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석평, 노비출신 당상관에 오른 입지적인 인물...봉의산 바위에 시가 새겨져있어

*방송: 춘천BBS <아침세상 강원>  
*앵커: 박경수 부장
*출연: 권혁진 소장(강원한문고전연구소)
*방송시간: 2017년 2월 16일(목) 8:30 ~ 8:55
*방송주파수: 춘천 FM 100.1 MHz, 속초 93.5 MHz, 강릉 104.3 MHz

 

[다음은 방송 전문입니다]

 

상록회 활동지(춘천고 교정)

*박경수 앵커>

목요일에는 강원도의 역사 그리고 그 역사의 숨결을 따라가보지요. 강원한문고전연구소 권혁진 소장과 함께 합니다. 권혁진 소장님 안녕하세요

▶권혁진 소장

네 안녕하세요

 

*박경수 앵커>

춘천의 상징, 봉의산의 역사를 짚어보고 있습니다. 고려시대 몽골의 침입 당시 힘겨웠던 백성들의 삶을 얘기해주셨잖아요. 하지만 봉의산 중턱에 세워진 순의비에는 당시 위정자들의 잘못을 지적한 부분이 없어서 안타깝습니다. 소장님! 뭔가 대책이 없을까요?

▶권혁진 소장

고려사절요에 기록된 말을 조금 변형시켜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나라가 위험에 처했을 때는 임금과 신하가 걱정을 같이 해야 한다. 살얼음을 밟듯 두려워하고 조심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죽어도 죄가 남을 것이다.” 이런 내용의 비석을 순의비 옆에 세우고 싶습니다.

 

*박경수 앵커>

다시 역사속으로 들어가보겠습니다. 봉의산의 시련은 고려로 끝나지않지요. 조선시대에 와서도 임진왜란, 병조호란때도 봉의산은 전장이었다고 하던데요?

▶권혁진 소장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원호(元豪, 1533~1592) 장군은 봉의산성 뿐만 아니라 김유정 마을로 유명한 실레마을에서도 왜군과 싸우셨습니다. 이때 원호(元豪) 장군이 실레마을 뒷산인 금병산에 진을 쳤기 때문에 진을 친 산이라 해서 진병산(陳兵山)이라고도 부릅니다. 병자호란 때는 봉의산 자락에 있는 향교와 춘천관아가 불탔다는 것을, 난리가 끝난 후 불탄 문소각(聞韶閣)을 중건하였다는 기록에서 알 수 있습니다.

 

*박경수 앵커>

우리 역사의 시련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봉의산에 꼭 올라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르는데 시간은 얼마나 걸리나요? 춘천 시민들은 다들 올라가보셨겠죠?

▶권혁진 소장

도시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어서 어디에서나 쉽게 오를 수 있습니다. 정상까지 왕복소요시간이 40분∼1시간 정도 되고, 정상 약간 아래 부분에 운동시설이 갖추어져 있어서 많은 시민들이 찾습니다. 춘천시민 중에 봉의산에 오르지 않은 분은 아마 없을 겁니다. 안 올라가보셨다면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웃음)

 

봉의산 산성

*박경수 앵커>

네 알겠습니다.(웃음) 지금 겨울이어서 멀리서 보면 봉의산 중턱에 산성이 보이더라구요. 지금의 봉의산성은 일부 복원이 돼있는거죠?

▶권혁진 소장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봉의산성의 둘레는 2,463척이고 높이는 10척”이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춘천 봉의산성 지표조사보고서』에 의하면 봉의산성은 봉의산 7부 능선쯤에 경사 70도의 가파른 지형을 이용해 부분적으로 석축을 쌓아 만든 성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지금 봉의산성은 북쪽과 남쪽에 원형의 모습이 조금 남아 있고, 남쪽의 일부분이 복원된 상태입니다.

 

*박경수 앵커>

춘천의 의병장, 습재 이소응 선생이 봉의산에 올라서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건 너무도 유명한 얘기구요. 일제 시대 ‘상록회’에 대한 얘기는 안할 수 없네요. 학생 비밀결사였는데 봉의산에 회합을 많이 했나보죠?

▶권혁진 소장

일제 강점기 때인 1937년에 춘천고등학교 학생들이 조직한 항일 학생 비밀결사인 상록회(常綠會)가 있었습니다. 설립목적은 독서 활동을 통한 민족의식 함양 및 조국 독립이었는데, 회원들은 우두산(牛頭山)·봉의산(鳳儀山) 등지에서 비밀 모임을 가졌습니다. 그러다 1938년 가을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모든 회원이 체포되면서 해산되었습니다. 봉의산은 학생들의 은신처였던 것입니다.

 

춘천고 출신 권혁진 소장

*박경수 앵커>

상록회의 지향점이 조국의 독립이네요. 음...인상적입니다. 그리고 봉의산은 1950년 한국전쟁의 아픔도 간직하고 있잖아요. 북한군과의 전투가 격렬했었던 모양이네요?

