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부사 엄황(17세기), 춘천의 종합인문지리지 '춘주지' 편찬...역대 최고의 춘천시장

*방송: 춘천BBS <아침세상 강원>
*앵커: 박경수 부장
*출연: 권혁진 소장 (강원한문고전연구소)
*방송시간: 2017년 4월 13일(목) 8:30 ~ 8:55
*방송주파수: 춘천 FM 100.1 MHz, 속초 93.5 MHz, 강릉 104.3 MHz

 

[다음은 방송 전문입니다]

 

*박경수 앵커:

목요일에는 강원도의 역사 그리고 그 역사의 숨결을 따라가보지요. 강원한문고전연구소 권혁진 소장과 함께 합니다. 권혁진 소장님 안녕하세요!

▶권혁진 소장:

네 안녕하세요

 

춘천향교

 

*박경수 앵커:

소장님! 오늘(13일)이 임시정부가 수립된 날입니다. 4월 13일.박근혜 정부 당시만 해도 임시정부보다는 해방 이후 수립된 정부에 무게를 두면서 이른바 ‘건국절’논란이 빚어지기도 했었는데, 임시정부에 대해 한 말씀 해주셔야죠.

▶권혁진 소장:

1919년 4월 13일이죠, 국내외에서 3·1운동이 전민족운동으로 확산될 때, 독립정신을 집약하여 우리 민족이 주권국민이라는 뜻을 표현하고, 또 독립운동을 발전시키기 위해 조직한 것이 임시정부입니다. 1945년 8·15광복까지 27년 동안 상해를 비롯한 중국 각처에서 한국인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투쟁하였습니다.

임시정부의 독립과 자유를 위한 투쟁은 저희가 앞 방송에서 살펴본 의암 유인석, 습재 이소응 선생 등 독립운동가들의 투쟁을 자연스럽게 이은 것으로 볼 수 있을 겁니다. 선조들의 투쟁은 자랑스러운 역사입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신채호 선생의 말씀을 임시정부가 수립된 날에 되새겨야 할 것입니다.

 

*박경수 앵커:

의암 유인석, 습재 이소응 선생 등 독립운동가들의 투쟁이 임시정부로 이어진거죠. 그러니까 이런 부분은 보수니 진보니 의견이 엇갈릴 사안이 아닌 거 같아요.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았다는 헌법을 좀 생각해야할 것 같습니다.

이 대목에서 대선 얘기 안할 수 없네요. 이제 본격적인 대선 정국에 접어들었다고 봐야죠. 내일 모레(15일)부터 후보자 등록이 이뤄집니다. 다음 주 월요일(17일)부터는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되는 거구요. 이번 대선, 어떻게 바라보고 계시나요?

▶권혁진 소장:

대선에 대한 전망보다, 후보자들께 두 가지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맹자에 ‘시민여상(視民如傷)’이란 말이 있습니다. 백성 보기를 마치 다친 사람 보듯이 한다는 뜻인데, 국민을 섬기는 정치를 부탁드립니다. 관자(管子)에 ‘정치는 민심을 따르는 데서 흥성하고, 민심을 거스르는 데서 쇠망한다[政之所興 在順民心 政之所廢 在逆民心]’는 구절이 있습니다. 늘 국민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혜안을 갖길 부탁드립니다.

 

지계사 비석을 보고 있는 권혁진 소장(왼쪽)

*박경수 앵커:

저는 논어에 나오는‘무신불립’이라는 말이 뇌리에 남아있는데,소장이 오늘 주시는 메시지는 '시민여상'이네요. 특정 후보에 대한 호불호는 얘기하지 않으시구요.(웃음)

알겠습니다. 지난주에는 우리가 춘천향교의 역사를 짚어봤습니다. 고려 말까지 거슬러 올라갔었는데, 춘천의 정체성을 대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특히 저는 지계사라는 분...대단한 분 같아요?

▶권혁진 소장:

지계사란 분은 병자호란 때인 1636년에 향교 대성전에 봉안된 여러 위패들이 훼손될까봐 위패를 지고 대룡산의 바위 굴 속으로 피신했습니다. 그 때문에 위패들이 무사할 수 있었죠. 지금의 시각으로 봤을 때는 위패 때문에 목숨을 내놓은 행동을 이해 못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향교에서 근무하던 지계사에게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참된 공직자의 자세라 할 것입니다.

 

*박경수 앵커:

저는 이번 기회에 위패의 중요성도 새삼 느끼게 됐습니다. 밤나무로 만든다는 것도 알게 됐구요(웃음). 그 성현들의 위폐를 끌어안고 대룡산에서 숨어 지냈던 지계사, 춘천 분들이 꼭 기억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은 춘천향교 얘기하면 빼놓을 수 없는 분이죠,‘엄황’이라는 분을 짚어보겠습니다. 먼저 개괄적인 설명부터 부탁드릴께요.

