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림동 효녀의 전설, 효자동 효자문...춘천의 효를 상징

*방송: 춘천BBS <아침세상 강원>
*앵커: 박경수 부장
*출연: 권혁진 소장 (강원한문고전연구소)
*방송시간: 2017년 3월 30일(목) 8:30 ~ 8:55
*방송주파수: 춘천 FM 100.1 MHz, 속초 93.5 MHz, 강릉 104.3 MHz

 

[다음은 방송 전문입니다]

 

*박경수 앵커:

목요일에는 강원도의 역사 그리고 그 역사의 숨결을 따라가 보지요. 강원한문고전연구소 권혁진 소장과 함께 합니다. 권혁진 소장님 안녕하세요

▶권혁진 소장:

네 안녕하세요

 

*박경수 앵커:

지난주에는 춘천의 상징적인 곳이죠, 봉황대를 살펴봤는데요. 봉황대가 꿈꾸는 것은 태평성대인데, 이항복이나 신흠은 역설적으로 어려운 정치현실을 개탄했던 곳이 바로‘봉황대’였습니다. 각 정당의 대선후보들이 확정되면 춘천의 ‘봉황대’는 한번 씩 와봐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소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권혁진 소장:

봉황은 살아 있는 벌레를 먹지 않으며, 난잡하게 날지 않고, 아무리 배고파도 조 따위는 먹지 않고 대나무 열매만 먹는다고 합니다. 봉황은 정치가 공평하고 어질며 나라에 도가 있을 때 나타난다고 하여, 성군(聖君)의 덕치(德治)를 증명하는 징조로 여겼습니다. 또한 절개가 굳고 품위를 지키는 새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봉사하려는 사람들은 봉황대에 올라 태평성대를 만들겠다 다짐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봉황대

*박경수 앵커:

오늘은 좀 더 봉황대에 대해 얘기를 나눌텐데요. 이 시간을 통해서 익숙한 인물 한 분이 나옵니다. 바로 구한말 김평묵 선생인데요. 3주전에 다뤘던 홍재학 선생의 묘비명을 쓴 스승으로 기억하는데. 김평묵 선생이 ‘봉황대기’를 쓰셨더라구요?

▶권혁진 소장:

김평묵 선생은 1853년 10월 김유정이 태어난 마을인 증리로 이사하여 후학들을 가리키면서 춘천과 인연을 맺습니다. 이후 1856년 8월 삼천동 마삼내에 있는 최운경이 개설한 용담서사(龍潭書社)에 초빙되어 후학을 양성하는데, 이 해에 봉황대에 오른 후 「봉황대기(鳳凰臺記)」를 짓습니다.

 

*박경수 앵커:

근데 마삼내는 지금의 어디인가요?

▶권혁진 소장:

지금 행정동으로 강남동에 있는데요, 강남동은 법정동인 온의동·삼천동·칠송동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중 삼천동 안에 자연부락인 마삼내가 있습니다. 춘천mbc부터 강원체육고등학교 사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봉추대로 불리는 고산

*박경수 앵커:

삼천동이군요. 봉황이 보통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인데, 김평묵은 춘천의 지명으로 자신의 주장을 입증한다구요?

▶권혁진 소장:

봉황은 대나무 열매를 먹는다는 특성이 있는데, 춘천의 죽전(竹田)에서 나오는 대나무 열매가 봉황의 먹이가 되기 때문에 봉황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죽전은 근화동에 있는 ‘대바지’를 말하는데, 옛날에 대밭이 있어서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밖에도 “춘천 소양정 뒤 봉의산의 깊고 험준한 곳에 대나무가 있는데, 이곳을 죽동(竹洞)이라고 한다.”라는 기록과, 시내에 있는 죽림동(竹林洞)도 봉황과 연관 지어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박경수 앵커:

봉황이 대나무 열매를 먹는데, 그래서 춘천의 대나무 죽(竹) 자가 들어간 지역이 있다는 얘기네요. 죽림동 얘기도 해주셨습니다만 죽림동 대나무는 효녀전설이 전해져오잖아요.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효녀 얘기인데, 청취자들께 들려주시죠.

▶권혁진 소장:

신라 때 춘천에 우례 모녀가 살았습니다. 어머니가 어느 날 산에 나물을 캐러 갔다가, 갑자기 비가 오는 바람에 피하다가 바위에서 떨어져 다치게 됩니다.