▶권혁진 소장

6·25 전쟁 당시 군과 경찰, 학생 등이 힘을 합쳐 춘천 옥산포와 소양강, 봉의산 일대에서 전투를 벌입니다. 이 전투는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여 국군의 조기 붕괴를 막아낸 전투인데, 한강 방어선 형성과 UN군의 초기 참전 시기가 확보돼 우리군의 반격을 가능케 했기 때문에 춘천대첩이라고 일컫습니다. 춘천대첩의 중요 장소 중의 하나가 바로 봉의산입니다. 봉의산은 승리의 장소이기도 하지만, 같은 민족끼리 싸울 수밖에 없었던 아픈 역사와 비극을 품고 있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박경수 앵커>

그렇죠. 군사적인 의미로 이해는 하지만, 동존상잔의 비극을 ‘단순한 승리’로 표현하는건 그리 적절하지 않아보이는군요. 그런데, 이 봉의산하면 거론되는 역사적인 인물이 있습니다. 16세기 조선 중종 당시의 인물 ‘반석평’인데....어떤 분인가요?

▶권혁진 소장

반석평(潘碩枰, ?~1540)은 조선 중종 때의 인물로 노비 출신임에도 당상관에 오른 분으로 유명합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반석평의 16세손입니다. 조선왕조실록 중 『중종실록(中宗實錄)』의 기록은 이러합니다. “반석평은 천한 서얼 출신으로 시골에 살았다. 반석평이 학문에 뜻이 있음을 할머니가 알고서, 천한 서얼을 숨기고 가문을 일으키고자, 손자를 이끌고 서울로 와서 셋집에 살면서 길쌈과 바느질로 의식을 이어가며 취학시켰다. 드디어 과거에 급제하여 중외(中外)의 관직을 거쳐 지위가 육경(六卿)에 오르니, 사람들이 모두 할머니를 현명하게 여겼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cf)당상관: 조선의 관직 가운데 정책 결정에 참여하고 정치적 책임을 갖는 정 3품 이상의 자리

 

*박경수 앵커>

아하....반석평이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선조가 되시는군요. 근데 조선이 엄격한 유교 신분사회였는데, 노비가 그렇게 성공할 수 있었나요?

▶권혁진 소장

이익(李瀷)의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도 반석평의 일을 읽을 수 있습니다. “반석평의 일은 보통으로는 해내기 어려운 일이지만, 조정에서 그를 그 자리에 그냥 있도록 한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이와 같이 한다면 세상 풍속이 어찌 분발하지 않겠으며, 재주 있고 덕 있는 자가 어찌 감동되지 않겠는가?” 나라에서 출신을 따지지 않고 재능 있는 사람을 등용할 것을 주장한 글인데, 반석평 일은 개인의 재능과, 귀천을 따지지 않는 인재 등용이라는 두 요소가 어우러진 특별한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박경수 앵커>

조선의 입지적인 인물임에 틀림없네요. 반석평이 지은 시가 지금도 봉의산 바위에 새겨져있다면서요?

▶권혁진 소장

반석펑이 1534년에 봉의산에 올라 시를 짓고, 그의 9대손인 반우한(潘遇漢)이 1725년에 봉의산에 시를 새깁니다.

 

푸르게 높은 산 성인의 교화 입어 / 碧岧帶聖化

아름다운 이름 오늘날까지 전해지는데 / 美號至今傳

봉황은 가고 풍류 소리 끊어졌으니 / 鳳去韶聲斷

봉의산에 올라 홀로 슬퍼하노라 / 登臨獨悵然

 

정치를 잘해 태평성대가 되면 봉황이 나타나 춤을 춘다고 합니다. 봉의산은 봉황이 춤추는 모양을 하고 있어서 봉의(鳳儀)라고 했는데, 막상 봉의산에 올랐으나 봉황은 찾을 수 없었다는 뜻인데, 태평성대를 꿈꾸며 현실을 아파한 시로 볼 수 있습니다.

 

*박경수 앵커>

지금은 불출마를 선언했지만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강원도에서 꽤 높은 인기를 얻고 있었던 이유가 있었네요. 끝으로 봉의산을 사자성어로 표현한다면 어떻게 표현하시겠어요? 제가 이미 사전에 언질을 드렸기 때문에 준비를 해오셨을 것 같은데요(웃음)

▶권혁진 소장

봉의산은 봉황과 연관 있고, 봉황은 태평성대에 나타난다는 새이기 때문에, 태평성대를 뜻하는 한자성어를 준비했습니다. 함포고복(含哺鼓腹)이란 한자성어인데, 실컷 먹고 배를 두드린다는 뜻입니다. 먹을 것이 풍족하여 즐겁게 지낸다는 뜻인데, 백성들이 나라를 걱정하지 않는 그런 날이 빨리 오길 기대합니다.

 

*박경수 앵커>

제가 춘천에 온 지 벌써 1년 4개월이 됐는데요. 출근길에 늘 올려다보는 봉의산에 이런 역사가 담겨있을꺼라는 생각은 전혀 못했네요. 2주에 걸쳐서 봉의산 역사 짚어봤습니다. 소장님 다음주에는 어디를 가볼 지 궁금해집니다.

▶권혁진 소장

지금 알려드릴 수가 없네요(웃음) 다음주를 기대하세요.

 

*박경수 앵커>

다음주에 뵐께요.

▶권혁진 소장

네 감사합니다

*박경수 앵커>

강원한문고전연구소 권혁진 소장이었습니다.

 

상록회 기념탑앞에 선 박경수 앵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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