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향교 비각, 병자호란때 위폐를 보존한 지계사의 공을 치하

*방송: 춘천BBS <아침세상 강원>
*앵커: 박경수 부장
*출연: 권혁진 소장 (강원한문고전연구소)
*방송시간: 2017년 4월 6일(목) 8:30 ~ 8:55
*방송주파수: 춘천 FM 100.1 MHz, 속초 93.5 MHz, 강릉 104.3 MHz

 

[다음은 방송 전문입니다]

 

*박경수 앵커:

목요일에는 강원도의 역사 그리고 그 역사의 숨결을 따라가보지요. 강원한문고전연구소 권혁진 소장과 함께 합니다. 권혁진 소장님 안녕하세요

▶권혁진 소장:

네 안녕하세요

 

춘천향교

*박경수 앵커:

3월의 마지막 날이었죠, 지난주 금요일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됐습니다. 소장님께서 한비자에 나오는 ‘법불아귀’를 강조하셨습니다만 법원도 구속영장을 발부했습니다. 격동의 3월이었는데, 한 말씀 해주셔야 할 것 같은데요?

▶권혁진 소장:

지난해부터 시작해서 올 3월까지 이어온 촛불집회의 모든 과정은 민주주의와 법치가 온전히 작동될 수 있도록 애쓴 국민 승리의 과정이기도 합니다. 진정한 민주주의와 법치를 위한 과정이지만, 뼈아픈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박경수 앵커:

그리고 세월호 얘기를 안 할 수 없지요. 3년 만에 인양돼서 목포항으로 예인됐습니다. 대통령이 탄핵되자마자 이렇게 빨리 인양할 수 있었는데, 지금까지 뭐 했느냐는 탄식이 나오구요. 여러 생각이 스쳐가는데, 세월호 인양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권혁진 소장: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가 국민들로부터 불신을 받아왔습니다. 침몰한 이유에서부터 그 뒤의 구조상황과 인양 과정 등에 대해 의혹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논어에서 공자는 ‘신뢰가 없으면 나라가 설 수 없다’는 ‘무신불립(無信不立)’을 말합니다. 정부를 믿을 수 있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촛불은 다시 타오를 것입니다.

 

*박경수 앵커:

목요일에 고정적으로 이어가는 이 코너가 사실은 강원도에 남아있는 귀중한 역사를 되짚어보려는 거였잖아요. 저 역시도 많은 것을 배우고 있는데, 요즘은 정치현실, 사회현실에 대한 소장님의 지적이 꽤나 무게감이 느껴진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사실 역사가 주는 교훈이 이런 게 아닐까 싶어요?

▶권혁진 소장:

저도 방송을 하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습니다. 공부는 늘 현실과 보조를 맞추며 호흡을 해야 한다는 것을 실감했고, 고전의 지혜, 역사의 교훈 등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나침반이 된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박경수 앵커:

소장님도 배우고 계셨네요. 다음주부터는 각 당 대선후보들에 대한 평을 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그런 생각도 듭니다.(웃음) 지난 2주 동안은 봉황대의 역사를 짚어봤습니다.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었구요. 오늘은 춘천의 정체성을 만들어온 ‘춘천향교’에 대한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춘천향교’는 과거 춘천여고 바로 옆에 있는거죠?

▶권혁진 소장:

예 맞습니다. 지금 춘천시청이 임시로 이사 간 곳이 옛 춘천여고 자리인데, 그 옆에 향교가 있습니다. 향교가 있는 그 일대는 향교 때문에 교동이라는 지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박경수 앵커:

춘천향교가 언제 생겼다고 봐야하나요? 1520년 중종 당시에 중건됐다는 게 공식으로 가장 오래된 기록인데, 그 전에 생겼다는 역사의 흔적이 보이고 있잖아요?

▶권혁진 소장:

여말 선초를 산 원천석(元天錫,1330∼?)의 시집인 『운곡시사』에 춘천향교와 관련된 시가 있습니다. 「춘성(春城) 향교의 여러 대학(大學)들에게 보낸다[寄春城鄕校諸大學]」라는 시는 1365년에 지었습니다. 춘천의 향교에서 공부하는 친구들에게 안부를 묻는 원천석의 시는, 그 당시에 향교가 춘천에 있었음을 알려줍니다. 그렇다면 최소한 그 이전에 향교가 세워졌다 것을 알려주는 자료인 셈입니다.

 

*박경수 앵커:

원천석이라는 분이 고려 말 조선 초 분인데, 이미 고려시대에 향교가 춘천에 들어섰다고 봐야겠네요. 학생들도 꽤 됐던 거 같구요. ‘세종실록지리지’에도 관련 자료가 있다구요?

▶권혁진 소장:

『세종실록지리지』의 춘천도호부편에 “사(使) 1인, 유학교수관(儒學敎授官) 1인”이란 구절이 있는데, 이것은 춘천에 향교가 있었음을 추정케 하는 자료입니다. 유학교수관은 지방의 향교를 관장함으로써 유교교육의 책임을 맡는 직책으로, 유학을 학교 또는 학문과 관련시킨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기록은 춘천에 유학을 가르칠 대상과 장소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 장소는 향교일 것입니다.