▶권혁진 소장:

엄황은 춘천부사로 근무하던 기간(1645~1648)에 춘천을 위해서 많은 일을 했습니다. 이민구(李敏求)가 지은 묘갈명을 보면 엄황의 업적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세금을 가볍게 하고 형벌을 잘 다스렸으며, 유학(儒學)을 돈독하게 권장하고, 노인들에게 잔치를 베풀어 봉양하니, 모든 일들이 함께 일어나게 되었다.” 이뿐만 아니라 석파령을 넓히고, 소양정을 보수하고 문소각을 건립했습니다. 춘천에서 부사를 역임한 분 중 탁월한 업적을 보인 분이라 하겠습니다.

 

*박경수 앵커:

영월분이고, 춘천에는 환갑이 넘어서 인생의 늦으막에 오셨는데, 춘천부사로 재직하면서 큰 일을 하셨어요. 바로 ‘춘주지’를 만든 거 아닙니까?

▶권혁진 소장:

엄황 이전에는 춘천의 인물과 사적, 풍토와 풍습 등을 자체적으로 자세하게 기록한 자료가 없어서 정사를 펼치는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고려사』나 『조선왕조실록』 등의 「지리지」에서 간단하게 언급된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엄황은 춘천부사로 오는 사람들을 위해 춘천과 관련된 종합인문지리지를 편찬한 것이 춘주지고, 1648년 완성하였습니다.

 

*박경수 앵커:

후대에 춘천에 오는 관리들에게 큰 도움을 주셨네요. 엄황이라는 분이 춘천을 정말 잘 다스린 거 같아요. 백성들도 너무 좋아하고... 최고의 극찬이라고 하는데, 그래서‘치행제일비’가 세워진 거군요?

▶권혁진 소장:

치행제일비(治行第一碑)는 정치를 제일 잘한 것을 기리는 비라는 의미입니다. 엄황의 업적에 걸맞는 표현입니다. 이 비석은 처음에 향교 앞에 있었는데, 지금은 소양정 입구에 있습니다. 엄황을 기리는 비석이 또 하나 있는데, 향교에 있습니다. 부사엄황흥학비(府使嚴愰興學碑)인데, ‘학문을 진흥시킨 것을 기리는 비’란 뜻입니다. 엄황은 향교를 중수했는데, ‘유학(儒學)을 돈독하게 권장하였다’는 평가에 맞는 비석입니다.

 

*박경수 앵커:

소양정 올라가는 그 길옆에 비석들이 모여 있는데, 그거는 왜 그렇게 모아놓은 건가요? 언제 모아 놓았는 지도 궁금하구요.

▶권혁진 소장:

소양1교 주변과 춘천 관내에 흩어져 있던 비석들을 1940년과 1983년에 소양정 입구로 옮겨놓았습니다. 개발이 진행되면서 한군데 모아놓은 것 같습니다. 비석들은 ‘선정(善政)’, ‘애민선정(愛民善政)’, ‘영세불망(永世不忘)’등의 글귀를 새기고 있습니다. 이른바 선정비(善政碑)입니다.

 

*박경수 앵커:

비석들도 좀 잘 관리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귀중한 사료잖아요. 비를 덜 맞게 한다든가...뭐 이런 조치는 어려운건가요?

▶권혁진 소장:

저는 개인적으로 제일 눈에 거슬리는 것이 선정비들을 이열 횡대로 나란히 세워놓고 콘크리트로 발라놓은 것입니다. 받침돌로 쓰인 귀부가 묻힐 정도고, 비석과 비석 사이도 콘크리트로 메꿔져 있습니다. 보는 사람이 다 답답할 정도입니다. 먼저 콘크리트를 제거해야 합니다. 또 아쉬운 것은 선정비의 주인에 대해 간단한 행적을 소개해서 이해를 돕는 안내판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우선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박경수 앵커:

알겠습니다. 엄황이 소양정도 정비를 하셨고, 춘천의 역사가 이렇게 전해질 수 있는 토대를 만드셨네요. 소장님, 그런데 제가 궁금한 게 지난주에도 가보니까, 춘천향교 앞마당에 보면 오래된 은행나무가 있잖아요. 그 은행나무가 향교에는 늘 있다고 하던데, 그건 왜 그런건가요?

▶권혁진 소장:

공자는 야외에서 제자들을 가르칠 때 은행나무가 있는 곳, 곧 ‘행단(杏壇)’에서 수업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선조들은 공부하는 장소인 향교나 서원에 은행나무를 심었고, ‘행단’은 지금도 ‘학문을 가르치는 곳’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춘천향교에 은행나무가 있는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행단(杏壇)’에서 ‘행(杏)’은 은행나무가 아니라 살구나무라는 설도 있습니다.

 

*박경수 앵커:

은행나무 한 그루에도 다 뜻이 담겨있었네요. 2주에 걸쳐서 춘천의 정체성이라고 부를만한 ‘춘천향교’에 대해 짚어봤습니다. 다음주에는 또 어떤 얘기를 들려주실 지 궁금해집니다. 소장님!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권혁진 소장:

네 고맙습니다

 

*박경수 앵커:

다음주 목요일에 뵙지요.

강원한문고전연구소 권혁진 소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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