도와 강대국의 책임을 회피하는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박경수 앵커:

그런 면에서 우리 사회가 앞서나가고 있음이 곳곳에서 발견되는데요. 이런 민주화 흐름의 주요 이정표가 있었죠. 내일 모레가 6월 10일인데요. 중장년층들은 다들 기억하시겠죠? 6.10 민주항쟁말입니다. 이 얘기 좀 해보죠. 1987년 6월10일이 제게는 기억에 생생한데...이날이 어떤 날인지부터 설명을 해주세요.

▶권혁진 소장:

6.10 민주항쟁은 1987년 6월 10일부터 6월 29일까지 전국적으로 벌어진 반독재, 민주화 운동입니다. 4·13 호헌 조치와, 박종철군 고문 치사 사건, 시위 도중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이한열군 사건 등이 도화선이 되어 6월 10일 이후 전국적인 시위가 발생하였고, 이에 6월 29일 노태우의 수습안 발표로 대통령 직선제로의 개헌이 이루어졌습니다. 이후 새 헌법에 따른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습니다.

6.10 민주항쟁은 대한민국의 민주화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사회 운동이 비약적으로 상승하는 효과를 가져왔다고 평가를 받습니다.

 

▽박경수 앵커:

그렇죠. 개인적으로 소장님에게 1987년 6월10일은 어떻게 기억되시나요?

▶권혁진 소장: 

죄송스럽지만, 저는 그때 전방 GOP에서 근무를 서고 있었습니다.

▽박경수 앵커:

군 복무중이셨네요. 언제 군에 가셨어요?

▶권혁진 소장:

그해죠, 1987년 1월7일에 입대했습니다.

▽박경수 앵커:

이등병때 6 10 민주항쟁을 맞으셨군요.

▶권혁진 소장:

당시에는 비상 경계근무를 계속해서 섰습니다. 민주항쟁인지도 모르고 데모하던 사람들을 원망을 했는데 너무 철없는 생각이었습니다.

▽박경수 앵커:

이해합니다. 군대에서는 그런 생각을 갖게되죠. 저는 군대에 늦게가서요. 당시에 대학 3학년에 재학중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기억에 아주 또렷하죠.

 

▶권혁진 소장:

그럼 당시 얘기를 앵커께서 좀 해주시면 좋을 것 같네요. 연세대생 이한열군이 최루탄에 맞아서 숨지는게 그 때인거죠?

▽박경수 앵커:

그렇죠. 1987년 6월 10일이 '민주헌법쟁취 국민대회'가 열리는 날이었구요. 하루 앞서서 6월 9일에 연세대 도서관앞에서 집회가 있었는데요. 그 곳을 민주광장이라고 불렀죠. 집회를 마치고 정문 앞에서 전경들과 대치하고 있었는데, 그날 시위에서 당시 대학 2학년이었던 이한열군이 최루탄에 맞아 사경을 헤매게된거죠.

그래서 6월 10일 전국적인 집회 시위가 더 거세지는 계기가 된 것 같애요. 사실 시국에 큰 관심을 보이지않던 여학생들도 많이 참여했던 것으로 기억하니까요.

저는 당시 전경들에게 잡혀서 경찰서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나왔습니다. 당시에는 붙잡힌 학생들이 워낙 많아서, 저는 처음에 서대문경찰서로 압송됐다가 마포서까지 넘어왔었죠.(웃음)

그런데 그 다음날 풀어주는 경찰들이 제 눈을 마주치지못하는 것을 보면서 전국의 시위가 만만치않다는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권혁진 소장:

그랬군요. 앵커님이 바로 역사의 현장에 계셨군요. 당시 시위 현장에 계셨던 분들 가운데 지금 유명해지신 분들이 좀 있지요?

▽박경수 앵커:

네 가장 이름이 알려진 분은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우상호 의원이죠.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이었는데, 군대를 갔다와서 총학생회장을 맡아서 나이가 많았어요. 대중 연설을 하면 당시 학생들보다 나이가 많아서, 형으로 오빠로 꽤 친근하게 학생들에게 다가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고향이 강원도 철원이죠. 그리고 배우 우현씨, 요즘 많이 떴죠. 당시에는 안경을 썼는데, 꽤 샤프하고 연설을 잘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우현씨가 당시 집회를 주도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시위에 함께 했던 이름 없는 수많은 학생들, 그리고 박수를 쳐주며 응원해주었던 넥타이부대, 직장인들이 바로 6.10 민주항쟁의 주역이라고 하는건 역사가 증명하고 있지요.

지난주 얘기를 해주셨지만, 현대판 의병이 그 분들이었던 것입니다.

 

▶권혁진 소장:

그런데 다시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한열군이 죽기 전까지 꽤 오래 세브란스 병원에 의식불명 상태로 있었잖아요. 그 와중에 노태우의 6.29 선언이 나오게 되는 거죠?

▽박경수 앵커:

그렇죠. 6월 9일 오후 최루탄에 맞은 직후부터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는데요. 시간이 흐를수록 당시 전두환 정권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커지는 계기가 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87년 1월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 이후 다시금 터진 독재정권의 야만적인 모습이었으니까요.

당시 시위 구호가 ‘호헌철폐, 독재타도’였는데요. 이한열군이 쓰러진 뒤에는 ‘한열이를 살려내라’는 게 구호가 될 정도였죠.

그래서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표의 6.29 선언, 대통령 직선제를 받아들이는 항복 선언이 나오기 전에 이한열군이 만일 숨졌다면 시위가 훨씬 더 격렬해졌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아무튼 7월5일에 이 열사가 숨을 거두고, 9일에 장례가 있었는데, 저는 그 기억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연세대 교정부터 신촌로터리가 인파가 가득했구요. 노제를 지낸 서울시청 앞 광장에는 역사에 남는 백만 인파가 모이게 되는 겁니다.

 

▶권혁진 소장: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광주에서 대표적인 민주열사의 이름을 거명했잖아요. 근데 이한열 열사 장례식에서 고 문익환 목사가 수많은 열사들의 이름을 목 놓아 불렀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어요.

▽박경수 앵커:

그렇죠. 저는 물론 그 현장에 있었습니다만 당시 그걸 녹음한 녹음테이프를 총학생회에서 나눠줬어요. 지금 어딘가 있을텐데 듣고 싶네요. 문익환 목사님이 민주열사의 이름을 한명 한명 목놓아 불렀어요. 다들 눈물을 흘렸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광주에서 대표적인 민주열사의 이름을 거명할 때 저는 문익환 목사님이 떠오르더군요.

▶권혁진 소장:

저도 고 문익환 목사님이 생각납니다.

 

▽박경수 앵커:

제가 오히려 얘기를 많이 하고 말았네요. 소장님, 6.10 민주항쟁 30주년을 앞두고 있는데요. 청취자들에게 메시지를 주셔야겠어요. 어떤 메시지를 던져주시겠어요?

▶권혁진 소장: 

노무현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30년 전 6.10 민주항쟁을 통해서도, 가깝게는 작년부터 올해까지 이어진 촛불집회를 통해서도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늘 깨어 있고, 연대한다면 정의가 승리하는 역사를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겁니다.

 

▽박경수 앵커:

목요일에 듣는 역사와 시사, 시간이 갈수록 깊이를 더해간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오늘은 6.10 민주항쟁에 대한 얘기 나눠봤습니다. 오늘 말씀 잘들었습니다.

▶권혁진 소장:

감사합니다

(박경수 앵커와 권혁진 소장)

 

▽박경수 앵커:

다음주 목요일에 또 뵙지요. 강원한문고전연구소 권혁진 소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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