우례는 그날부터 정성으로 어머니를 간호했지만 병환이 갈수록 더해 갔습니다. 어느 날 꿈속에서 백발 신령이 나타나 "남쪽 서라벌에 가면 인삼이라는 신기한 약이 있을 터이니 다려 드리면 쾌유 하리라.”라고 알려줍니다.

우례는 서라벌로 갔으나 인삼 값이 비싸서 살 수가 없었습니다. 이때 약방 영감이 "서라벌의 어느 귀인이 죽어가는데 그 영혼을 시중들 처녀를 구한다고 한다. 그 댁을 찾아가 순장(殉葬)을 승낙하면 인삼을 줄 것이다.”라고 가르쳐줍니다.

우례는 약방 영감이 가르쳐준 댁을 찾아가 순장을 승낙하고 인삼 열 첩분을 얻어 어머니께 인편으로 보내게 됩니다. 인삼을 먹은 어머니는 쾌차 하였고, 우례는 순장되어 죽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머니는 우례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다 지쳐 그만 실성해 버린 나머지 집에다 불을 지르고 타 죽고 말았습니다. 그 후 불탄 자리에 죽순 하나가 솟아났고, 대나무가 퍼져서 울창한 숲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죽림동은 바로 이 모녀의 슬픈 전설이 깃든 곳이라고 전해옵니다.

 

*박경수 앵커:

어머니를 낫게 해야 하는데, 우례의 효성에도 어머니 병이 깊어졌군요. 그 때 우례가 꿈은 꾸죠?

▶권혁진 소장:

전설에서 중요한 장치 중의 하나가 꿈입니다. 사건을 해결시켜주는 기능을 담당하는데, 우례의 경우도 꿈속에서 백발 신령이 나타나 앞 일을 계시해 주고는 사라졌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여기에 해당되는 것 같습니다.

 

효자동의 동상

*박경수 앵커:

춘천 죽림동에 깃들어있는 효녀 우례의 전설은 참 마음을 촉촉하게 합니다. 서울은 청와대 인근에 있는데, 춘천에도 있지요. 효자동....효자동은 효자가 많았던 것인가요?

▶권혁진 소장:

임진왜란으로 부친을 잃고 홀어머니를 모시게 된 반희언은 어머니가 병으로 몸져눕자 지극정성으로 돌보고 드시고 싶다던 산삼과 딸기를 구하기 위해 한겨울에 산과 들을 뒤져 구해다 드리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반희언의 효행이 널리 퍼지자 임금은 효자문을 세우고 칭송하여, 이곳이 효자문 거리로 불리었다가, 지금의 효자동이 되었다고 합니다

 

효자문(=춘천우체국옆)

*박경수 앵커:

효자, 효녀가 많은 곳이 바로 춘천, 봄내군요. 알겠습니다. 다시 봉황대 얘기로 돌아가보죠. 김평묵이 봉황대 주변에 오동나무를 심어야한다고 한 이유는 뭘까요?

▶권혁진 소장:

봉황은 오동나무가 아니면 깃들지 않는다고 하는데, 봉황대에 있는 봉황이 쉴 곳을 마련해주기 위해 봉황대 주변에 오동나무를 심어야 한다고 김평묵 선생은 주장합니다. 춘천 신북읍에 있는 오동초등학교(梧桐初等學校)도 봉황과 관련 있다고 합니다.

 

*박경수 앵커:

봉황대의 봉황과 봉의산의 봉황은 짝이라고 봐야겠네요. 결국 봉황대의 의미는 태평성대를 꿈꾸는 것으로 정리를 해도 될 것 같지요?

▶권혁진 소장:

그렇습니다. 춘천에 사는 백성들이 아무 걱정 없이 사는 것을 염원했기 때문에 봉황과 관련된 지명이 많은 것 같습니다. 상중도에 있는 고산은 봉추대(鳳雛臺)라고도 하는데 봉황의 새끼라는 뜻입니다. 올해는 지명처럼 태평성대가 되길 기원합니다.

 

고산을 가리키는 권혁진 소장

 *박경수 앵커:

오늘은 춘천의 상징 봉황대의 역사를 짚어봤는데, 저는 죽림동의 효녀 전설이 가슴에 남는군요. 소장님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권혁진 소장:

감사합니다

 

*박경수 앵커:

강원한문고전연구소 권혁진 소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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