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노무현입니다’가 인기입니다. 쟁쟁한 극영화 속에서 박스 오피스 2위를 기록 중이고, 입소문을 타면서 상영관도 부쩍 늘었습니다. 이례적인 흥행 열풍이 어떤 연유인지 궁금함을 참을 수 없어 주말 저녁 슬며시 집을 빠져나와 동네 영화관으로 향했습니다. 젊은 커플들로 가득찬 관객석 중간에 ‘나홀로’ 앉아 수시로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느끼며 1시간 40분간 스크린에 빠져 들었습니다. 동서화합을 몸소 부르짖었던 ‘정치인 노무현’의 소신과 언제나 힘없는 사람들 곁에 서고자 했던 ‘인간 노무현’의 면모가 생생한 기록물과 심금을 울리는 관계자들의 증언에 담겨 가슴을 파고들었습니다.

  ‘노무현입니다’를 보고나자 지금의 우리 정치 상황 몇 가지가 영화 속 장면들과 묘하게 겹치면서 떠올랐습니다. 국내 최초의 정치인 팬클럽으로 노무현 대선 승리의 주역이었던 ‘노사모(노무현의 사랑하는 사람들)’와 문재인 대통령 열혈 지지자들을 일컫는 ‘문팬’의 모습이 맨 먼저 오버랩됐습니다. 영화에서 노사모는 매우 ‘민주적이고 젠틀한’ 그룹으로 비춰졌습니다. 온몸을 던지는 열정으로 16대 대선 경선의 기적을 일구면서도 타 정치 세력을 향해 자제력과 사려깊음을 잃지 않았던 모습이 영화 곳곳에서 확인됐습니다. 물론 노사모는 이후 노 전 대통령의 정책을 무비판적으로 옹호해 국민들의 외면을 받았고, 순수성이 변질됐다는 비판에서도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노사모의 맥을 잇고 있다는 지금의 ‘문팬’은 어떤가요? 작은 반대 목소리에도 입에 담기 힘든 욕설로 이른바 ‘문자 폭탄,댓글’을 날리고 ‘18 후원금’을 보내는 극렬 행동이 문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부터 줄기차게 이어졌습니다. 문 대통령 취임 직후에는 같은 진영으로 여겨져온 ‘한경오’(한겨레·경향·오마이뉴스)까지 공격하면서 진보 언론과도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2000년대 초반 ‘노사모’로 시작된 팬덤 정치는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를 지나 ‘문팬’까지 17년의 세월 속에서 오히려 뒷걸음질을 쳤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무현입니다’를 본 뒤 떠올린 또 한가지는 최근 SNS를 뜨겁게 달군 김무성 바른정당 의원의 이른바 ‘캐리어 노룩 패스(No Look Pass)’ 상황입니다. 공항을 빠져나오면서 수행원에게 눈도 맞추지 않고 캐리어를 밀어 던지다시피 전달한 김무성 의원의 ‘갑질’ 장면은 영화 속 한 사람의 증언 속에서 다시 피어올랐습니다. 노 전 대통령 변호사 시절 그의 운전기사로 일했던 노수현 씨는 아랫사람을 대하는 ’인간 노무현’의 모습을 이렇게 추억했습니다. “당시 노무현 변호사는 새로 구입한 스텔라 승용차를 매우 아꼈는데, 내가 결혼식을 하던날 노 변호사가 직접 스텔라를 몰고 나타났습니다. ‘나는 구신랑이고 당신이 새신랑이니 뒤에 타시오’라면서 권양숙 여사를 앞 자리에, 신랑 신부를 뒷 자리에 태워서 경주로 향했습니다. 내 인생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습니다” 물론 미디어로 노출된 대조적 장면만으로 두 거물 정치인의 인생을 무 자르듯 재단할 수는 없겠죠. 어쨌든 몇 년 전 대선후보 지지율 1위를 달리며 승승장구했지만 어느듯 세인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김무성 의원은 이번에 ‘노무현입니다’에 버금가는(?) 의도치않은 짧은 다큐 한편을 선보이며 기어코 존재감을 드러냈습니다. 

   ‘문팬들의 집단 행동’과 ‘김무성 노룩 패스’는 여러 면에서 닮아있습니다. 두 행위의 근저에는 소통을 거부하는 ‘불통’의 습성이 깔려있습니다. 문팬이 ‘패권주의’에 함몰돼 있다면 김무성 의원은 ‘권위주의’가 몸에 배여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열어가는 새로운 시대 언저리에 아직 구시대 잔재물이 수북이 쌓여있는 셈입니다. 문 대통령이 여민관에서 보좌진들과 함께 업무를 하고 원탁 테이블을 회의에 사용하는 ‘탈권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국민 모두가 인수위원이 돼 새 정부에 정책을 제안할 수 있도록 온오프라인 소통창구를 열었지만 그 언저리에는 여전히 ‘불통’과 ‘패권’의 거대한 세력이 또아리를 틀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시대에 기어코 ‘적폐 청산’을 이뤄내겠다면 영화 ‘노무현입니다’가 담아낸 승리와 좌절의 기억 하나하나가 이정표를 제시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이현구 정치외교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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