 

춘천향교(명륜당)

*박경수 앵커:

춘천 분들 가운데 ‘춘천향교’를 모르는 분들은 없을 것으로 압니다만 역사가 이렇게 깊다고 하는 건 아시는지 모르겠네요. 춘천시장께도 한번 여쭤봐야겠는데요?(웃음) 소장님! 그런데 향교의 역할을 이 대목에서 알아야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향교를 왜 세웠는지 알 수 있으니까요.

▶권혁진 소장:

향교는 성현들을 제사하는 기능과 유학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으로서의 기능을 병행해왔습니다. 따라서 건축 공간도 대성전을 중심으로 하는 제사공간과 명륜당을 중심으로 한 강학공간으로 구별됩니다.

대성전은 공자와 중국 성현들, 우리나라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공간인데, 후대로 갈수록 향교는 문묘 제사를 목적으로 했다는 점에서 대성전이 향교에서 중요한 곳으로 여겨졌습니다.

 

*박경수 앵커:

유학를 가르치고, 성현들의 제사를 지내는 곳이 바로 ‘향교’였군요. 알겠습니다. 그 ‘춘천향교’를 들어서면 가장 눈에 띄는 게 서쪽에 비각이라고 하던데....병자호란때 성현들의 위폐를 보호하려 대룡산 굴 속에서 지냈다고 하더라구요. 그 얘기 좀 자세히 해주세요.

▶권혁진 소장:

병자호란 때인 1636년에 지계사란 분이 대성전에 봉안된 여러 위패들이 훼손될까봐 위패를 지고 대룡산의 바위 굴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 때문에 위패들이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후에 지계사가 숨었던 대룡산의 바위를 호성암(護聖巖)이라고 하였고, 지계사의 공을 기리기 위해 비석을 세웠습니다. 이 비는 1802년에 부사 이정현(李庭顯)이 글을 지었습니다.

 

지계사 비석

*박경수 앵커:

지계사라는 분이 대단한 분이었군요. 근데 위폐라는게 유교에서는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요? 어르신들은 잘 알고 계시겠습니다만 상대적으로 젊은 분들은 익숙치않아서요....

▶권혁진 소장:

위패는 죽은 사람의 이름을 적어 그의 혼을 대신한다는 상징성을 갖기 때문에 매우 중시 여겼으며, 신주(神主)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위패는 종이로 만드는 신주인 지방(紙榜)과 달리 나무로 만드는데, 주로 단단한 밤나무로 만들고 검은 옻칠을 한 감실(龕室)에 안치한 후 사당에 정중하게 모셔집니다.

(밤나무로 만드는 이유는 다른 나무와 달리 밤나무는 씨밤이 싹이 트고 자라서 열매가 맺을 때까지 그 껍질이 나무 뿌리에 붙어 있어 근본, 즉 조상을 잊지 않는 나무로 여겼기 때문이다.)

 

*박경수 앵커:

저도 지난주에 영월에 있는 창절서원을 다녀왔는데요. 거기에 사육신과 우리 조상 어르신의 위패가 모셔져있거든요. 근데 어르신의 위패를 보고나니까 여러 생각이 밀려오더군요.

▶권혁진 소장:

창절서원에는 10분의 위패가 모셔졌다고 하는데, 어르신 함자가 어떻게 되시나요?

 

*박경수 앵커:

청재공 박심문 어르신인데요. 계유정란이죠. 매월당 김시습 선생 얘기를 할 때 짚어봤습니다만, 세조의 쿠데타 이후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사육신이 참형되자 스스로 자진을 하셨는데, 그 어르신이 저의 선조가 되시죠.

▶권혁진 소장:

그러시군요. 조상이 대단한 분이시네요.

 

영월 창절사

*박경수 앵커:

아닙니다. 그래서 제가 페이스북에 그 내용을 올려놓았더니 많은 분들이 읽고 느낌을 전해주시더라구요. 아무튼 저도 조상의 위폐를 보니까 찡하던데요. 지계사라는 분이 정말 대단한 분이군요. 성현의 위폐를 품고 대룡산에 숨어계셨으니까요...

▶권혁진 소장:

어찌되었든 참된 의리를 위해 죽음을 불사한 선조들을 보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러한 선조들의 언행은 후손들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를 늘 고민하게 해줍니다.

 

*박경수 앵커:

그렇죠. 우리가 오늘 얘기나누는 춘천향교에서 또 빼먹을 수 없는 인물이 한 분 더 있어요. 엄황이라는 분인데. 그 분은 시간관계상 다음 주에 얘기를 이어가도록 하죠. 소장님!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권혁진 소장:

네 고맙습니다

 

*박경수 앵커:

다음주 목요일에 뵙지요. 강원한문고전연구소 권혁진 소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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